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에서 공저자로
경제학 전공은 보통 논문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는 박사과정(PhD)에 진입하게 되면 수업을 더 이상 수강하지 않기 때문에 여유 시간이 많은 편이다. 이 시기에 연구 주제가 안 잡혀 고민이라는 대학원생들은 많지만 할 일이 많아 시간에 쫓기는 대학원생들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박사과정 1년 차에 일에 치여 살던 그 흔하지 않은 대학원생이었다. 수업 한 과목을 재수강해야 했고 평소보다 많은 클래스를 배정받아 가르치게 되었던 데다 가르치던 과목의 교수가 쓸데없는 의욕을 부리는 바람에 퀴즈 등의 추가 채점 업무가 크게 늘어났지만, 사실 중요한 원인은 따로 있었다. 바로 그 해 5월부터 시작했던 연구 보조원(RA, Research Assistant) 역할이 9월부터 공저자(Co-author)로 전환되면서 더욱 책임감을 가지고 많은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시작은 아주 사소했다. 세미나에 들어갔는데 그 날 발표의 주제가 한국에 관한 내용이었다. 세미나 시작 직전에 평소 한국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던 중국인 선배와 그 주제에 대해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한 교수가 나에게 한국인이냐고 물으며 '내가 한국에 대한 프로젝트를 계획 중인데 RA 하는 데 관심 있으면 나에게 연락해라.'라는 제안을 했다. 아내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던지라 돈을 좀 더 벌 수 있겠다 싶어 흔쾌히 제안을 승낙했다.
나를 노예(?)로 섭외한 교수 A는 한 분야의 이론을 개척하다시피 한 대가급이었다. 교수 A는 다른 공저자이자 나를 고용할 수 있는 자금을 확보하고 있던 교수 B와 연락을 취해 보라고 했다. 교수 B와 간단한 면접을 본 후 학년말 시험이 끝난 후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로 계약을 했다.
첫 번째 임무는 통계청으로부터 한국의 기업 단위 데이터를 확보하는 일이었다. 한국어를 모르면 이 작업을 진행하기가 어렵고 데이터를 확보한 이후에도 공인인증서가 있어야만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한국인 RA는 연구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다. 대략 협의를 마친 후 대금 결제만 하면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6주 정도가 지체되었다. 교수 B 쪽의 자금을 관리하고 있던 행정직원은 분명 송금을 했다고 하는데 통계청 쪽에서는 받지 못했다고 하는 상황이 계속 반복되었다. 나중에는 행정직원이 SWIFT 전문(해외송금기록)의 원문까지 보내줬는데, 내가 이 전문을 자세히 뜯어보고 이 무능한 양반이 반복적으로 계좌번호를 틀리게 입력했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이 논문 작업은 영원히 시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해 여름방학 내내 기초 데이터 작업을 했다. 이때 유튜브로 아이돌 음악 들으면서 작업하는 게 습관이 되어 버려서 지금도 단순 작업은 음악 없이는 오래 하지 못한다. 두 달 넘게 작업을 하다가 여름방학이 끝나갈 때쯤 공저자가 되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데이터 작업이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서 나에게 줄 수 있는 돈이 고갈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사실 RA일 때나 공저자일 때나 내가 하는 일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역할 분담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대가급 교수 A는 논문의 근간이 되는 큰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여러 세미나에서 논문을 홍보하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 실제 논문 작업은 대부분 교수 B와 내가 담당했다. 교수 B는 논문의 세부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논문을 70% 이상 작성했다. 나는 주로 데이터 처리를 하고 논문에서 데이터와 관련된 부분을 썼다. 회사로 보면 교수 A는 임원, 교수 B는 팀장, 나는 팀원 역할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교수 A는 경제학 이론 쪽에서는 대가였지만 계량 분석의 세부 방법론까지는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분석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 그로부터 논문의 세일즈 포인트를 잡아내는 능력은 대단했다. 워낙 바쁜 사람이라 주로 스카이프 통화를 하거나 아침식사를 하면서 미팅을 했는데 10~15분만 얘기해도 바로 핵심을 찌르는 것을 보면서 역시 대가는 다르다는 생각을 매번 했다.
교수 B는 연구에 더하여 국제기구 일까지 맡아하고 있어서 교수 A만큼이나 바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일에 대한 피드백이 정말 빨랐다. 데이터 처리를 한 다음에 결과를 설명하는 메일을 보내면 보통 하루 이틀 내에 답을 주었고 그게 어려울 경우에는 언제까지 피드백을 하겠다고 항상 나에게 알렸다. 연구가 막힐 때마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제공했고 (당연히 모든 아이디어가 효과적인 건 아니었지만) 작업량이 많을 때는 적절한 격려도 잊지 않았다. 명목상으로는 공저자라서 나와 동등한 위치였지만 실제 일을 할 때는 이상적인 상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같이 작업한 논문은 학술지에 투고(submit), 수정 및 재투고(revise & resubmit)를 거쳐 현재 사실상 게재가 확정된 상황이다. 박사논문에도 한 챕터로 들어가서 박사과정 졸업 시기를 앞당기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돌이켜 보면 박사과정 내내 여러 면에서 운이 좋았는데 이 논문을 공저한 경험도 마찬가지였다. 박사논문을 제출할 때 감사의 말에 이 분들에게 논문 공저의 훌륭한 예를 보여줘서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쓰기도 했다.
주의할 점은 모든 논문 공동 작업이 이렇게 아름답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당장 전 세계 경제학 대학원생들의 디씨인사이드라고 말할 수 있는 econjobrumors 웹사이트에서 이메일에 답장을 하지 않는 공저자에 관한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대학원생들의 경우 공저 제안이 들어왔을 때 보통 공저자를 가릴 입장은 아니겠지만 미리 공저자의 성향을 어느 정도는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 표지 사진 출처: https://www.timeshighereducation.com/comment/authorship-abuse-is-the-dark-side-of-collabor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