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살에 희망퇴직을 했다

회사는 집이 아니라 '여행 중 머무는 호텔'이어야 한다

by The Other Game

37살에 희망퇴직을 했다. 이전 회사의 이야기다.


누군가에겐 피하고 싶은 현실이었겠지만, 나에게는 다시는 오지 않을 좋은 기회였다. 물론, 결정을 하기까지 망설였던 것도 사실이다. 안정된 월급과 익숙한 환경을 내려놓는 건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두려움과 설렘이 뒤섞인 채, 나는 그 기회를 붙잡기로 했다.



희망퇴직, 똥인가 선물인가


희망퇴직 약 1년 전부터 회사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마음이 떠난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났고, 동료들끼리 모이면 자연스레 이직, 재테크, 커리어 전환 이야기가 오갔다. 그렇다고 급격한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월급은 여전히 제 날짜에 꼬박꼬박 나왔고, 복지도 달라지지 않았다. 누가 봐도 좋은 회사였다. 쉽게 무너질 규모도 아니었고, 희망퇴직 프로그램 역시 침몰의 신호라기보다 회생을 위한 전략이었다. 회사는 회사 나름대로 자기 살 길을 걸어간 것 뿐이다.


누군가는 그런 회사에 원망과 비난을, 또 누군가는 서운함을 토로했다. 블라인드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경영진 욕이나 과거의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기도, 혹은 근거 없는 소문들이 올라왔다. 조금이라도 회사 입장의 글이나 댓글이 올라오면 '사측이냐- HR이냐-' 서로를 몰아갔다.


블라인드에서의 회사 분위기


내 윗 선의 상사들은 자리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비교적 최근에 입사한 후배들은 자리를 애써 지키며 분위기를 살폈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중간 실무진들은 각자의 살 길을 모색하느라 바빴다. 가정이 있는 또래 동료들은 복지 좋은 대기업을 떠나고 싶지 않아 했고, 혼자인 나는 비교적 선택지가 다양했지만 그만큼 혼자라는 이유에서 오는 망설임과 두려움이 있었다.


어수선한 회사 분위기


그 무렵 나는 박사과정 코스워크를 마치는,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었다. 졸업논문이라는 큰 산을 앞두고 잠시 휴직을 할까 고민하던 중 들려온 희망퇴직 소식은나에게 ‘시간과 돈’을 동시에 벌어다 주는 선물같았다. 나 말고도 몇몇이 손을 들었다. 누군가는 회사의 무언의 압박에, 누군가는 다음 행선지를 정해둔 채, 또 누군가는 무계획으로.


나는 논문이라는 명분을 안고 퇴직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세 가지를 확실히 느꼈다.



희망퇴직을 통해 느낀 세 가지


1/ 떠나든, 남든 우린 늘 준비해야 한다.

회사의 월급은 강력하다. 하루를 멍하니 보내도, 정신없이 바쁘게 보내도, 같은 금액이 정해진 날짜에 통장에 꽂힌다. 그 루틴에 익숙해지면 하루의 ‘퀄리티’에 신경을 덜 쓰게 된다. 그런 하루가 쌓이면 어느새 변화에 둔한 자신을 만나게 된다.


월급의 강한 임팩트


늘 준비를 하는 사람은 어떤 변화 앞에서도 초연할 수 있다. 이직을 목표로 면접을 보든, 남아 있기 위해 나만의 무기를 다듬든, 나의 방향만 명확하면 된다. 잘 떠나는 것도, 잘 남는 것도 모두 가치 있는 선택이다.

희망퇴직의 최고 승리자는 위로금을 받고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하는 사람, 그 다음은 그대로 남는 사람, 세 번째는 비슷한 수준의 회사로 이직하는 사람, 그리고 마지막은 무계획으로 그만두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남는 것’은 생각보다 꽤 좋은 선택지다.


2/ 회사와 나는 버리고 버림받는 관계가 아니다.
희망퇴직과 권고사직. 그 단어가 주는 어감에는 묘한 씁쓸함이 있다. 마치 ‘회사가 나를 버린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다. 하지만 회사와 나는 필요에 의한 계약 관계이다.


이런 계약관계는 아니란 말이다-

서로의 방향이 달라지면 헤어질 수 있는 것이고, 서로의 필요가 다하면 우리의 계약은 자의로든 타의로든 종료되는 것이다. 내가 더 좋은 곳의 오퍼를 받고 이직한다고 해서 회사를 ‘버리는’ 것도 아니다. 나를 성장시켜준 회사에 대한 고마움, 회사가 내 기여에 대한 보상을 해주는 것은 서로 간의 당연한 주고받음이다. 버리고 버림받는다는 프레임은 애초에 버려야 한다. 이 마인드셋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이 멘탈 건강에 중요하다.


3/ 결국 중요한 건 ‘내 브랜딩’이다.
같은 팀, 같은 회사에서 자연스럽게 협업하던 관계가 끝나면,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엑셀이나 보고서 작성과 같은 업무 스킬은 순간 강렬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은 단조로워진다. 오래 그리고 깊게 기억에 남는건 ‘같이 일하기 좋은 사람’, ‘협업이 잘 되는 사람’, ‘갈등을 잘 풀어내는 사람’, ‘어려운 대화를 피하지 않는 사람’에 가깝다. 이미지는 회사를 넘어 이어지고 예상치 못한 순간, 추천이나 평가로 돌아온다. 희망퇴직 후 나를 둘러싼 말들은 단순한 가십일 수도 있지만, 결국 내가 어떤 모습으로 지내왔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회사는 집이 아닌 호텔


30대에 경험한 희망퇴직은, ‘회사는 집이 아니라 여행 중 머무는 호텔’이라는 한 유튜브 영상에서의 비유를 떠올리게 했다. 회사의 좋은 시설과 복지를 호텔처럼 누렸다면 참 다행인 일이다. 즐거운 추억으로 남기면 된다. 내 소유의 집처럼 생각하면, 내가 누렸던 것들에 집착하게 되고, 또 잃게 될 것들만 보이게 된다. 난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을 향해 걸어가야 하는데도 말이다.


회사를 집이 아닌 '여행 중 머무는 호텔'로 바라봐야 한다


5성급 호텔에서 잘 지내다 무사히 떠날 수 있는 건 감사한 일이다. 다음 호텔로 이동하는 여행자처럼, 나는 내 길을 계속 걸으면 된다. 희망퇴직은 두렵기도, 설레기도 한 사건이다. 누군가에겐 피하고 싶은 일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하늘이 준 기회다. 결국 중요한 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이전의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떤 여행을 떠날지에 달려있다.


희망퇴직은 무서워할 일도, 피할 일도 아니다. 앞으로의 여정 중 경유지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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