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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승 강경빈 Jan 27. 2020

명절의 본질을 생각해 보다.

엄마는 음식하는 사람이 아니다

결혼한 후 여섯 번의 명절을 보냈다.(설 세 번, 추석 세 번) 어쩌다 보니 우리 부부에겐 명절 스트레스가 없는데 일단 '귀경길'이 없다. 지금 우리 부부가 살고 있는 곳을 기준으로 본가는 차로 15분, 처가는 10분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가족이 모이지도 않는다. 각자의 집에서 5명이 밥을 먹는 것에 불과한데, 당일 모습을 대략 이렇다. 아침에 본가로 이동한다. 밥을 먹는다. 점심 무렵 처가로 이동한다. 밥을 먹는다.


이때 아내에게 주어진 역할은 '밥을 맛있게 먹는다.' 뿐이지 시어머니를 도와 음식을 차리지도 먹고 난 후 설거지를 하지도 않는다. 혹자는 팔자 좋아 보인다고 할 수도 있는데 막상 아내한테는 좌불안석이다. 차라리 시어머니와 함께 음식을 준비하거나 하다못해 설거지라도 하게 되면 몸은 고단할지 몰라도 최소한 좌불안석은 아니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은 2020년 1월 25일 오전 10시 16분이다. 작년 같았으면 본가에 둘러앉아 과일을 먹을 시간인데... 오늘은 책상에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이게 과연 무슨 일일까?



우리 가족은 이미 어제 설 모임을 끝냈다. 그것도 집이 아닌 외부에서. 우리에게 명절이란 '만나서 밥을 먹는 것'이다. 꼭 집일 필요도 없을뿐더러 누군가의 헌신 또한 필요치 않다.


명절의 본질은 각 가정마다 다르겠지만 우리 집 명절의 본질은 만나서 밥을 먹는 것이다. 올해는 밥을 먹는다는 본질에만 집중을 했고 그래서 외식을 했다. 킹크랩과 대게를 5kg쯤 주문하고 게딱지에 밥까지 비벼 먹으며 말이다.


엄마는 음식을 준비하는데서 자유로워졌고, 아내는 가시방석을 내다 버릴 수 있었다.


아들과 남편의 역할을 적당하게 잘 해낸 것 같아서 덩달아 나도 좋다. 아빠까지 좋은지는 모르겠다... 40여만 원에 달하는 식사비용은 아빠 주머니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설날에 외식을 한다는 건 부모님 세대에겐 의아한 일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턱대고 외식을 하자고 했다간 오해가 생길 수도 있기에 현명한 자세가 필요하다.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동시에 본질에 충실(모여서 밥을 먹는 것) 하기 위해 가장 먼저 엄마에게 접근(?)했다.

 


"우리 이번 설에는 밖에서 만날까?"


-"밖에서? 왜? 집에 오기 싫어?"


"아니, 아니 집에 가는 게 왜 싫어? 엄마 음식 하느라 고생해서 그렇지."


-"아니야, 고생은 무슨..." 


"어떻게 고생이 안돼?... 그러지 말고 킹크랩 먹으러 가자"


-"안 그래도 요즘이 제철이라 한번 먹고 싶기는 했는데... 설에 장사하는 식당이 있기는 하니?"


"내가 한번 알아볼게, 혹시 설 당일에 장사 안 해면 설 전날(24일)에 만나도 되는 거잖아?"


-"그건 그렇지.. 그럼 아빠랑 얘기해 볼게..."


일단 엄마의 생각을 돌리는 데는 성공했다. 물색해둔 킹크랩 집에 전화를 해보니 설 연휴에도 정상 영업이란다. 그래서 나는 엄마한테 세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다. 설 전날 만나는 것과 설 당일에 만나는 것 그리고 킹크랩을 쪄다가 집에서 먹는 것.


세 가지 선택 안 중 우리 가족은 설 전날 모이기로 했고 우리는 킹크랩을 먹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어렸을 적 기억하는 설 모습은 대략 이렇다. 설날 아침에 아빠와 나 그리고 동생은 큰집을 간다. 엄마는 이미 전날 큰집에 와서 음식 준비를 하고 있다. 차례를 지내고 아침을 먹고 나면 누군가(엄마, 큰엄마, 작은 엄마)는 설거지를 했다. 그런 모습을 쭉 봐온 터라 당시엔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전혀 당연한 일이 아니다.


며느리는 음식 하는 사람이 아니다. 엄마는 음식 하는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되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 당연히 해야 되는 일은 절대 아니다. 큰 집을 안 가기 시작하면서 엄마는 명절 준비에서 자유롭게 되었다. 그러다 내가 결혼을 한 뒤로 다시 명절 준비를 시작하게 됐다. 물론 대가족이 먹을 음식이 아닌 다섯 식구가 먹을 만큼의 음식이면 충분했기에 엄마 입장에선 고생스럽지 않다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라면 하나만 끓이려 해도 시간과 수고가 들어간다.


기존 체제를 정당화하면 고통을 완화해주는 효과가 있다. 감정적 진통제인 셈이다. 세상이 그런 식이어야 한다면 불만을 품어봤자 소용없다는 심리이다. 그러나 주어진 상황을 묵묵히 따르기만 한다면 불의에 맞서는 원동력인 도덕적인 분노를 상실하게 되고, 세상을 더 낫게 만들 대안을 모색하는 창의적인 의지를 빼앗긴다. - <오리지널스> 中


현재 상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개선하려는 시도를 해보는 건 어떨까?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집은 명절에 외식을 하는 게 기본값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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