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후반, 퇴사 바람이 분다

마침, 용기를 필요로 하는 순간에 용기를 발휘할 기회가 주어졌다

by The Other Game

퇴사라는 바람은 주기적으로 불어온다


'퇴사하면 어떨까'라는 잔잔한 미풍으로도 불고

'모르겠고, 그냥 확 그만두자'라는 돌풍으로도 분다.


13년의 직장 생활 동안, 나에게 퇴사는 언제나 이직을 위해 존재했다.

더 좋은 회사, 더 나은 대우를 위해 퇴사는 당연히 뒤따라야 하는 것이었다.

늘 퇴사보다 이직에 방점이 찍혀있었기에 퇴사 그 자체를 깊이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퇴사 그 자체만을 고민하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이직한 지 반년도 안 된 시점에, 두 번의 사표를 꺼냈다.

(입사 2개월이 지나고 한 번, 5개월이 지난 지금 한 번)


이번 사표는 이전 4번의 퇴사들과는 다르다.

다음 회사를 향한 발돋움도 아니고, 여기서 일단 벗어나려는 발버둥도 아니다.


나의 40대, 그리고 그 이후의 삶에서 ‘어떤 나’로 존재하고 싶은지를 찾고 싶을 뿐이다.



40대 이후, ‘어떤 나'가 되고 싶은가


어떤 회사의 타이틀을 단 내가 아니라, '어떤 가치와 목표를 가진 내'가 궁금해졌다.

내가 하는 일이 회사 안에서의 KPI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누군가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전 세계인이 아는 회사에서, 현재의 연봉은 내 직종의 내 연차를 고려하면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만큼 인정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만드는 가치를 이렇게 숫자로만 퉁 치기엔 아깝다는 생각도 슥하니 들곤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회사의 매출이나 조직의 분위기를 개선하는 정도가 아니라,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이나마 나아지게 하고, 그 사람의 성장과 가능성에 불씨를 지피는 일로 이어지길 바랐다. 어딘가에서 '그때 그 경험이 도움이 됐다'라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일. 그런 임팩트가 내 일에 더 많이 스며들기를 바랐다.


자만일 수도,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일 수도 있다. 그게 자만이면 자만인 대로, 온실 속 화초면 화초인 대로,

이젠 정말 지붕 밖으로 나와 바람을 맞아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바람을 맞아봐야 내가 화초재질인지 야생체질인지 알 수 있다



나는 누구의 성장을 위해 이 일을 하는가


결국 '누구의 변화와 성장을 돕기 위해 이 일을 하는가'라는 이 질문이 나에게 가장 중요해졌다.


안다. 이렇게 바람이 불 때면 잠시 지붕 아래 몸을 숨기고 있으면 된다는 걸. 바람이 지나고 나면 한동안 평온한 날들이 이어질 것이다. 회사에서 주어진 목표를 차근히 해나가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라는 것도 안다.


바람이 불 때 잠시 지붕 아래 몸을 숨기고 있다가 나오면 한동안 평온해질 것을 안다


바람이 지난 초원엔 다시 햇살이 내리고, 우린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시 등 따습게 지낼 수 있다. 나도 그렇게 몇 번의 바람을 피해왔다. 7년 차 즈음 한 번, 10년 차 즈음 한 번.


바람을 피해 숨었던 지난날의 그것들도 용기라 생각한다. 모든 것은 때가 있기에, 그때는 그때의 용기가, 지금은 지금의 용기가 필요한 것뿐이다. 바람에 맞설 몸집과 배짱을 키우던 시기라 생각하면, 잘 숨어있던 그때의 내가 대견하기도 하다.



자연스러움이 중요하다 억지스러움은 언젠가 무너진다


'마음 가는 대로 하라'는 주변의 조언과 격려가 오히려 마음을 더 무겁게 할 때가 있다.
내 마음이 어디로 가는지 알아차리는 것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에 신경을 빼앗겨 정작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다. 과정보다 결과를 생각하고, 나보다 남들의 방식들을 너무 자주 접한다. 실패와 실수도 남을 통해 경험하고 그 깨달음마저 숏폼으로 요약되어 접한다. 온전한 나의 경험을 한 지 오래다.


'마음 가는 대로 하라'는 말에 자신 있게 그 마음을 가리키는 역량이 필요하다.

모두가 동시에 그 방향을 가리키라 했을 때, 눈치를 보지 않는 것. 다른 사람의 손가락을 흘끗 보고, 슬그머니 내 방향을 틀지 않는 소신. 그리고 그 소신은 언제나 나의 경험을 통해서만 만들어진다.


주변에는 퇴사 후 프리워커로 성공한 사람도, 힘든 시기를 보내는 사람도 있다. 오히려 회사에 있을 때보다 더 잘 지내는 이야기들을 들으면 설렘이 불다가도, 조금이라도 힘든 이야기를 들으면 지레 겁이 난다. 그 무엇도 아직 내가 경험한 게 아닌데도 감정은 요동친다.


늘 자신감을 high 하게 유지하고 싶다는 유토피아적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항상 자신에 차 있는 사람들을 동경했고 그 비결이 궁금했다. 하지만 그게 그냥 ’어려움의 문제‘가 아니라- 비현실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늘 자신감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게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어쩌면 내게 더 위험한 재앙이 될 수 있다. 누구나 겁을 내고, 또 자신감을 가질 때가 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그 마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그게 용기이자 자신감이라는 생각을 한다.

영화 <에반 올마이티> 중에서


결국, 이번 선택은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닌, 더 잘 살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도전해 보고 잘되면 좋은 거고, 안 되면 그것대로 내 소신을 만드는 경험이 된다. 어느 쪽이든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내가 궁금해하던 '어떤 나'에 조금 더 가까워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저 마침, 용기를 필요로 하는 순간에 용기를 발휘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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