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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swell Apr 17. 2021

본격적인 박사과정 공부의 시작

MRes 과정에서 수업 듣고 시험 본 이야기

숨 가쁘게 1년짜리 석사과정(MSc)을 마쳤지만 박사학위를 향한 긴 여정은 이제 겨우 시작 단계였다. 2년 동안의 MRes 과정에서 수업을 듣고 일정 수준 이상의 시험 점수를 받아야만 PhD 과정에 진학하여 논문을 쓸 수 있었다. 더군다나 내가 졸업한 학교의 경우 MRes가 끝나고 PhD 과정 1년 차에도 의무적으로 선택과목 한 개를 듣고 시험을 치도록 되어 있어서 시험과의 악연이 유난히도 질기게 이어졌다.



나는 이미 전 해에 석사과정을 위해 기초 수학 과정(math camp)을 이수했기 때문에 MRes 과정 직전에 수학 과정을 다시 들을 필요는 없었다. 그렇지만 학과에서는 그 과정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학기 첫 3주 동안 추가로 수학 수업을 실시하였다. 해석학의 기본 내용을 바탕으로 처음 들어보는 온갖 개념들이 어지럽게 떠돌았는데, 학교 다닐 때 해석학도 제대로 수강하지 않았던 내 입장에서는 이 내용으로 시험을 보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때 배웠던 내용은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는데 내가 논문을 쓸 때 수학 때문에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던 것을 보면 그 당시 엄청난 수준의 수학을 가르쳤던 젊은 조교수는 자신에게 강의를 맡긴 게 너무 짜증 나서 어디 한 번 엿 먹어보라는 마음가짐으로 수업을 한 것 같다.  


MRes 과정 1년 차는 일반적인 미국의 경제학 석박사 통합과정 1년 차와 마찬가지로 필수과목인 미시, 거시, 계량 수업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MSc 때는 답안지에 영어를 많이 쓸 필요가 없었던 미시가 가장 편했는데 요구되는 수학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오히려 가장 어려운 과목이 되었다. 그렇다고 나머지 과목은 쉬웠다는 건 아니다.


첫 학기 때는 신혼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석사 때 공부하던 관성을 유지하면서 무려 일요일에도 학교에 가는 기염을 토했다. 이때만 해도 졸업 후 학계로 나가겠다는 헛된 생각 때문에 좋은 성적을 받아야겠다는 욕심이 있었다. 두 번째 학기부터는 생활에 적응이 되면서 평일에는 7시면 집에 갔고 주말에는 아내와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했어도 세 과목 모두 박사과정에 진학하는 데는 문제없는 수준의 점수를 받았다.


MRes 1년 차에는 학년말 시험이 5월에 일찌감치 끝났다. 다음 학년은 9월 말에 시작했기 때문에 방학이 무려 4개월 넘게 계속되었던 것이다. 이때 정말 재미있게 놀았어야 하는데 평소에 노는 법을 잘 모르고 산 인생인지라 이 시기를 재미없게 보낸 게 아직까지 천추의 한으로 남아 있다. 그래도 연구 주제 찾아보겠다고 2~3주 정도 논문을 깨작깨작 읽고 홈페이지에서 교수들 연구실적 찾아보고 한 덕에 MRes 2년 차가 시작되자마자 지도교수를 빠르게 확정할 수 있었다.



2년 차에는 선택과목 두 개를 수강하고 연말에 간단한 논문을 제출하도록 되어 있었다. 선택과목으로는 거시경제학과 노동경제학 수업을 들었다. 노동은 석사 때도 수강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그러나 거시는 교수 네 명이 나눠서 맡았는데 당시 나의 관심 분야를 강의한 교수는 한 명도 없었다. 교수 한 명이 나와 논문을 공저했기 때문에 그 부분이 그나마 익숙했는데 이 양반은 하도 성의 없이 시험 문제를 내다보니 (OO 이론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식이었다.) 이 부분은 아예 시험 범위에서 제외되었다. 적어도 시험에서 50점은 받아야 했는데 공부를 한다고 했어도 관심 없는 분야다 보니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가지 않고 계속 겉돌았다. 조교수 한 명이 어이없게도 자신의 잡 마켓 논문 부록에 있던 내용을 증명하라는 시험 문제를 내고 다른 교수도 고도의 응용문제를 내는 바람에 결국 50점에 미치지 못하는 점수를 받아 들고 재수강을 해야 했다. 학부 때도 안 해봤던 재수강을 박사 과정 때 처음으로 하게 되니 참 씁쓸했다.


MRes 과정 논문을 위해 10월에 지도교수를 정하고 3주에 한 번 정도씩 정기적으로 미팅을 가지기 시작했다.

지도교수님이 워낙 훌륭하게 이끌어주셨고 마지막에는 논문을 자세히 읽고 의견도 말씀해주신 덕에 훌륭하지는 않지만 무난한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이 논문은 제출했을 당시에도 만족스럽지 않았는데 졸업논문에 보통 3개의 짧은 논문이 들어가는 관행 때문에 논문 개수가 부족하여 어쩔 수 없이 포함시킬 수밖에 없었다. 제출 직전에 최소한의 수정만 하는데도 3~4일이 걸렸는데 과거에 이 형편없는 논문을 쓴 나를 한심해하다가도 그래도 3년 동안 배운 게 있으니 이 논문이 불만족스러운 것이겠지 라며 어설픈 자기 위안을 시도하기도 했다.



MRes 과정은 전반적으로 MSc 과정에 비해 덜 힘들었지만 PhD 과정에서 한 과목을 재수강해야 하는 부담이 남는 바람에 끝이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쨌든 MRes 과정이 끝나니 수업과 시험도 거의 마무리가 되어 가고 PhD 과정으로 넘어가 본격적으로 논문을 써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 표지 사진 출처: https://www.lse.ac.uk/News/Latest-news-from-LSE/2018/05-May-2018/LSE-launches-new-open-access-publishing-platf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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