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a 디펜스
4월 하순, 드디어 논문을 제출하고 지긋지긋한 영국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영국 탈출 참조) 10시간의 비행, 비염 때문에 유증상자로 분류된 탓에 공항에서 받았던 코로나 검사와 임시숙소에서의 대기, 자가격리 2주까지 정신없이 마치고 나니 한국에 돌아왔다는 사실을 서서히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바이바(viva)라고 불리는 마지막 면접시험이 남아 있었다.
미국 쪽에서는 보통 디펜스(defense)라고 하는 이 시험은 해당 분야의 교수들이 면접관이 되어 박사과정 학생이 제출한 논문의 내용에 대해 캐묻는 시험이다. 사실 디펜스라는 용어가 이 시험의 본질을 더 잘 설명한다고 생각하는데 면접 시의 행태를 보면 보통 교수들은 공격을 하고 학생들은 이를 방어하는 입장에 서기 때문이다. 면접시험이라는 특성상 표지 사진의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전략은 당연히 웃자고 하는 소리다.
내가 다닌 학교의 경우 면접관은 내부 교수 한 명, 외부 교수 한 명으로 구성되었다. 미국은 좀 다르다고 들었는데 우리 학교는 지도교수가 면접관 선정 및 섭외까지는 하지만 바이바에 들어갈 수 없으며 들어가더라도 한 마디도 말을 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이 얘기는 나 같이 바이바 통과를 보장하기 힘든 학생에게 지도교수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은 빡빡하지 않은 면접관을 골라 주는 것까지라는 뜻이다.
바이바의 결과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수정 없이 통과(Pass with no correction), 경미한 수정 후 통과(Pass with minor revision), 중대한 수정 후 통과(Pass with major revision). 물론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Fail)도 있겠지만 이 지경이면 애초에 지도교수가 학생을 바이바로 보내지 않는 게 맞으므로 거의 가능성이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일단 바이바에 들어가면 면접관들이 괴롭히기는 해도 수정 없이 통과를 시켜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선배들로부터 듣긴 했지만 막상 바이바를 앞둔 입장에서는 결과에 대해 상당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온라인 바이바 날짜는 6월 초로 확정되었는데 자가격리가 끝나고 나니 이미 5월 중순을 향하고 있었다. 아무리 이미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이 꼴도 보기 싫어도 이제는 슬슬 준비를 시작해야 할 때였다. 그런데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정보가 없었다. 그냥 제출한 논문을 꼼꼼하게 읽고, 인용하기는 했으나 자세한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 주요 참고문헌의 내용을 다시 정리하고, 예상 질문과 최근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생각해 보는 정도만 했다.
이 시기에도 매주 지도교수 및 동료 학생들과 줌으로 연구 모임(이라는 명목의 노가리 타임)을 이어갔는데 한 번은 지도교수가 논문 발표와 디펜스의 차이점을 잘 짚어 주었다. 잡 마켓 논문을 발표할 때는 자신의 논문을 최대한 잘 포장(sell)해야 하기 때문에 논문의 장점을 부각해야 하지만 디펜스는 면접관들의 공격에 자신의 논문을 방어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약점도 겸허히 인정하고 어떻게 보완하겠다는 식으로 답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차이점은 잘 알겠는데 이를 실제 디펜스 준비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더라. 이 아둔한 학생을 멱살 잡고 끌고 와 바이바 자리에까지 결국 앉혀 놓으신 지도교수님의 인내심에 다시 한번 감복하게 되었다.
이 날이 드디어 오기는 오는구나 싶었던 바이바 이틀 전, 긴급한 메일을 받았다. 이전에 학교의 심사 과정에서 원래 섭외했던 외부 면접관이 이력서의 추천인 명단에 나의 지도교수를 올려놓은 사실이 발견되어 (부교수씩이나 되는 양반이 논문으로 승부 볼 생각을 해야지 도대체 왜 이력서에 추천인 명단을 적어놓은 건지 알 수 없지만) 급하게 다른 교수로 교체했었는데 이 교체된 분의 아버지께서 위독하셔서 약속한 날짜에 바이바를 할 수 없다는 소식이었다. 다행히도 2주 후에는 가능하다고 해서 일정을 2주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원래 복직 일정을 여유 있게 잡아놓았었는데 연기가 되는 바람에 바이바가 끝나고 정확히 열흘 후에 회사 복직을 하게 되는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
다시 지겹게 2주가 흐른 당일, 온라인이지만 최소한 격식은 차려야 할 것 같아서 결혼식 이후 약 5년 만에 처음으로 정장을 차려입었다. 영국 현지 시간 오전 10시, 한국에서는 박사과정 학생이, 영국과 스페인에서 교수 한 명씩이 온라인 바이바를 위해 줌 미팅룸에 모였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인사를 마치고 논문을 간단히 소개해 보라고 하길래 내용을 어느 정도 외워두었던 논문의 초록(abstract) 부분을 2~3분 정도 얘기했다. 그러고 나서 논문의 챕터 하나하나씩에 대한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첫 번째 챕터에 대해 우선 한 교수가 이런 점은 좋지만 두세 가지 사항에서 의문이 들었다고 점잖게 공격한 후 바로 이어서 다른 교수가 본인의 의견을 말하려고 하는 순간 내가 제지를 했다. '그렇게 한꺼번에 얘기하면 내가 일부 질문을 빠뜨리고 대답할 수 있으니, 먼저 대답을 하고 다시 의견을 듣겠다'라고 말이다. 패기 있게 말을 제지한 것 치고는 뜨뜻미지근한 수준의 대답이 끝나고 다른 교수의 점잖은 공격, 내 대답이 다시 이어진 후 추가로 보충 공격이 있을 줄 알았는데 이제 두 번째 챕터로 넘어가자는 말이 나왔다. 바이바를 시작한 지 25분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이때 이 양반들은 수정 지시를 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 다른 선배 학생들은 바이바에 들어간 후 적어도 두 시간은 지나야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현재 추세로 볼 때 내 바이바는 확연히 짧게 끝날 것으로 보였다. 아마 온라인이라 짧게 끝낼 생각인 것 같기도 했다.
웃긴 게 두 번째와 세 번째 챕터에 대해서는 두 교수가 아까 내가 했던 말을 완전히 무시하고 본인들 의견을 쭉 이어 말한 후 형식적으로 내 대답을 들었다는 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전에 가졌던 느낌이 거의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하여 총 1시간 10분여 만에 바이바가 무사히 종료되었다. 두 면접관들이 결과 논의를 해야 하기 때문에 미팅 룸에서 나갔다가 10분 후에 들어오라고 안내를 받았다. 그리고 '수정 없이 통과'라는 결과를 받아 들었다.
서른이 넘어서 시작한 유학이고 6년이 걸렸으니 보통 학위를 받게 되는 나이보다는 한참 늦은 편이었다. 그만큼 감흥도 덜 한 느낌이었다. 아마 학부 끝나고 바로 유학 가서 박사학위를 30대 초반에 받았다면 더 기뻐서 날뛰었을 것 같다. 어쨌든 6년 동안 고생을 한 보람이 있어서 좋았고 특히 아내와 아이가 같이 고생한 시간이 결과적으로 아주 헛되지는 않게 되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렇지만 아직도 회사에서 누가 박사님이라고 부를 때면 손발과 내장이 오그라드는 느낌이 있긴 하다. 제발 과장님이나 이름으로 불러주시지...
* 표지 그림 출처: https://xkcd.com/1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