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 시리즈를 읽고
이 책을 본격적으로 읽게 된 계기는 어느 수요일 재활용 쓰레기 수거장에서 발견한 헌 책이었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1편부터 4편까지 총 11권(원래 12권이지만 한 권은 없었음)이 한쪽에 쌓여있었는데, 발견한 순간 이번 기회에 한 번 읽어볼까 싶어 냉큼 집으로 가져왔다. 지금 돌이켜 보면 명작을 상당히 어이없는 방식으로 처음 접한 것인데 천재 마법사인 해리포터가 프리벳 가 4번지 이모 집의 계단 밑 방에서 천대받으면서 자라났다는 책의 설정과 묘하게 통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전까지만 해도 해리포터 시리즈는 아이들만 보는 책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어서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군대에 있을 때 1편을 재미있게 읽기는 했는데 단순한 성장소설이라는 인상만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영화도 분명히 한두 편 봤는데 내용이 전혀 기억에 없는 걸 보면 그때는 이 책을 제대로 평가할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번에 읽어보니 이전에 가졌던 내 편견이 완전히 틀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연히 재미는 보장된 데다 세계관도 상당히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고 예상하지 못한 반전도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등 청소년 소설이 아닌 일반 소설로 보아도 완성도가 훌륭한 작품이었다. 전형적인 영웅소설의 서사 구조(고귀한 혈통, 비정상적 출생, 탁월한 능력, 죽을 고비를 맞음, 구출자에 의해 죽을 고비에서 벗어남, 자라서 위기에 부딪힘, 위기를 극복하고 승리자가 됨: 링크)를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지만 그 속에 정치권력이나 언론 등에 대한 풍자도 은근히 곁들여 있었다. 또한 해리포터 영화의 진짜 주제가는 비틀스의 'All you need is love'가 되었어야 맞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시종일관 그놈의 사랑 타령을 하고 있지만 크게 진부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이 책이 뛰어나다고 느낀 또 다른 이유는 대부분 등장인물들의 말과 행동에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덤블도어 교수에게 충성하고 해리와 친구들을 살뜰히 챙기며 마법 세계의 이국적이고 징그러운 동물들에 쉽게 정을 주는 해그리드나, 해리는 싫어하지만 슬리데린 기숙사 학생들은 대놓고 편애하는 스네이프 교수가 왜 그런 캐릭터를 갖게 되었는지에 대한 사연이 소설 곳곳에 등장한다. 반전도 느닷없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보통 미리 복선을 던져 놓기 때문에 잘 읽다가 반전을 얻어맞고서 앞쪽을 다시 찾아보는 경우도 많았다. 개인적으로 6편(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을 읽고 나서 혼혈 왕자가 제목에 들어갈 정도로까지 중요한 인물인지 의문을 가졌는데 7편을 읽고 나니 그 의문이 해소되었다. 이 경우 제목이 떡밥 역할을 한 셈이다.
시리즈 전체로 봤을 때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건 3편과 4편이었다. 해리가 맞이하는 위기의 규모가 점점 커져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결말이 만족스러운 편이어서 그렇게 느낀 것 같다. 5편은 본격적으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맞은 해리가 모든 것에 화가 나 있는 감정 상태가 고스란히 전해져서 약간은 읽기가 힘들었다. 시리즈의 마지막인 7편은 고독하게 운명을 향해 나아가는 해리의 모습이 너무 비장했기 때문인지 몰입도가 최고조에 이른 상태에서 긴장감을 가지고 읽긴 했지만 재미는 조금 덜했다고 생각한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전편이 영화로도 나와 있어서 소설을 한 편씩 읽고서 영화도 하나씩 챙겨보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이렇게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경우 영화를 아주 잘 만들지 않는 이상 책이 더 낫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게 된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경우에는 책에서 다루고 있는 방대한 이야기를 두 시간 남짓한 영화에서 모두 다룰 수 없으므로 생략되거나 조금씩 내용이 바뀐 부분도 상당히 많기 때문에 이야기의 재미에 빠지고 싶다면 당연히 책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렇지만 마법 세계를 다루고 있다는 소재의 특수성으로 인해 책에서는 상상을 해야만 하는 장면들을 영화에서는 훌륭하게 시각적으로 구현해 준다는 점에서 영화도 책의 내용을 충분히 보완하고 있다. 결론적으로는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면 재미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표지 사진 출처: https://apalfrns.tistory.com/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