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박사를 받은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다 보면 경제학 박사를 과대평가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사실 나도 박사학위를 마치기 전에는 비슷한 생각을 했던 적이 많았기 때문에 마냥 세간의 오해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이 글에서는 경제학 박사가 많이 받는 네 가지 오해의 실체를 밝히고자 한다. 1번은 박사학위 여부와 상관없이 주로 경제학 전공이라서 받는 오해고 2~4번은 전공을 불문하고 박사들이 주로 받는 오해로 생각된다. 나와 내 주변의 일부 경제학 박사의 사례를 바탕으로, 순전히 재미를 위해 쓰는 글이므로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마시기 바란다.
경제학뿐만 아니라 경영학 전공을 한 사람들도 주변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을 것이다. 내 경우에는 딱 한 가지 사례만 들면 이 오해를 풀 수 있다. 나는 2014년 8월에 유학을 나갔는데 유학 전에 서울에 아파트를 사놓고 나갈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물론 핑계로 댈 논리는 많이 있었다. 영국 박사과정에서는 장학금을 많이 안 준다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모아둔 돈을 상당히 많이 쓰고 와야 할 가능성이 있었는데 당시 파운드 환율이 역대 최고를 기록하고 있었고,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사더라도 유학 생활 동안 정기적으로 소득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출 이자를 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등등. 그렇지만 내가 재테크에 능해서 지금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서 서울에 아파트를 사놓고 영국으로 갔을 것이다.
사실 내 아내도 결혼 전에는 내가 재테크를 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영국에서 파운드로 환전을 할 때 내가 환율 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꼴을 지켜보면서 서서히 그 기대를 내려놓았다. 브렉시트 투표가 통과되던 날 파운드당 1,800원 정도였던 환율이 1,600원까지 떨어졌는데 나는 1,600원은 오버슈팅(시장이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이고 금방 다시 1,700원 정도까지는 오를 것이라고 생각해서 얼른 원화를 파운드로 바꿨다. 그리고 환율은 1,400원 중반대까지 더 떨어진 후 안정되었고, 나는 아내의 오해를 풀어주긴 했지만 아내한테서 도대체 무엇을 위해 경제학 박사 공부까지 하고 있는 것이냐는 푸념을 듣기도 했다. (물론 이 푸념은 농담이었고 내 아내는 유학 생활 내내 나의 든든한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었다.)
일부 거시경제학을 전공한 경제학자들의 경우 현재 경제 상황을 잘 알고 있을 수도 있다. 거시경제학은 경제학 중에서도 국가 경제가 전체적으로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연구하는 분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거시경제학자들 중에서도 전반적인 경제 상황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특정 분야만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많기 때문에 이를 장담할 수는 없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만 해도 전공 분야가 거시경제학에 살짝 걸쳐 있는데 최근 코스피(KOSPI)나 원달러 환율 등이 어떤 추세로 움직이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여타 전공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들은 더한 경우도 많다. 사실 담당 업무를 하거나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는 게 아닌 이상 경제 상황에 대해 잘 모르는 게 당연하다. 아마도 금융권에서 투자 관련 업무를 위해 시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 하는 사람들이 전반적인 경제 상황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학 관련 지식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다 보니 경제 기사를 읽을 때 상대적으로 이해하는 속도는 빠를 것으로 본다. 물론, 모든 경제학자들이 경제 기사를 잘 찾아 읽는 것은 아니다. (설마 나만 그래?)
한때는 그랬을 수도 있다. 경제학 석박사 통합과정에 입학하면 1년 차에 보통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 계량경제학 수업을 듣고 시험을 본다.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박사과정으로의 진학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1년 차에는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고 이때가 경제학 박사과정, 더 나아가서는 높은 확률로 남은 인생에서 경제학 지식의 수준이 최고조에 달했을 시기다.
본격적으로 논문을 쓰게 되면 논문의 주제와 직접 관련되지 않는 이상 이전에 습득한 내용을 서서히 잊어버리게 된다. 박사 한 명이 논문을 쓰는 분야는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불과 한두 문장으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고 그나마 교과서에서 전혀 다루지 않는 연구가 대부분일 정도로 한정적이다. 박사과정 내내 본인 전공 분야의 지식을 얻는 데 허덕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전에 배웠던 여타 전공과목의 내용까지 기억하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 내가 교수가 되어 본 것은 아니라서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아마 교수들도 대학교 학부 과목을 처음으로 가르치라고 하면 많은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위 3번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데 사실 이건 내가 박사과정을 시작하기 전에 가지고 있던 오해다. 그때만 해도 내가 학부만 졸업했기 때문에 논문을 읽는 훈련이 안 되어 있어서 논문 읽기가 어렵게 느껴지는 줄 알았다.
막상 박사를 해 보아도 논문 읽는 게 버겁게 느껴지는 건 똑같았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내가 전공하는 분야는 전체 경제학에서 빙산의 일각도 되지 않기 때문에 동일 전공 분야의 논문이 아니라면 논문 읽는 속도가 학부만 졸업한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전공 분야가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 경우 본격적으로 각 잡고 읽으면 대략적인 논문의 내용을 파악하는 시간이 다소 줄어들기는 했다. 또한 논문의 초록(abstract)과 서론(introduction)을 보고 나면 어떤 논문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읽어야 되는지에 대한 안목이 약간 생긴 것 같다. 교수들도 본인의 전공 분야가 아니면 논문의 초록이나 서론 정도만을 읽는 걸 많이 목격했다.
* 표지 사진 출처: https://medium.com/bobs-economics/economics-is-not-about-money-c3813b27a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