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510년 세상의 중심은 그리스 아테네였다. 비록 기원전 338년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멸망하며, 170년의 짧은 영광의 시대를 누리긴 했지만 지금까지도 고대 아테네는 서구 문명의 요람이자, 민주주의의 고향으로 인정받고 있다.
어떻게 그리스 아테네는 서구 문명의 요람이 되었을까? 어쩌면 그 이유를 밤하늘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정확히는 밤하늘을 수놓은 별자리에서 말이다. 역사학자 데이비드 마셜은 <하늘에 그려진 이야기>를 통해서 48개의 고전 별자리, 그리고 그 별들의 이야기는 윤리 규범, 즉 참된 삶의 교훈을 보여주는 인간과 신의 상호작용을 보여 준다고 이야기한다.
평화와 조화를 촉진하려면, 신과 다른 인간을 존중하며 돕고, 불화와 다툼을 야기하는 오만과 탐욕을 피하도록 하라. - <하늘에 그려진 이야기> 中
오늘의 운세에도 등장하는 별자리는 우리에게 친숙하다. 그런데 막상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까만 것은 하늘이고 빛나는 건 별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하늘이 아닌 책을 봐도 마찬가지였다. ‘하늘에 그려진 이야기’는 별자리에 관한 책답게 별자리 그림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림을 암만 쳐다봐다 억지스러운데?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점과 점을 작대기 몇 개로 이어놓고 큰곰자리, 황소자리, 고래자리, 조랑말자리 등등 동물의 이름을 붙여놨다.
그러나 별자리의 억지스러움은 둘째치고 책이 재밌어서 술술 읽혔다. 한참 책에 집중하던 중 별안간, 별자리의 모양이 중요한 게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중요한 건 고대 아테네 사람들은 별자리를 통해 자손들에게 교훈을 남겼다는 것. 매일 밤하늘에 뜨는 별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며, 혹은 이른 새벽 아직 저물지 않은 별들을 바라보며 반성과 계획 그리고 사색 등 수많은 생각을 했을 거라 짐작된다.
반성과 계획 그리고 사색은 생각에서 멈추지 않고, 인류발전의 원동력이 되었기에 고대 그리스를 서구 문명의 요람이라 칭하지 않을까?
‘하늘에 그려진 이야기’는 철학으로서의 별자리와 과학으로서의 별자리를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책이다. 나는 별자리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책을 읽을 후론 한 번씩 하늘을 쳐다본다. 비록 밤하늘을 보고 별자리를 찾을 수는 없지만 고대인들이 후손들에게 남기고 싶어 했던 교훈을 떠올리게 한다. 요즘 같은 시기에는 오리온자리가 떠오른다.
오리온은 그리스 최고의 사냥꾼이었다. 그는 거인처럼 키가 컸을 뿐만 아니라 사냥꾼으로서의 기량도 최고였다. 한마디로 피지컬과 테크닉을 겸비한 사기캐였다. 본인의 힘을 잘 알고 있는 오리온은 겸손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어떤 짐승이라도 정복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 했다. 자연에 대해 불경스러운 태도를 취한 오리온을 벌하기 위해, 가이아는 거대한 전갈로 하여금 오리온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만, 최고의 사냥꾼답게 오리온은 거대한 전갈과 대등하게 싸운다.
그러나 오리온은 순간의 실수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게 되고, 기회를 잡은 전갈은 독침으로 오리온의 심장을 꿰뚫는다. 오리온은 죽어서 하늘의 별자리가 되었다. 오리온을 죽인 전갈 또한 별자리가 되었다. 오리온자리와 전갈자리를 통해 자만하지 않아야 몰락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얻는다.
최고의 사냥꾼이 사소한 돌부리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사소해 보이는 작은 것의 힘을 무시하면 안 된다. 사소한 존재인 바이러스 때문에 사회가 혼란스러운 요즘이다. 아직 치료제가 없는 코로나 19는 예방이 최선이다.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는 사소하지만 최선의 예방책이다. 청주의 한 택시기사가 코로나 19에 감염되었을 때, 직업 특성상 슈퍼 전파자가 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그러나 택시기사와 접촉했던 그 누구도 코로나 19에 걸리지 않았다. 그 이유는 기사와 승객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스크를 착용하는 사소한 행동이 지역사회 전파를 막은 것이다.
별자리가 철학으로서의 가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별자리는 농업에 이용될 만큼 실용적, 아니 필수적이었다. 고대의 농부들에게 별 자라는 곧 달력이었다. 언제 씨를 뿌려야 할지, 수확은 언제 하면 좋을지, 어떤 작물을 심어야 할지 등등 농사와 관련된 결정사항을 별자리에 의존했다. 별자리를 읽을 수 없었다면 농경사회로의 이행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곰의 보호자가 보이고 한 달이 지난 3월 28일, 태양은 양자리로 들어서며 봄의 시작을 알렸다. 이때는 춘분인데,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 농부들은 이제 밭으로 나아가 잡초를 베고 파냈으며, 과도하게 밀집된 곡물 줄기를 솎아 내고, 바람과 비에 노출된 뿌리를 덮었다. - <하늘에 그려진 이야기> 中
항해사들은 밤에 빛나는 별과 별자리들을 쳐다보면서 진로 선택에 도움을 얻었다. 별과 별자리는 하늘에 뜬 최고의 나침반이었다. 큰곰자리와 작은곰자리는 기본 방위 중 북쪽을 나타냈다. 남쪽은 그와 정반대였으므로 간단히 알 수 있었다. 또한 황도 12궁이 뜨고 지는 모습으로 동쪽과 서쪽을 알 수 있었다. - <하늘에 그려진 이야기> 中
별자리는 농부에게는 달력이었고, 뱃사람들에겐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망망대해에서 원하는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착하기 위해선 별자리를 읽는 능력은 필수였다.
인간이 북극을 탐험한 기록 중에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원전 330년이다. 그리스 마살리아의 뱃사람인 피테아스는 온통 하얀 땅과 얼어붙은 바다 거대한 흰곰이 사는 땅에 툴레라는 이름을 붙였다. 피테아스는 별자리를 읽는 능력이 탁월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북극을 다녀올 수 있었을까?
지금이야 인간이 만든 기술을 이용해 날씨를 예측하고, 망망대해에서 길을 찾아간다. 그러나 자연에 의존해 농사를 짓고, 바다로 나아갔던 시간에 비하면 기술의 역사는 아주 짧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별자리는 과학이자 동시에 철학이기도 했다. 별들의 이야기를 통해 윤리 규범과 삶의 교훈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늘에 그려진 이야기를 통해 고대인들의 지혜와 교훈은 몇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아직까지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