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행복할 자격, 더 잘 살 자격이 있다
'이번 진급에서는 제외되었습니다'
당연한 결과였다. 제주로 떠난다고 4월에 퇴사를 하고자 했던 나를 누가 승진을 시키겠는가.
서울에 있었다면, 윤 대리에서 윤 과장으로 승진하는게 당연했겠지만, 이미 나는 제주도로 내려왔고, 퇴사하려던 나를 잡아 월급은 그대로 줄테니 집에서 일을 하라는 회사의 배려(?)를 받고있는 중인데, 그 당연한 승진은 당연한게 아닌 것이지.
그렇다고 하더라도, 솔직히 회사 생활을 계속하게 되었으니, 진급에 대한 욕심은 당연한 것이었고, 적어도 언제까지 이렇게 재택으로만 근무할 수 있는게 아님을 알기에, 언젠가 퇴사를 하게되더라도, 과장으로 퇴사는 하고 싶었다. (비록 다시 회사일을 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보험 같은게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하지만 진급엔 누락되었고, 내년 승진까지 내 집으로의 출근이 보장되지 않는 마당에 이제 진짜 시한부 직장생활임을 실감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원래 내가 퇴사했다면 무엇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나의 꿈은 제주로 가기위해 퇴사를 생각했을때, 제주도에가서 나답게 사는 것이 꿈이었다.
나답게 사는 것.
과연 나답게 사는 것은 무엇일까?
철학자 데카르트의 고민처럼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라는 깊은 고민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하고싶은 것 속에 나 다운 것이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처음 제주로 가겠다 했을때 제주에서 뭘 할 거냐라는 질문에, 난 사진도 찍고, 글도 찍으며, 유튜브와 SNS를 통해 인플루언서가 될 것이다. 라고 말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사진은 늘 찍어오던 것이었고, 매일 같이 이곳 저곳 누비며 하루에 한 두군데만 다녀도 최소 연간 300개 이상의 컨텐츠는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 사이사이 여행지를 누비며, 글도 쓰며, 여행 브이로그와 인스타그램도 열심히 할 수 있을 것이이라 자신했기에 퇴사하고 두어달 고생하면 잘되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삶을 택하게되면, 처음엔 행복할 수 있고, 잘되게 되면 직장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도 있지만, 확률적으로 그러한 성공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실패하게되면 먹고 사는 문제에 직면할 수도 있고, 돈이라는 놈은 날 가만두지 않을게 분명했다.
하지만 한번쯤 내인생에서 남을 위해 사는게 아닌 나를 위해 살아보는 날이 하루는 있어하지 않을까?
비록 내가 내일은 가난해지더라도, 오늘은 행복할 수 있기에, 내일도 행복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지금의 걱정은 어쩔 수없는 것이고, 어짜피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현실의 무게는 달라지지 않는다면, 오늘도 힘든 삶보단 오늘은 즐거운 삶을 살고 싶다.
많은 걸 가지진 못했더라도 많은 것을 담는 삶, 가지고 있는 빚보단 빛을 추구하고싶은 삶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삶이고, 그럴려고 제주에 왔기에 조금더 나는 도전적인 삶을 살아도 될 것이다.
제주에 정착 중이 라는 말보단 생존하는 중이라는 얘기가 더 좋은 것은 내가 이곳에 여행자의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느낌이기에 생존 중이라는 단어가 더 좋고, 어짜피 이세상에 내려온 나란 사람도 어쩌면 길게보면 이 지구의 여행객이기에, 조금 더 멋지게 살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을까?
지금 내가 잡고 있는 끈이 곧 끝이 날 것이 알기에, 역설적으로 더 설레는 삶을 기대해본다.
나는 멋지게 살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