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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승 강경빈 May 02. 2020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

뼈를 갈아 일하는 너에게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 생각만으로도 아찔한 이 문장 속에는 우리의 불안과 부담이 담겨있다. 시간을 멈출 수는 없다. 그러니 불가항력적인 사건이라도 발생했으면 하는 생각.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할만하다. 나도 그랬다. 


중학교 다닐 적엔 개학 전날 학교가 무너져 개학이 연기됐으면 했고, 군 복무 시절엔 산사태로 유격장이 폐쇄됐으면 했다. 어디 그뿐이랴?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름에는 태풍, 겨울에는 폭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출근을 못하는 상상을 수도 없이 했다. 때로는 직상 상사가 출근을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사람에게 치이고 부담감에 치이지만 직장을 그만둘 용기는 없었다. 통장 잔고도 없었고


하.. 내일 월요일....



마찬가지로 서강대교가 무너졌으면 하는 끔찍한 생각은 방송이 코앞인데 아이템을 잡지 못한 방송작가의 불안과 부담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오죽했으면 다리가 무너졌으면 하는 끔찍한 생각을 할까.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를 읽으며 화려해 보이는 방송계 밑바닥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 땀, 눈물이 서려있음을 알게 됐다. 그뿐만 아니다. 나는 방송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내용이 너무 공감됐고, 머릿속엔 사회생활을 하며 알게 된 사람들이 스쳐 지났다. 책 속에는 ‘방송계’ 대신 ‘ㅇㅇ계’를 집어넣어도 될 만큼 사회에서 만나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이 바닥 좁은 거 알지?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야...


그래도 참을 일이 따로 있었다. 나는 당장 때려치우라고 설득했지만, 세영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일한 지 두 달밖에 안됐는데 소문 안 좋게 날까 봐. 그래도 육 개월은 채워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中



“이 바닥 좁은 거 알지?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야, 네가 여길 그만둔다고 끝날 일이 아니야” 내가 사회 초년생일 때, 귀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들은 말이다. 말 안 듣는 후배에게 하는 경고를 가장한 협박. 


그때는 바닥 좁다는 그 말이 그렇게 무서웠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선배의 그 말은 허세에 불과하더라. 내가 몸담고 있는 바닥이 좁은 건 맞다. 그런데 바닥 좁다고 꼰대질 하는 인간 중에서 영향력 있는 인간은 하나도 없었다.


꼰대는 지금도 존재한다. 몇 달 전 후배한테 들을 이야기다. 직장 상사가 노골적으로 자신을 괴롭힌단다. 그만두고 싶어도 일한 지 1년도 안돼서 그만두면 소문 안 좋게 날까 봐 그만두지 못하겠다고.


얼탱이~ 띠용~ 




또라이 질량 보존 법칙은 과학인 것이 분명하다


이상했다. 열심히 일하는 게 왜 문제가 되는가. 내가 아는 메인 작가는 현미의 적극적인 태도를 좋아하고 독려했다. 현미가 열심히 일하는 걸 불편해하는 사람은 그 세컨작가 아니었을까.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中


또라이 질량 보존 법칙에 의하면 인정은 받고 싶은데 능력은 부족하고 노력은 하기 싫어하는, 그래서 빠릿빠릿하고 센스 있는 후배를 쥐 잡듯이 잡는 모질이가 있더라. 어느 업계나 똘똘한 후배를 질투하는 모자란 선배가 있나 보다.  


너나 잘하세요 




이 책은 방송일을 하던 작가의 에세이다. 아마 방송 쪽에 몸담고 있다면, 이 책을 보며 물개 박수를 치며 공감하지 않을까? 방송 쪽 일을 안 하더라도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책을 읽는데 투자한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조금이나마 방송계의 속사정을 알 수 있다는 점, 어느 직종이든 사람 사는 거 거기서 거기구나라는 깨달음, 잘 읽히는 문체, 불안을 느끼는 건 그만큼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라는 위로, 전쟁터 같은 사회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위안을 준다. 


나 이 새끼 오늘도 고생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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