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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르니스트 Jun 11. 2016

충격, 키키 레스토랑 !

대만 여행 2일차: 시먼딩, 아쭝멘셴, 시먼훙러우, 키키 레스토랑

딘타이펑에서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나온 Strider 부부의 앞에 빗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맘때쯤의 대만은 대중없이 부슬비가 오다가 그쳤다를 반복한다더니, 정말이네. 안 그래도 아침에 숙소를 나설 때, 하늘이 희끄무레하더니만... 혹시나 몰라서 가지고 나온 낡은 우산이 이렇게 고마울 줄은 몰랐다.


수많은 블로그에 '머스트 방문 맛집'으로 등재된 '키키 레스토랑'.

음식 사진의 비주얼 만으로도 우리 부부의 침샘을 오작동 ㅡ.ㅡ 시켰던 바로 그 키키 레스토랑에, 저녁 8시, 로맨틱한 크리스마스 저녁식사를 위해 예약을 걸어놨다.


오후 네 시쯤 딘타이펑 식사를 끝내고 나왔더니 키키 레스토랑 예약시간까지 붕 뜬 시간. 그 시간이 아까워서, 언젠가는 한 번 가야만 했던 시먼딩을 먼저 들르기로 했다.



[ 시먼딩 (사문정, 四門町, Ximending) 가는 법 ]

MRT 3호선, 또는 5호선 시먼역 (사문, 四門) 역에서 내려 6번 출구로 나가면 바로 시먼딩이다.



대만의 명동이라 일컬어지는 시먼딩.

시먼딩은 타이베이에서 최초로 형성된 보행자 거리라고 한다.

(하... 하지만 떡 하니 차들이 다니는 걸 보면... 보행자 전용 거리에 당당하게 차들이 다니는 우리나라랑 별반 상황은 다르지 않은 듯... ㅡ_ㅡ;;)


근데 시먼딩 거리를 걷다 보면, 그 넓이가 정말 명동 거리만큼이나 넓은, 아니 그 이상으로 넓다는 느낌이다. 

시먼딩 입구 이쪽저쪽으로, 에스리트 백화점 (에스리트 서점을 운영하는 바로 그 회사가 만든 백화점) 을 비롯한 커다란 쇼핑센터들이 있는가 하면, 거리 중간을 가로지르는 큰길 주변에는 꽤 높은 빌딩들까지 줄지어 서 있어서 약간 막막하게 넓은 느낌.


그래서 맘 잡고 시먼딩 거리를 구경해 보겠다고 한다면, 어마무시한 사람의 물결을 헤쳐나가는 미션까지 더해서 진정한 타이베이 자유여행 용자라고 할 만하다.



과연 쇼핑과 젊음의 거리답게 MRT 역에서 나오자마자, 수많은 사람들의 물결은 물론이거니와, 프로모션 하는 인형들에 크리스마스 트리까지, 연말 분위기가 물씬 ! 

많은 블로거들이 거쳐간 1973 치킨집도 시먼딩 입구 근처에 있다. 요요요요요런 귀요미 닭같으니 !! 아, 정말 대만 사람들은 귀욤 열매를 무슨 비타민처럼 상시 복용하는 걸까. 어쩌자고 이 오덕 바이러스 보균자를 이렇게 자극하는거얏.


그러나 내 옆에는 굳건히 정신줄을 잡고 있는 마눌님이 계시다 ! 


귀여운 닭 캐릭터에게 속아 1973 치킨 충동구매를 할 뻔 했던 Strider는 마눌님께 뒷통수 한 대 후려 맞자 현실세계로 돌아와 나풀대던 정신줄을 소중히 부여잡았다.


그래... 난 자랑스러운 치맥의 나라 한국에서 온 여행자. 대만 치킨에게만큼은 자긍심을 지키자 !!



근데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가이드북에 소개된 시먼딩 맛집 '아쭝멘셴' (阿宗麵線, 아종면선) 앞에 서 있었다.

내... 내 두 발로 걸어온 기억이 없어 !!! 나는 누구... ? 여긴 어디... ? 


아무래도 미친 것 같다. 

30분 전에 딘타이펑에서 분명 샤오롱바오에 샤오마이, 볶음밥까지 처묵댄 주제에, 뱃속의 거지가 끌고 간다고 해서 여기까지 끌려오다니.


뱃속의 거지야. 끌고 온 곳이 맛집이라니 너 정말 기특하기 이를 데가 없구나. ㅡ_ㅡ 사랑해 뱃속 거지 ~


아쭝멘셴은 찐한 고깃국물에 돼지 곱창이 섞인 얇은 국수를 말아서 내주는 단일 메뉴 식당인데, 1975년 노점상으로 시작해서 40년 만에 분점을 낼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고 한다. 시먼딩이 명동이라면, 이 아쭝멘셴은 틈새라면 정도랄까 ?


아쭝멘셴 앞의 저 어마무시한 대만 현지인들의 무리를 보라. 

Strider는 어제 먹었던 총좌빙의 아름다운 기억에 휩싸인 채, 정신줄을 나풀대며 대만 사람들 사이로 스스슥 스며들었다.



가장 오른쪽에 있는 계산대에 가서 메뉴를 고를... 필요가 없었다. 메뉴는 단 하나. 아쭝멘셴. ㅡ_ㅡ; 고를 것은 큰 그릇에 먹을 것인지, 작은 그릇에 먹을 것인지 뿐.


아무리 사람들이 드글대는 맛집이라고 하더라도 새로운 메뉴에 대한 강한 의구심이 기본 옵션으로 장착된 우리 부부의 소심한 마음가짐을 뚫을 순 없음. 역시나 소심하게 작은 그릇을 선택하고 딸랑 50NTD (한화 1,850원) 을 냈다.


팔고 있는 비주얼은 딱 ~ 히 식욕을 자극하진 않지만, 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맛집이 약간은 너저분한 비주얼을 자랑하니깐... 근데 나는 동서고금을 다 안 가봤는데 어찌 이렇게 자신감 넘치는 것인가...


돈을 낸 후 받은 표를 국수 카운터에 내면 국수를 담아 준다. 본인의 기호에 맞게 국수냄비 옆에 있는 샹차이 (고수) 나 양념을 더해서 먹을 수 있음.



미... 미안하다 ! 국수의 비주얼이라고 하기엔 난감한 이 사진. ㅡ_ㅡ;;


살짝 퍼진 국수와 약간 끈적한 국물에, 군데군데 섞여있는 돼지 곱창... 바글바글대는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가는 것도 그렇고, 뭐랄까, 약간 전쟁통에 줄 서서 배급받는 음식의 느낌. 


국수를 떠주는 점원도 '옛다 이거나 먹어라'하는 식으로 종이 그릇에 한 곱뿌 푹 퍼준다. 하지만 난 비굴하니까;;; 배급 주셔서 감사합니다 ~ 굽신 그릇을 받아 안고 ㅡ_ㅡ 마눌님 있는 곳으로 왔다.


마눌님: ..... ('아니 어디서 돈을 주고 이딴 걸 받아왔어 ?')

Strider: ..... ('몰라. 엉겁결에 돈을 냈더니 이걸 주네.')


아니, 이게 뭐가 그리 맛있다고 대만 사람들은 저렇게 줄줄이 서서 그릇에 얼굴을 파묻고 처묵대고 있는 것인가 !!! 우리 부부는 의심 가득 한 숟갈 푸욱 퍼 먹었다.


으음...!?!?!

이, 이거 의외로... 부드러운 국수와 간간히 씹히는 쫀득한 돼지곱창의 하모니가... ?!?!? 

그리고 진한 고기 육수의 깊은 감칠맛이... 맛있다 ? 의외로 계속 숟가락질을 부르는 맛 !!! 비주얼은 정말 꿀꿀이죽 느낌이지만, 맛 하나는 가격 대비 인정할 만했다!!


하지만 한국인의 유전자는 김치 없이 감칠맛 고깃국물만 계속 처묵대기는 굉장히 힘들었다. ㅡ_ㅡ; 두 숟가락 정도 먹구선 느끼한 맛을 조금 이라도 중화하기 위해 국수 카운터로 다시 돌아가 샹차이 넣어가지고 왔음.



결국 아쭝멘셴 한 그릇 다 먹고선 느끼하고 텁텁해진 입을 헹궈줄 가구가락 한 캔을 편의점에서 겟겟. 예능에서나 할 법한 '콜라 한 숨에 다 마시기'로 가글 완료. 가구가락 가격이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대략 35NTD ? 정도 했었던 것 같다.



[ 아쭝멘셴 ]

맛: ★★★☆☆

가격: ★★★★★

양: ★★★★☆


- 작은 그릇 50NTD, 큰 그릇 65NTD

- 보통 한국 사람들이 음식에 샹차이 (고수) 를 넣어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 아쭝멘셴은 느끼함 제거를 위해 샹차이를 꼬옥 넣어먹기를 권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 그릇 먹고 GG 치게 될 것임.



느끼한 돼지곱창 국물을 들이부었더니 뱃속 거지가 드디어 백기를 들고 항복했다. 시먼딩 거리를 거닐면서 만난 '핫스타 지파이', '삼형매 빙수집' 같은 수많은 유명한 맛집들이, 그저 사람 북적대는 가게로만 보인다. ㅡ_ㅡ;; 뱃속 거지가 시키는 대로 걸어 다니다가, 뱃속 거지가 사망하자 방향성을 상실한 Strider... 


그렇게 비 오는 시먼딩을 정처 없이 헤매다가 불현듯 머리를 스친 것이 있었으니, 시먼딩 근처에 있다는 타이베이 최초의 극장 '시먼훙러우'. (四門紅樓, 사문홍루) 일본 식민지 시절 지어진 타이베이 최초의 극장인 시먼훙러우는 타이베이 시정부가 공식 역사 유적으로 지정한 건물.


이번 여행 때는 역사 유적이나 박물관 따위는 절대 가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어차피 키키 레스토랑을 예약한 8시까지는 시간이 남았으니... 우리 부부는 터덜터덜 시먼훙러우로 향했다.



[ 시먼훙러우 가는 법 ]

MRT 시먼역 6번 출구에서 나오자마자 왼쪽으로 큰길 건너편으로 건너가거나, 4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시먼역에서 큰길을 건너오면 어디 야인시대에나 나올 법한 고풍스러운 건물이 똬악 ! 바로 나타난다. 


요 붉은 벽돌 건물이 바로 시먼훙러우.

한창일 땐 매일 밤 경극과 타이완 오페라가 공연되던 곳이라는데, 이제는 레스토랑과 카페, 그리고 가장 중요한 크리에이티브 부띠크 '16공방' (16工房)이 위치해 있다.



16공방이 뭐냐고 ?


16공방은 바로, 우리나라 인사동에 있는 쌈지길마냥 젊은 작가들의 작은 스튜디오가 모여있는 곳.

개성과 아이디어가 넘치는 아이템들이, 자기를 찍어줄 주인님들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 물론 그 주인님은 나 같은 오덕병 보균자.


눈 뜨고 코베일 아둔한 지갑을 소유한 오덕병 재발자 Strider가 그 마성의 건물에 들어섰다.



1층에 17개, 2층에 5개, 총 22개의 스튜디오가 2개의 층에  걸쳐서  오덕들의  눈 먼 돈을 기다리고  있다.  주요 아이템은 대만 특유의 아기자기함이 묻어있는 옷, 액세서리, 인테리어 소품 등.


물론 디자이너들의 소품샵이다 보니,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어서 사진에 담아오진 못했지만, 기념품들이 전반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대만 안에서도 이 곳 16공방의 아이템들은 정말 지름신을 부르는 퀄리티에,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아이템들이라는 점이 투 떰즈 업 ! 


단, 디자이너 샵이다 보니 가격은 조금 높다는 거 ~ 그래서 마눌님이 살짝 살짝 정신줄을 잡아주니 다행히 면지름...



물론 아무것도 안 사더라도, 시먼훙러우 입구에는 시먼딩 거리를 걷느라 지친 다리를 쉬어갈 수 있는 작은 카페와 함께 다양한 전시품들이 있으니 시간이 충분하다면 잠시 여기서 노닥대다 가는 것도 좋겠다.


물론 짠돌이 우리 부부는 당연히 키키 레스토랑이라는 목표가 있으니, 뒤도 안 돌아보고 시먼훙러우를 뛰쳐나와 우리 부부의 알흠다운 크리스마스 저녁식사를 책임져 줄 키키 레스토랑으로 출격 !


[ 키키 레스토랑 가는 법 ]

MRT 5호선 국부기념관역 (國父紀念館, Sun-Yat-Sen Memorial Hall) 2번 출구에서 나와서 직진하다가

세 번째 골목에서 꺾어 들어가면 '광푸남 280로' (Guangfu South Road Lane 280) 가 나온다.

이 광푸남로를 따라 쭉 들어가다 보면 왼쪽에 키키 레스토랑이 있음.


키키 레스토랑이 있는 광푸남로에 들어서자마자, 우리 부부는 눈이 휘둥그레 졌다.

시먼딩이 명동이었다면, 이곳은 마치 서래마을 같은 느낌 ! 넓지 않은 길을 가운데에 두고 좌우로 고급스러운 레스토랑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아... 대만이 길거리 먹방 여행의 천국인 줄로만 알았더니, 이런 고급스러운 다이닝도 가능한 여행지였다니...

훗 ! 우리 부부의 첫 먹방 여행의 정점을 찍어 줄 키키 레스토랑이 바로 이 거리에 있다 !! 내 비루한 인생에 먹부림으로 사치를 부리려면 물가 비싼 한국에선 불가능하고 대만 씩이나 건너와야...



드디어 만났다 키키 레스토랑 !!

키키 레스토랑은 타이베이 곳곳에 지점이 꽤 많은데, 본점 집착주의자인 Strider는 당연히 본점인 이 곳 '연길창시점 (延吉創始店)'에 납셨다.


키키 레스토랑은 워낙 사람으로 붐비는 곳이기 때문에 예약을 하고 가는 것이 좋다. 예약하는 방법은 친절한 작가인 본인이 소개한다. ㅡ_ㅡ;


1. 키키 레스토랑 사이트에 들어간다. (http://www.kiki1991.com/main/tw/)

2. 오른쪽 상단에 있는 예약 페이지 메뉴인 '線上訂位'를 선택.

3. 예약 페이지에서 '延吉店'(創始店)을 선택 !                                                                          

4. 예약하고자 하는 날짜와 인원을 선택 ! 예약 날짜는 2주 전 날짜부터 오픈되므로 방문하고픈 날짜의 2주일 전에 사이트로 들어가면 됨.


헉헉... 여러분... 치... 친절했나 ? ;;;


하여간 Strider는 경쟁률 치열한 크리스마스 저녁 식사를 위해 정확히 2주 전에 예약을 마쳤기 때문에,

항상 비굴하게 낮추어져 있던 콧대를 오래간만에 높이 쳐들고 키키 레스토랑에 입장했다.


우핫핫핫핫핫핫핫!

... 어디서 굴러먹던 근자감이냐 넌... ㅜ.ㅜ 여전히 넌 그냥 가난뱅이 월급노예야 !!!



우아한 걸음걸이로 좌중에 민폐를 끼치며 ㅡ_ㅡ;; 안내받은 자리에 착석 !

조금 늦은 시간인 저녁 8시임에도 불구하고 레스토랑 안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인테리어도 깔끔하고, 분위기도 시끄럽지 않고 크리스마스 저녁식사 장소로는 최적 !


우리 부부는 뭘 먹을지 고민도 안 하고 블로거들 최고 인기 메뉴인 '라오피넌러우' (老皮嫩肉, 노피눈육) 와 '창잉터우' (蒼蠅頭, 창승두), 그리고 육본능을 채워줄 고기고기한 비주얼의 '푸치퍼이피안' (夫妻肺片, 부처폐편)을 시켰다.


라오피넌러우는 그 유명한 부드러운 두부 탕수육, 창잉터우는 다진고기 쪽파볶음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저 '창잉터우'라는 거, 뜻이 '파리 대가리'라는 뜻이던데... 뭐 하여간, 두 요리 모두 블로거들의 사진으로만 보면 거의 레전드급 음식들이었고, 푸치퍼이피안도 메뉴판의 사진으로 봐선 굉장히 침샘 터트리는 비주얼.


우리 부부는 모가지가 빠져라 오매불망 요리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아. 드디어 녀석들이 모두 나왔다. 너희들 모두 순순히 영양분이 될 준비가 되었는고 ? 숟가락 젓가락에 분노의 배고픔을 담아 돌격 !!!


가장 먼저 공격당한 요리는 편육과 조리한 천엽 같은 것을 한데 넣어 무쳐서 내오는 푸치퍼이피안. 메뉴판의 사진으로만 봤을 땐 그냥 고기볶음인 줄 알았는데, 편육스런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는 요리.


흠... 일단 한 젓가락 먹어보았는데... 


... 으음... ? 차... 차..갑다 ?!?!? 푸치퍼이피안은 고기볶음 요리가 아니라 그냥 무쳐서 내오는 냉채 요리였던 것이다 !!!!! ㅠㅠ 고기가 차갑다 보니 씹히는 맛도 부드럽지 않고 퍽퍽한 맛... 무침 소스도 그냥 어디 동네 호프집 골뱅이 무침 맛 소스였다.


이런... 저녁 요리라면 당연히 따뜻하게 익힌 요리일 줄 알았는데 !!! 난 양반 가문의 자제로써 절대 차가운 요리 따위를 급하게 먹을 수는 없...


마눌님: 뭔 헛소리양. 아까우니까 얼릉 입 벌리고 다 집어넣어.

Strider: 넹

Strider는 마눌님께 눈웃음을 살살 치면서 입에 편육을 우걱우걱 집어넣은 후 뱃속에 잘 쑤셔 넣어뒀다. ㅠㅠ 그다음은 겉을 살짝 튀긴 두부를 엷고 짧조름한 소스에 조려서 낸 라오피넌러우를 공격.



뭔가 색깔만 보면 유부처럼 쫄깃쫄깃한 식감일 것만 같은 요 라오피넌러우.

하지만 겉과 속이 다른 얍쌉한 Strider처럼 ㅡ_ㅡ;; 요 놈은 겉의 얇은 튀김옷 속에는 부드러운 연두부가 그대로 들어있다. 사각사각하게 주사위마냥 잘라 내놓은 것도 신기방기한데, 이 부드러운 두부를 어찌 기름에 튀겨냈을까는 더더욱 궁금한 요 녀석.

두부 하나를 집어서 입에 쏙 넣었더니... 오호 ~ 짭조름한 소스와 부드럽고 담백한 연두부가 어우러져서 적절한 간을 맞추면서 새로운 맛의 하모니 ! 

연두부 한 조각을 통째로 혀와 입천장 사이에 넣어 으깨가면서 먹는 식감의 재미도 쏠쏠했다. 맛으로는 합격점 드리겠습니다 !


근데 딱 12조각뿐... 나처럼 입 큰 놈은 이거 한 입에 털어 넣고 한 그릇 더 시켜 먹으라는 건가... ㅠㅠ

마치 천하장사 소시지를 아끼고 아껴서 조금씩 베어 먹던 초딩 때의 그 심정으로 돌아가 두부 한 점씩 입 밖으로 흘릴세라 소중히 먹는데 감질나서 뚜껑 열리는 줄 알았네.


다음 목표는 쪽파와 다진 고기를 볶은 창잉터우 !



살짝 느끼한 대만 음식에 지쳐갈 때쯤 식신 ㅡ_ㅡ 의 축복처럼 내려온다는 매콤한 다진고기 파 볶음 창잉터우. 과연 비주얼로 보면, 흰 쌀 밥에 쓱쓱 비벼서 먹어야 할 듯한 포스가 풍긴다. 군데군데 섞여있는 빨간 고추가 '나 제법 매워 !' 라고 경고하는 듯한 창잉터우.


밥반찬스러운 모습에 우리 부부는 즉시 흰 쌀밥을 시켰다. 이미 찬 편육을 억지로 뱃속에 욱여넣은지라 밥을 많이 먹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밥은 딱 한 공기만.


훗. 창잉터우야.

지금 니 앞에 앉은 나는 고추에 고추장 찍어먹는 독한 한민족 Strider다. 인도 커리에 1년 정도 쩔어 있었던 오뚜기 냄새;;; 나는 과거는 옵션이지.


Strider는 자신 있게 창잉터우를 크게 한 스푼 푸욱 펐다. 양도 푸짐하겠다, 라오피넌러우를 찌질하게 아껴먹던 기억은 지우고 !! 너 따위는 한 입에 털어 넣어 주.....



이런 우라질레이션 환장할노믹스. 지금 내가 내 혀에 무슨 테러질을 한 거야... 


창잉터우는 정말 어이가 상실 땀이 쪽 빠질 정도로 매웠다. Strider는 황급히 흰 밥을 한 숟가락 퍼먹었지만, 마치 태국산 매운 고추를 통째로 씹은 듯한 그 알싸하게 매운맛은 혀와 입 안에서 오랫동안 맴돌았다. 아니, 그 수많은 블로거들이 이 요리를 맛있다고 극찬하며 먹었는데, 그들은 이렇게 매운 걸 아무렇지도 않게 푹푹 퍼먹었단 말인가 !!!


Strider는 사회적 체면 등등 내려놓을 것도 없는데도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저절로 흘러내리는 눈물 사이로 아련하게 시상이 떠오른다...


< 숴시 ? >

매운 음식 앞에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두려움 없기를

하지만 창잉터우 한 숟가락에도 나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제발 살려달라는 마음으로 마눌님께 흰 밥 한 숟갈을 구걸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남은 창잉터우를 입 안에 톡톡 털어 넣어야겠다.


내일 아침 화장실 밀어내기 한 판, 엉덩이가 불길에 스치우겠구나.


마눌님, 저에게는 아직 밥이 반 공기가 남아 있사옵니다.

애처가인 Strider는 마눌님에게 남은 흰 밥 반 공기를 기꺼이 넘겨드리고 남은 창잉터우를 입 속에 밀어 넣었다. 내일 아침 화장실에서 큰 일을 보기가 두려워졌다. 나의 소중한 그곳에 캡사이신의 거친 손길이 지나갈 테니...



[ 키키 레스토랑 ]

맛: ★★★☆☆

가격: ★★☆☆☆

양: ★★★☆☆


- 라오피넌러우 220NTD, 창잉터우 250NTD, 푸치퍼이피안 290NTD, 흰 쌀밥 15NTD

- 만약 창잉터우를 시키고자 한다면 쌀밥은 꼭 두 그릇 이상을 시키자.

- 직원들은 친절해서 좋다. 하지만 창잉터우는 정말 매운데, 계산할 때 플로어 매니저님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매니저: 아니 왜 음식을 남기셨어요 ?

Strider: 그게... 창잉터우가 너무 매워서 다 먹을 수가... 그렇게 매운 줄은 몰랐어요...

매니저: 이런 ㅠㅠ 그거 매운맛 조절해 달라고 하시면 되는데.

Strider: 음... 어금니를 꽉 깨물어 주시겠어요 ? 


위와 같이 창잉터우는 매운맛 조절이 가능하므로, 직원들이 물어보지 않더라도 꼭 알아서 '덜 맵게' 해달라고 하자.



우리 부부는 그렇게 창잉터우 한 그릇에 넋이 나간 채 광푸남로로 나왔다. 길 양쪽에 늘어선 멕시칸, 이탈리안, 한식 요릿집들이 정말 아름다워 보였다. 하지만 우리의 뱃속엔 느끼한 아쭝멘셴과 차가운 편육과 화끈한 쪽파고기볶음이 둥둥 떠 있을 터. 더 이상의 공간은 남아있지 않았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와 함께, 비틀거리는 우리 부부의 대만 여행 둘째 날은 그렇게 저물어 갔다.




(7편 예고)


대망의 대만 여행 셋째 날!

드디어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신베이터우 온천에 몸을 담근 우리 부부 !!


하지만 오전의 행복한 온천질도 무색할 만큼 대차게 쏟아지는 빗 속에서 오매불망 길거리 먹방만 바라던 우리 부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고향의 맛 다시다에 빙의된 대왕 오징어튀김과 목이 턱 메이는 초거대 카스텔라.


대만 여행... 너 ~ 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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