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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르니스트 Jan 14. 2024

매일 30분, 글쓰기 좋은 질문 642

(14) 1932년 아르헨티나를 배경으로 한 짧은 이야기

* (글감에 추가되어 있는 조건) 이야기 속에서 찻잔 하나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한다.



    산체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테이블 건너편에 앉아 오른손바닥 위에서 찻잔을 굴리며 눈을 반짝이는 사내를 힐끔 쳐다보았다. 찻잔은 어린아이의 손바닥 만한 크기의 작은 토기였다. 겉에는 아무 문양도 없고 이가 군데군데 빠져있었다. 시장통에 어느 잡상인의 가판대 위에나 놓여있을 법한 그런 물건이었는데, 사내의 눈은 찻잔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러나 잠시 후, 사내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셨다. 그가 말했다.

    "아쉽지만 이건 아니군요. 오래된 물건이긴 하지만 그 물건은 아닙니다."

    산체스가 양손으로 가볍게 책상을 탕 치며 짧은 신음을 냈다. 그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우리의 목표에 한 발 더 다가간 셈입니다. 그 물건과 비슷한 가짜를 하나 제거한 셈이니까요."

    사내는 말을 마치자마자 찻잔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찻잔은 산산조각이 났다. 찻잔이 바닥에 부딫히는 소리에 산체스의 어깨가 함께 움찔했다. 산체스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는  한쪽 발로 깨진 찻잔 파편을 밟아 으스러뜨렸다. 마치 그가 그 찻잔을 부쉈다는 사실을 지우고 싶은 것처럼, 그는 발을 한참 동안 땅에 부볐다. 잠시 후 찻잔은 잘게 바수어져 한 줌 흙이 되었다. 그가 다시 말했다.

    "아시다시피 우리가 찾아낸 문서는 이곳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그 물건이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산체스가 잠깐 머뭇거리더니 그의 말에 항변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아니, 사람들이 알고 있는 성배는 금색의 술잔 아닙니까. 그 문서를 어디서 찾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의 모든 성당에서 쓰는 성배가 다 그런 모양이라구요!"

    그러자 그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 시절 그 지역에서, 그분처럼 가난한 분이 쓴 술잔입니다. 그 시절 쓰던 술잔은 흙으로 구운 토기였고 금으로 치장된 술잔은 로마 황제나 간신히 쓸 수 있었던 물건입니다. 애초에 그런 호화스러운 물건이 최후의 만찬에서 쓰인 성배였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인간의 허황된 상상력이 만들어 낸 산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산체스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의 논리에는 바늘 하나 조차 들어갈 틈이 없었다.



* 1932년 아르헨티나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난 모르겠다. 왠지 황금을 찾아 다니던 시절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런 느낌 위에 '중요한 찻잔'이라는 조건이 더해지니, 최후의 만찬에 쓰인 성배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쓰고 싶었다. 보통 성배라고 하면 금색의 화려하고 큰 술잔을 떠올리지만 실제 성배는 흙으로 구운 볼품없는 토기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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