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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르니스트 Jun 04. 2016

잔잔하고 따뜻했던 그 골목, 핑시

대만 여행: 핑시선, 무쟈핑시선 여행, 천등

대만에서의 둘째 날. 아침이 밝았다.

크리스마스다.


오늘은 핑시와 스펀을 거치는 여정을 계획하고 있다.

원래는 2일 차부터 신베이터우나 우라이 온천에서 몸이나 푹 담그면서 게으름에 쩔고 싶었지만, 마눌님이 살뜰하게 스케줄을 구성해 주신 관계로, 핑시 - 스펀 여행을 둘째 날에 잡았다.


많은 사람들이 핑시선 기차를 타고 루이팡 - 스펀 - 허우통을 들르는 핑시선 기차여행을 많이 택하지만, 우리 부부는 기차를 타는 핑시선 기차여행 대신 버스를 타고 핑시와 스펀을 들르는 '무쟈핑시선' 호행버스를 타기로 결정했다. 무쟈핑시선 호행버스는 핑시 - 스펀을 가는데 시간도 더 적게 걸리고, 뭔가 버스 여행 만의 낭만이 더 있달까 ?

 

어차피 기차는 화롄에 갈 때 탈 수밖에 없으므로, 대만 버스 여행을 여기서 경험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 '무쟈핑시선' 호행버스(하호씽 버스)란 ? ]


http://www.taiwantrip.com.tw/Main

위의 링크는 타이완 하오씽 버스 사이트.



호행버스는 대만관광청에서 운영하는 버스로, 대만의 유명한 여행지들을 연결해주는 버스.

개별 셔틀버스가 운영되는 경우도 있고, 기존 시내버스에 호행버스 타이틀을 붙여서 다니는 경우도 있다.

빠르고, 뭣보다 중국어 무식자인 여행자들은 기차가 닿지 않는 곳에 가기 위해서 이 버스를 타면 크게 헷갈리지 않고 대만 각지를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 요금도 저렴하고, 이지카드로 요금을 낼 수도 있다.


핑시 - 스펀을 가기 위해서는 11개의 노선 중 '무쟈핑시선 (목책평계선, 木柵平溪線)' 버스를 타면 된다. 1호선 무쟈역 출구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출발하는 795번 버스가 바로 '무쟈핑시선' 호행버스다.


무쟈역 출구 (하나 밖에 없다) 로 나가면 중국식 사원이 보이는데, 이쪽으로 계속 가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된다. 길 건너편에 OK 마트가 보이는데 바로 그 옆에 정류장이 있다.


무쟈핑시선 노선은 호행버스 사이트에 나와있으니 참조 ! 무쟈에서 핑시까지는 대략 40분 정도 걸린다.



무쟈역으로 가는 1호선 MRT는, 보통 타던 MRT와는 다르게 지상으로 운행되는 열차였다. 객차도 크지 않고, 어딘지 모노레일 느낌 ? 그래도 MRT는 너무 마음에 든다. 기차도 기다리는 시간 없이 빨리 오고, 객차 안도 깨끗 !


런던 지하철, 뉴욕 지하철, 태국 지하철, 델리 지하철, 홍콩 지하철... 여러 지하철들을 타봤지만 항상 나는 환승하기도 편하고, 차도 넓은 한국 지하철이 최고라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말하고 다녔는데, 이제 그 순위를 좀 바꿔야 할 듯하다. 대만 지하철 MRT 짱 !!!



호행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해결 못한 아침을 버스 정류장 옆 OK 마트에서 산 필통 밀크티와 빵 쪼가리로 버스 정류장 옆에 서서 일단 때웠다.

대만에 여행 온 한국 여행자라면 반드시 산다는 머스트 해브 아이템 필통 밀크티 ! ... 가 아니라 내가 산 건 라떼맛. 한 손에 쏙 들어오는 미려한 디자인 ! 나쁘지 않은 맛 ! (이라기 보단 좀 달았지만, 그래도 괜찮았음 ^^)

창의력 떨어지는 한국 음료회사들이 이걸 보면 참 군침 흘릴만한 아이템이다 싶었다.

얼마 전에 보니까 편의점에서 대만 직수입으로 팔고 있긴 하던데...


8시 20분에 온다는 795번 버스가 20분이나 늦게 와서 중국어 무식자인 우리 부부는 혹시나 또 버스 스케줄을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하고 안절부절 ㅠㅠ 하지만 버스 정류장에 사람들이 꽤 서있는 걸로 정신승리를 시전하며 굳건히 기다린 결과 다행히 버스에 탑승 !


평일과 휴일의 버스 시간표가 다른데, 8시 20분 버스 이후에는 평일이건 휴일이건 한참이나 버스가 없으니, 만약 일정이 빠듯한 사람이라면 꼭 8시 20분 버스를 타자. 이 버스에는 '호행버스'라고 쓰여있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냥 795번 버스를 타면 동일한 노선으로 갈 수 있으니 걱정 말자.



대만 버스에는 운전석 위쪽에 전광판이 있어서, 다음 정거장이 어딘지 표시해 준다. 설사 한자를 모르더라도, 영어로도 함께 정거장 이름을 표시해 주기 때문에 당신이 꾸벅꾸벅 졸지만 않는다면 큰 어려움 없이 내리고 싶은 정류장에서 내릴 수 있다.


오른쪽 사진과 같이, 전광판에는 웬 한자가 쓰여 있는데, 이 전광판이 기사님 머리 위에도 있으니 버스 탈 때 잘 보자. 만약 버스 탈 때 '상(上)'자에 불이 들어와 있다면, 버스 탈 때 요금을 내야 한다. (현금을 내던, 이지카드를 대던)

그리고 버스 내릴 때 '하(下)'자에 불이 들어와 있다면 내릴 때에도 요금을 내야 한다. 앞으로 내리면서 탈 때처럼 요금을 내면 된다. 버스 기본요금을 낸 후, 먼 거리를 가게 되면 추가 요금을 내는 형태라고 보면 되겠다. 내릴 때는 한국에서 하던 것처럼, 정거장 이름이 나올 때 하차벨을 누르면 된다.



40분을 달려서 도착한 핑시. (平溪, 평계, Pingxi)

'핑시'라는 이름이 붙인 기차 노선이 따로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핑시의 첫인상은 그냥 '작고 낡은 마을'이었다. 간간히 어르신들이 지나다니는 것을 제외하면, 쥐 죽은 듯 조용한 마을.

그래도 어김없이 대만 사람들은 친절해서,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저쪽이 너희들이 찾는 그 길이야'라고 알려주신 핑시 주민 덕분에 방향감각 분실증 환자인 Strider는 무사히 핑시라오졔 (平溪老街)에 들어갔다.


석저교 (石底橋)라고 쓰인 다리를 건너면 바로 핑시라오졔다. 간단한 나무 표지판도 함께 안내해 주니, 나 정도의 길치가 아니라면 절대 이 길을 놓칠 수는 없을 것이다. ㅡ.ㅡ;;;



핑시. 한자로 쓰면 평계 (平溪), 즉 평평한 시냇물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그런가 ? 마을을 한 바퀴 휘감는 야트막한 하천이 마을 초입부로부터 길을 따라 굽이굽이 흐르고 있었다. 낡은 마을을 감싸는 산과 시냇물은 어디서 본 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약간은 이국적인, 그런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무엇보다, 관광객들이 이 마을에 오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천등.

지금이야 스펀이 천등의 대명사가 됐지만, 원래 천등 날리기라는 전통은 이 곳 핑시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매년 2월에는 천등 수천 개가 올라가는 핑시 천등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마을 초입에서부터 6각형의 천등이, 핑시선 열차를 상징하는 차장 모자를 쓰고 또 어김없이 귀욤 열매를 먹고선 캐릭터가 되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거 참, 대만 사람들 캐릭터 너무 좋아한다. 절대 빠지는 구석이 없네. ㅡ.ㅡ;



좁은 골목길 양쪽으로 작은 천등 가게들이 쭉 늘어서 있고, 마을 사람들이 그려놓은 천등 벽화가 굴다리 벽을 타고 오르는 모습이 역시 천등의 마을다운 풍경이랄까.

아직 이른 아침시간인지라, 천등 가게들은 그제야 문을 열고 있었지만 아침에 막 기지개를 펴는 고즈넉한 마을을 보는 것도, 마음이 잔잔함으로 자박자박 차오르는 것이 꽤 괜찮은 느낌이다 싶었다.


신해철의 노래 '도시인'처럼, 평소의 우리의 아침은 항상 쫓기듯이 바쁜 발걸음과, 축 늘어뜨린 어깨와, 멍하니 핸드폰을 바라보는 시선 만이 있을 뿐이지만, 핑시에서 맞는 오늘의 아침은 사뿐히 날아가는 저 천등들처럼 가볍고, 참으로 고요하고, 또 평화롭다.



벽에다 천등 그림을 그려놓은 것도 모자라 길에 뚫린 맨홀 뚜껑에도 천등 무늬를 박아 넣은 이런이런 귀요미 대만 사람들 ^0^ 마을의 테마를 천등으로 잡아서인지, 마을 곳곳에 천등 그림이며, 천등 모양 장식이 붙어있다.


하지만 한갓진 마을 이곳저곳을 마치 산책하듯 돌아다녀 보니, 이 마을에 사람들이 찾아오는 이유는 꼭 천등 때문 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녹음이 우거진 호젓한 하천변 산책로를 걷고, 핑시 사람들이 작은 살고 있는 마을도 둘러보는 것은, 마치 잔잔히 흐르는 강물에 몸을 맡긴 채 흘러 내려가는 듯한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도시인의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힐링해 주는 그런 느낌이랄까.


물론, 천등도 놓칠 수 없는 핑시의 즐거움이다. 핑시에는 '핑시 천등달인'이라는 집이 있는데, 마침 이 달인께서 나와서 하루 영업을 준비하고 계셨다. '달인'이라는 이름을 당당하게 붙이고 계신 걸 보면 다른 천등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분명히 있겠지 ?


어떤 천등 집에는 슈쥬(인 것으로 추정되는) 연예인들 사진도 걸려있다.

최시원과 헨리를 닮은...

이 사진 발견 당시에는 '어억 이거 슈쥬 아니야 ? 이눔들이 왜 여기까지 와서 ㅋㅋㅋ' 하면서 사진을 찍어왔는데, 집에 와서 뚫어져라 자세히 보니 그냥 아련하게 닮은 대만 연예인인 듯...



핑시역으로 올라가다가 살짝 옆으로 빠지면 귀여운 벽화들이 있는 골목도 나온다.

한글이 쓰여 있고, 폴란드/일본/한국/대만 사람들이 손에 손잡고 러브 앤 피스 하고 있는 걸 보니, 아마도 마을 사람들과 이 네 나라의 관광객이 함께 그려놓은 벽화일 듯. 예술가 레벨의 퀄리티 있는 그림이 아니라서 더 정겹다.


하하 호호 웃으면서 이 그림을 그렸을 사람들의 즐거운 표정을 떠올려 보면, 보통 사람들에게 국경이나, 국가라는 것은 그저 걸리적거리는 귀찮은 존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만들어 낸 모든 가상의 관념들 - 국가, 종교, 돈, 지위, 학벌 등등 -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쏟지 않아도 될 눈물과 아픔을 겪고 있는 것인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아나키즘에 물들어 간다. ㅡ.ㅡ;;; 쥐꼬리 월급에 세금을 하도 많이 떼여서 !!! 캬악 !!!


이제 그만 노닥대고 핑시역에 올라가서 천등을 날려봐야겠다.                                      



경사진 핑시라오졔 골목길을 따라 끝까지 올라가면, 작은 기차역과 만나게 되는데 바로 여기가 핑시역이다. 간이역 수준의 작은 기차역. 심지어 핑시선은 위아래로 다니는 왕복 노선임에도 불구하고, 기찻길이 하나밖에 없을 정도로 작은 역이다.


이런 작은 역은, 비록 간이역에서의 어떤 연관된 추억이 없다 하더라도, 모든 감성쟁이들에게 남다른 정취를 풍기는 것 같다.


... 나는 30대 후반에 진입함과 동시에 여성호르몬이 많이 분비돼서 감성쟁이가 된 거겠지. ㅠㅠ


우리 나이대보다 약간 높은 형, 누나들이 듣던 노래 중에 이규석이라는 가수가 1988년에 발표한 '기차와 소나무'라는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에 키 작은 소나무 하나 ~

기차가 지날 때마다 가만히 눈을 감는다 ~

남겨진 이야기만 뒹구는 역에 키 작은 소나무 하나 ~

낮은 귀를 열고서 살며시 턱을 고인다 ~


여기 핑시역에 남겨진 이야기는 뭘까.

한 때 탄광도시였던 핑시와 간이역. 단선 기찻길. 천등. 좁은 골목. 어떤 이야기가 하나쯤은 엮일 법한 단어들이 이 작은 마을에 모여있다.


분위기 있는 마눌님 사진을 건질 수 있는 건 뽀나스. ^~^



작은 열차가 들고 나는 핑시역.

핑시선 열차는 다른 열차들보다 크기도 많이 작고, 연결된 객차도 많지 않아서, 아기자기한 운치를 더한다.


그리고 이 기차가 지나가고 철로가 비면, 사람들이 천등에 소원을 적어 하늘 높이 날려 보낸다. 핑시역에 도착했을 때 이미 몇몇 관광객들이 천등 날리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 부부도 철로 건너편의 작은 천등 가게에서 천등을 날리기로 하였다.


스펀에 가도 천등을 날릴 수 있다. 게다가 유명한 가용엄마 천등집이 있는 곳도 바로 스펀이다.

하지만 나중에 스펀 이야기를 쓸 때 말하겠지만, 핑시에서 천등을 날리기를 잘했다고, 훨씬 더 소중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고 우리 부부는 여행이 끝난 이후에도 두고두고 이야기했다.

그 이유는 나중에 스펀 이야기에서... ㅎㅎ



천등을 날리겠다고 이야기하면, 단색으로 할 것인지, 네 면을 다른 색으로 할 것인지 물어본다. 뭐 색깔마다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 예를 들어 뭐 빨간색은 건강, 노란색은 재물, 뭐 이런 식...


하지만 어차피 자기가 원하는 색깔만 모아서 커스터마이즈 천등은 안 만들어 주니까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여 색깔을 고르자. 우리 부부는 부귀영화 무병장수 뭐 좋다는 색깔은 다 긁어모아서 해보려고 했더니 안된단다. ㅠㅠ


아, 앞에서 말했던 핑시 천등장인님께 가면 귀티 나는 가격에 커스터마이즈 천등을 만들어 주실 지도 몰겠다... (미확인 정보 ㅡ.ㅡ)


단색은 150NTD이고, 네 가지 색은 200NTD니까 참고.


천등 색깔을 고르면, 주인 아지매께서 천등을 가지고 나와서 작업대에 빨래집게로 걸어주신다. 작업대 옆에 걸린 먹통과 붓을 이용해서 천등에 자신의 소원을 적어 넣으면 되겠다.



천등을 하늘에 올려 보낸다고 하니 자연스레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돌아가셨을 땐 막상 실감이 안 났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이따금씩 아버지 생각이 난다. 하늘에서 잘 지내고 계신지 모르겠다.


평생 일만 하시다가, 이제 손자손녀 보고 인생 즐기셔야 할 때 돌아가셔서 더 마음이 아프다. 같이 여행도 한 번 못 가봤는데, 이렇게 뒤늦게 후회해봐야 소용없는 걸.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이 정말 마음을 후벼 판다.


뭐.. 의례히 그렇듯이 소원 빌라고 하면, 가족들 건강, 돈 많이 벌기...

우리 부부는 올해 주니어 만들기가 목표이므로 그것도 살뜰하게 적어 넣었다. 정말 열심히 사랑을 나눌 예정이다. ㅡ.ㅡ;;;


내 키에 마눌님 얼굴 사이즈를 물려받고 태어나면 바로 모델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내 얼굴 크기에 마눌님 키로 태어나면 우리 주니어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ㅠㅠ



우리 부부의 어마 무시한 소원들을 가득 담아 하늘로 뿅 !

아래에 불을 붙이면 하늘로 올라가려는 힘이 제법 강하므로, 손으로 꼭 잡고 있지 않으면 기념 사진 찍을 새도 없이 천등과 이별하게 될 것이니 요주의.


사진 촬영은 가게 주인 아저씨가 해주시는데, 뭐 그냥 멋진 사진보다는 기념 사진을 찍어준다는 데 만족하면 되겠다.

만약 사진이 걱정된다면, 그 자리에서 천등을 날릴 다른 관광객들과 사진 품앗이를 하자고 제안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우리 부부가 날릴 때는 다른 사람들이 없어서 그냥 가게 주인 아저씨에게 맡겼다. 그만큼 핑시에서는 천등 날리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천등은 하늘 하늘 잘도 날아간다.

정말 까만 점이 되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날아가는 걸 서서 지켜보았다.


아빠한테 잘 닿았을랑가 모르겠다.



천등을 날리고, 아까 가게 문을 닫아서 맛보지 못했던 땅콩아이스크림을 먹으러 잠시 핑시라오졔로 내려왔다. 마을로 올라오는 중간 즈음에 있는 다리 근처에 어느 노부부가 하시는 작은 땅콩아이스크림집이 있다.


이 땅콩아이스크림은, 대부분 지우펀에 있다는 원조집(?)에서 많이들 드시는데, 우리 부부는 이 집에서 먹었다. 뭐, 지우펀 원조집 아이스크림을 먹어보진 않았지만 이 집도 나쁘지 않았다. 너무 달지도 않고, 그렇다고 밍밍한 것도 아닌 적당한 맛이라서 나 같이 나이 든 사람에게 딱이다.


얇은 밀가루 전병에 우유 아이스크림을 한 덩이 얹은 후, 커다란 땅콩엿을 대패로 밀어낸 달콤한 엿가루를 얹어서 척척 싸주면 완성 ! 물론 원래는 샹차이(고수)를 얹어서 주지만, 고수 향에 익숙지 않은 사람은 '노 샹챠이 !' 하면 잘 알아들으시고 빼주신다.


게다가 하나에 35NTD (한화 1,300원) 라는 착한 가격 ! 아, 대만 먹거리는 사람을 너무 행복하게 하는 가격이야... 할아버지 할머니께 크리스마스 마수걸이 매상을 우리 부부가 올려드렸다.

메리 크리스마스 해드릴 걸 깜빡하고 그냥 온 게 아쉽구만.



[ 핑시 땅콩아이스크림 평가 ]

맛: ★★★☆☆

가격: ★★★★★

양: ★★★★★


- 땅콩아이스크림 35NTD

- 안에 들어가는 것은 아이스크림이라기보다는 차가운 빙수 같은 느낌이다. 겉을 싸는 밀전병은 약간 종이 같은 느낌도 있어서 호불호가 갈릴 듯. (실제로 울 마눌님은 처음에 밀전병을 씹었을 때 종이 같다는 평가를...)



이제 한참을 머무른 핑시를 떠나 스펀으로 갈 차례다.

핑시역에서 다시 무쟈핑시선 버스 정거장까지 되돌아 가려면 한참을 걸어야 하고, 또 핑시까지 왔는데 핑시선 열차를 안타보는 것도 좀 그래서, 이번에는 버스를 안 타고 기차를 타고 핑시로 가기로 했다.


핑시역 벽에 기차 시간이 붙어 있으니, 만약 핑시역에서 기차를 탈 생각이라면 미리 확인하는 것도 좋겠다. 핑시역에서 스펀 역을 갈 때 기차를 탄다면 핑시역에서 이지카드를 태그하고 타면 된다.


아무도 없는 핑시역 플랫폼에는 천등을 닮은 형광등이 달려 있다. 지금 이 곳을 떠나면, 언제 다시 와 볼 기회가 있을까 ? 만약 다음번에 대만에 온다면 아마 다른 지역에 가겠지.

아쉬움에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기차가 올 때까지 역 주변을 서성이다가...



... 마눌님의 모델놀이에 부응해 드렸다 키키키.

사진이 정말 잘 나왔는데, 소중한 프라이버시를 위해 마눌님의 얼굴을 가릴 수밖에 없는 것이 아쉽다. 힐링스런 핑시 여정의 마지막은 역시 또 팔불출 어택 !!!!!!!!


핑시역은 플랫폼 뒤편이 트여있고, 그곳으로 푸른 숲이 있어서 여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뽀송뽀송하게 잘 나온다. 커플끼리 가실 분은 참조.


이윽고 우리를 스펀으로 데리고 갈 기차가 왔고, 우리 부부는 작고 따뜻했던 마을 핑시와 작별 인사를 나눴다.


좁지만 부산하지 않은 핑시라오졔 골목길. 아기자기하면서도 사람의 손맛이 묻어나는 벽화들.

마을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천등들과, 우리의 손을 떠나 하늘 멀리 날아간 천등 하나.


여느 여행지의 번잡스러움이 없이 고요하고 차분했던 그 마을, 핑시와의 두어 시간을 되돌이켜 보는 동안,

열차는 느릿하고 느긋하게 마을을 벗어나 스펀으로 향했다.




(5편 예고)


이곳은 그야말로 천등공장.

기찻길을 따라 늘어선 생산라인에서 천등이 쉴 새 없이 생산 !!

천등의 낭만은 어디에... ㅠㅠ


그러나 우리 부부는 이미 핑시에서 애틋하게 천등을 날리고 왔으니까 니야홍 ~

찬찬히 스펀의 매력을 찾아 한참을 걸어 다녔고...


이윽고 체력이 방전되었다...

그때 우리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이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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