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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승 강경빈 Apr 17. 2020

사이클, ‘밀바의 추억’

켈리 맥고니걸은 ‘움직임의 힘’에서 이렇게 말했다. “운동을 전혀 즐기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 장담컨대 대부분 운동가로 거듭날 경험이나 유형이나 공동체를 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읽다 보니 잊고 지냈던 추억이 떠올랐다. 


20대 후반 사이클에 빠져 살았다. ‘도싸’라는 동호회 활동을 열심히 했다. 처음 도싸 모임에 나갔던 날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4월의 어느 화창한 일요일,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 차를 타고서나 갈만한 곳을 사이클을 타고 갔다. 태릉입구역에서 출발해 경기도 광주 분원리를 다녀오는 왕복 80km가량의 코스였다. 사이클은 바퀴가 얇고 손잡이가 아래를 향하고 있는 자전거다. ‘로드바이크’ 또는 ‘로드’라고도 부른다.



모임을 나가기 전에는 한강에서 사이클을 탔다. 사이클을 타고 서울 외곽으로 나간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 80km라는 거리가 현실성 없게 느껴졌다. ‘초급’이라는 말만 믿고 모임에 나갔다. 출발 전 자기소개를 하고 수신호와 장애물을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법에 대한 안전 교육을 했다.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다 보면 위험한 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헬멧 착용과 안전교육은 필수다. 


사이클 용어(?) 중에 ‘로드 뽕’이란 단어가 있다. 운동을 통해 맛보는 짜릿한 기분을 뜻하는 러너스 하이의 사이클 버전쯤 된다고 이해하면 된다. 단체 라이딩은 마치 ‘로드 뽕’ 샤워 같았다. 기분 좋은 감각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생각보다 힘들지도 않았다. 순진한 착각이었다. 


그룹 라이딩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 안전을 위해 운영진의 통제에 따라 팩을 유지한 채 달린다. 그러다 차량통행이 적은 곳, 낙타 등, 언덕처럼 팩을 쪼개도 안전한 곳에서는 ‘오픈’ 사인이 떨어진다. 분원리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낙타등 코스다. 


낙타등이 시작되는 분원리 초입에서 오픈 사인이 떨어졌고, 순식간에 팩은 쪼개졌다. 그리고 나는 낙오했다. ‘흐른다’라는 표현은 무리에서 낙오되는 것을 뜻한다. 초급 모임에서는 흐르면 챙겨준다. 하지만 중급 이상의 모임에서는 흐르면 버리고 간다. 초급의 뜻은 ‘쉽다’ 보다는 ‘챙겨준다’는 의미가 크다. 초급이나 중급이나 힘들긴 매한가지다. 


초급에서 흐른 사람은 어떻게 챙겨줄까? 흐르는 이유는 간단하다. 체력이 방전된 것. 페달 밟을 힘 조차 없어 흐르게 된다. 사이클에서 내리고 싶은 순간 밀바 요원이 등장한다. 


밀바란? ‘밀어주는 바이크’라는 뜻으로, 힘이 빠져 달리지 못하는 라이더를 밀어주는 행동이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힘들었다. 도저히 갈 수 없어서 포기하려는 순간 자전거가 저절로 움직였다. 심지어 오르막길에서 말이다. 초급 모임에는 후미를 봐주는 고참 라이더들이 있는데 그중 한 명이 밀바를 시전 한 것이다. 체력은 물론 영혼까지 탈탈 털린 상태에서 받는 밀바의 감사함은 말로 표현이 안된다. 


감사...! 압도적 감사! 



나의 첫 라이딩은 ‘밀바의 추억’이다. 밀바의 추억은 힘든 하루였지만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다. 며칠간 제대로 걷지 못할 만큼 심한 근육통을 앓았다. 그러면서도 돌아오는 주말, 모임 나갈 생각에 설렜다. 사이클을 통해 운동이 주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가 단지 체력 때문만은 아니다. 누구나 크고 작은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운동은 불안감 극복제다. 운동은 불안감을 극복하고 건강한 미래를 만드는 청사진을 제공한다. 막연한 불안감을 떨쳐내고 싶다면 어떤 운동이든 상관없다. 지금 바로 움직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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