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박사과정을 졸업할 예정인 학생들이 구직 활동을 시작하는 것을 보통 잡 마켓에 나간다(go on the job market)고 말한다. 잡 마켓이라는 표현은 인력시장을 연상시키는데 전 세계의 대학교, 연구소, 국제기구, 정부기관 등에서 구인을 하고 경제학 박사를 받을 예정인 사람들은 직업을 구한다는 면에서 본질적으로는 인력시장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나는 잡 마켓에 나가지 않았다. 박사과정을 시작할 때만 해도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많이 노력하면 잡 마켓에 나가 좋은 학교의 교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논문을 쓰기 위해 발버둥 칠수록 나에게 월급을 꼬박꼬박 줄 직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면서 군말 없이 원래 직장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보통 나처럼 돌아갈 직장이 있거나 개인적으로 구직 활동을 하는 경우에는 잡 마켓에 나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은 잡 마켓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 쓴 글에 비해서는 정보의 현장성이 덜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수박 겉핥기식 정보라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라 믿고 내가 옆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토대로 경제학 잡 마켓을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경제학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범위가 넓은 잡 마켓은 미국 경제학회(American Economic Association)에서 주관하는 연례 사회과학 공동 학술대회(Allied Social Science Associations, ASSA)와 함께 열린다. 매년 1월 초에 개최되는 이 학술대회에는 전 세계의 경제학자들이 컨퍼런스에 참가하기 위해 모이기 때문에 이들이 자연스럽게 경제학 박사 채용 면접을 진행하는 기회로도 활용된다. 요즘은 ASSA 미팅 외에도 12월에 유럽 잡 마켓(European Job Market)이 열리는데 이 곳에서만 채용을 하는 유럽 대학들도 있기 때문에 유럽에서 직장을 구하고자 하는 졸업 예정생들은 여기에도 반드시 참석할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석박사 과정 입학 후 5년 차(박사과정 3년 차)에 잡 마켓에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는데 최근에는 6년 차(박사과정 4년 차)는 보통이고 7년 차(박사과정 5년 차)에 나가는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채용하는 쪽과 직업을 찾는 쪽 모두 눈이 높아지면서 채용 시장에서 통할 만한 수준의 논문을 써내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구직을 시작하는 경제학 박사과정 학생의 마지막 해는 보통 다음과 같이 흘러간다. 졸업 직전 해의 여름방학 때까지 지도교수와 이번 잡 마켓에 나갈 것인지를 합의한다. 여름방학 동안에는 대학원생들끼리 모의 잡 마켓 세미나를 하기도 한다. 9~10월에 학기가 시작된 후 학과 내에서 교수들까지 모두 모인 가운데 살벌한 분위기에서 모의 잡 마켓 세미나를 진행한다. 세미나가 끝난 후에는 교수들과 모의 면접도 하고 11월 초중순 정도까지 지원서를 작성한다. 서류 전형에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으면 유럽 잡 마켓과 ASSA 미팅에 가서 면접을 본다. 면접 결과를 토대로 1~2월 중에 지원한 학교 또는 기관에서 지원자를 초청(flyout)한다. 우리 학교에 초청되어 오는 지원자들의 일정을 본 적이 있었는데 오전 9시 30분부터 저녁식사 때까지 면접과 세미나 등으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이렇게 숨 가쁜 일정을 소화하면 드디어 최종 결과가 나오게 된다.
우리나라의 취업준비생들이 100개가 넘는 기업에 지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듯이 경제학 잡 마켓도 불확실성이 워낙 높아 기본적으로 150~200군데의 학교나 기관에 지원하는 것 같다. 소위 순위가 높은 대학원 출신이라고 해서 반드시 좋은 직업(보통 대학원이 있는 연구 중심 대학의 교수 자리를 선호한다.)을 얻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학벌보다는 좋은 논문을 가지고 있는 지원자들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지원자들 사이에서도 빈익빈 부익부가 심하여 일부 지원자의 경우 미팅이 열리는 3일 동안 20~30군데 요청을 받고 10군데가 넘는 학교에서 초청을 받아 인터뷰와 초청을 거절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좋은 직장을 구하는 데는 물론 훌륭한 논문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지만 논문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그 논문을 세미나에서 잘 포장하여 발표하고 온갖 종류의 살 떨리는 질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좋은 평가를 받기는 힘들다. 특히 세미나는 엄연히 채용 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에 발표 시에 일부러 공격적인 질문을 퍼붓는 교수들도 많은 것 같다. flyout에서는 발표도 하지만 30분마다 상대를 바꾸어 가며 계속 면접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면접에서는 함께 일할 동료로서 이 사람이 얼마나 기존 교수들과 잘 어울릴지를 테스트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나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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