brunch

매거진 Daily Novel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게으르니스트 Jan 09. 2024

매일 30분, 글쓰기 좋은 질문 642

(12) 작동법을 전혀 모를 것 같은 미래의 전자기기

   투명한 그것은 말 그대로 '찰랑'거리고 있었다. 주변에 살랑대는 바람을 타고 이리 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마치 무슨 벽을 가진 것처럼, 한없이 퍼지지는 않고 일정한 구체의 범위를 가지고 움직였다. 누군가 유리잔 안에 물을 삼 분의 이 정도 채워서 가만 가만 흔든다면 아마도 비슷한 모습이었으리라. 단, 유리잔과 그 잔을 흔드는 사람이 투명인간처럼 눈에 보이지 않아야 하겠지만.

    공중에 떠 있는 그것은 한참을 그렇게 찰랑거리다가 이따금 그 보이지 않는 '가상의 벽'이 있는 즈음에 어떤 예고도 없이 여섯자리로 된 숫자를 표시했다. 숫자는 핑크에 가까운 빨간색이었고 디지털 숫자처럼 보였으며 표시될 때마다 다른 숫자로 바뀌었다.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런 방식으로 숫자를 표시했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종류의 기계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따름이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괴기스럽기도 하며, 아름답기도 했다. 보기에는 액체의 형상이었으나 그것을 담는 용기가 없이도 어떤 모양을 유지하고 있었다. 빛을 받으면 공중에 떠있는 물방울처럼 반짝거리는 모습이 환상적이었다. 물론 그것이 액체가 아닐 수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물질의 특성으로 분류하자면 분명 그것은 액체가 틀림없었다. 액체가 아니고서야 그런 모습으로 찰랑댈 수는 없었다. 그러나 건너편이 모두 들여다보이도록 투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전기 표시장치처럼 숫자를 표시하는 모습이 문제였다. 숫자의 색깔이 파란색이거나 초록색이었다면 조금 인상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명한 붉은 글자가 갑자기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그 모습은 사람들을 한도를 가늠하기 힘든 상상으로 - 대부분은 불길한 - 이끌기에 충분했다.

    누군가는 신종 폭탄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나노 머신으로 만든 독극물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그것이 나타난지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직 그 정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치인들은 섣부르게 그것에 손을 대자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진실로, 그것에 인간의 손이 닿았을 때 지구 전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었고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책임을 질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저것이 나타났음에도 지금까지 아무 일이 없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될 뿐이었다. 찰랑거리는 그것을 바라보며, 내일도 어제와 같기를 사람들은 바라고 있었다.



* '전자기기'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사각이던, 구형이던 형체를 지닌 어떤 것을 쉽게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관념을 깨기 위해 '액체인 전자기기'를 상상해 보았다. 인간의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어떤 것을 마주했을 때, 인간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인간의 어떤 모습들이 드러날지를 그려보는 SF를 위한 글감이 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매일 30분, 글쓰기 좋은 질문 64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