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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swell Mar 03. 2021

효과적인 세미나 발표를 위한 소소한 조언

박사과정을 좋은 논문을 쓰는 방법을 터득해 가는 과정이라고 본다면 세미나에서의 발표(presentation)는 박사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좋은 논문은 연구실에서 혼자 끙끙대며 붙잡고 있기만 해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연구자들과 연구 내용을 공유하면서 연구 내용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지를 검증하고 약점을 보완하며 여러 가지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들은 적어도 1년에 한두 번씩은 연구하고 있는 내용을 교수와 동료 학생들 앞에서 발표하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박사과정(PhD)에 있는 3년 동안 총 6번의 길고 짧은 발표를 했다. 사실 나는 잡마켓에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발표를 할 기회가 다른 학생들에 비해 적은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기적으로 세미나에 참석하여 발표를 듣고 내가 직접 발표를 하는 경험이 더해지니 좋은 발표의 조건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조건을 내 발표에 제대로 적용하지 못했다는 결정적인 문제점은 있지만 어쨌든 이 글에서는 효과적인 세미나 발표를 위해 알아두면 좋을 깨알 같은 조언을 적어보려 한다.

 


첫째, 세미나의 길이에 상관없이 발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첫 부분이다. 발표 슬라이드로 치면 첫 7~8페이지 정도다. 이 부분에 연구 주제를 떠올린 계기가 된 사실(motivating facts), 연구 주제, 기존 논문과 비교했을 때 내 연구의 차별점(contribution), 결과 미리 보기 등이 들어가 있는 것이 좋다. 요즘은 연구 분야가 나날이 전문화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같은 전공을 연구하는 교수와 대학원생들이 모여 있어도 내 연구의 세세한 사항을 이해하면서 발표를 끝까지 주의 깊게 들어줄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청중은 보통 인내심이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앞부분에서 내 연구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공들여 설명하여야 청중의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다.


둘째, 발표의 핵심은 슬라이드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청중과 대화하는 것이다. 발표에서 슬라이드에 있는 내용을 설명하는 것은 청중의 반응을 이끌어 내기 위한 수단이라고 보는 게 맞다. 내가 아무리 뛰어난 연구를 했고 그 내용을 잘 설명하더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다른 의견을 갖게 되어 있다. 질문과 대답을 통해 그 의견이 틀렸다면 반박하고 일리가 있다면 어떻게 연구에 반영할지를 고민하는 게 발표의 본질적인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발표 그 자체보다는 여기저기서 나오는 예측불허의 질문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질문에 제대로 대처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 그만큼 쉽지 않지만 청중의 의견으로부터 연구에 대한 통찰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도해야 할 자세라고 본다.


셋째, 청중과의 대화라는 면에서 연관되는 내용인데 정해진 세미나 시간 내에 슬라이드를 끝까지 설명하지 못했다고 해서 실패한 발표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는 연구 내용에 대해 질문이 많이 나왔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세미나 시간에 비해 준비한 내용이 많았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이런 경우에는 보통 발표 초반에 지적이 나온다. 슬라이드 내용에 대한 질문이 많이 나오면 발표하는 입장에서는 진땀을 흘릴 가능성이 높지만 결과적으로 내 연구를 개선시키는 데는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나의 연구가 약점이 많다면 그 약점을 세미나 때 지적을 받아 내용을 보완하는 것이 잡톡(job talk, 취업 면접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발표)이나 디펜스(박사학위 수여를 위한 구술면접시험) 같은 결정적인 순간에 지적받는 것보다 훨씬 낫기 때문이다. 준비한 내용도 제대로 말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난도질당하는 경험이 당연히 유쾌할 리 없지만 몸에 좋은 쓴 약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넷째, 당연한 얘기지만 슬라이드에는 최소한의 필요한 내용만을 담는 것이 좋다. 이렇게 당연한 조언을 굳이 하는 이유는 연구를 진행한 사람의 입장에서 슬라이드를 만들다 보면 모든 내용이 내 자식 같아서 세세한 사항까지 굳이 포함시키고 싶은 유혹에 빠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유혹이 찾아올 때면 발표 슬라이드의 뒤쪽에 부록(appendix) 페이지를 추가하여 본 발표에서는 빠지지만 질문이 나오면 보여줄 수 있는 내용을 넣는 것을 권장한다. 이렇게 하면 핵심만 설명하면서도 준비는 많이 되어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학술 발표에서 많이 사용하는 비머(beamer) 슬라이드에는 버튼을 클릭하면 뒤쪽의 부록 페이지로 이동하는 하이퍼링크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 표지 사진 출처: https://inomics.com/advice/how-to-give-a-great-academic-presentation-47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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