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러시아-마지막의 이르쿠츠크는

-이르쿠츠크

by 호빵씨

마지막의 이르쿠츠크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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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예매해놓은 미니버스를 타고 온 길을 되짚어 7시간 가량 달려 키로프 광장 앞에 잘 돌아왔다. 밤에 출발하는 모스크바행 기차를 타기 전까지 몇시간 정도 관광할 시간이 남았다. 전날은 초겨울처럼 춥던 날씨는 날이 개면서 다시 따뜻하고 청명한 가을하늘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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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날은 화창하고 따뜻한 날씨에 햇볕을 쬐며 앉아있는 것도 좋겠다. 광장에서 한가롭게 빵과 치즈로 늦은 점심을 먹으려 앉았는데 참새 두어마리가 얼쩡거린다. 남은 빵이나 줄까 싶어 빵조각을 조금 떼서 던져줬는데 새들이 점차 모이기 시작한다. 동물들, 그중에서도 새, 새 중에서도 비둘기를 특히 무서워하는 나는 점차 무서워져 이젠 그만해야하는 걸까를 고민할 때쯤 비둘기 수십마리와 참새떼가 우리쪽으로 습격했다. 순간적으로 정말 깜짝 놀라 공원벤치에 가방과 카메라와 빵과 모든 소지품을 그대로 둔 채 앉은자리에서 5미터쯤 튀어올라 도망갔다. 마음같아서는 당장 이 공원에 발도 붙이고 싶지 않았지만 저 앞 벤치엔 내 카메라와, 가방과, 지갑과 모든 것이 들어있어 어디로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빵조각을 포기하지 못했던 새떼들은 한참을 벤치옆을 떠나지 않았고, 새떼들이 언제쯤에나 떠날 것인가를 고민하던 나는 초조하게 근처를 배회하다 한참 후 가방을 획득해 딴 곳으로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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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이 여행에서 방심할 순간이란 하나도 없다. 러시아에서 조심해야 할 것은 동양인을 싫어하는 스킨헤드족인 줄 알았는데 실상은 알혼섬의 별거아닌 꼬맹이들과, 키로프광장의 비둘기 떼라니.

겨우 정신을 차리고 수습해서 새가 없는 근처 골목길에서 밥을 먹기 시작했는데 너무 놀라 배도 안고프다. 빵 한조각을 억지로 먹었더니 그대로 얹히는 기분이다. 그런 일을 겪고나니 이젠 관광에도 뜻이 없어졌다. 평소같았으면 ‘와~ 러시아 가을 정말 예뻐~’,‘와~ 여기 정말 예뻐’하며 꺅꺅대며 돌아다녔겠지만 이미 맑은 하늘도 따뜻한 기온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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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돌아 광장을 보고 시청을 보고 영원의 불을 보고 교회를 보고 좋아하는 산책을 했지만 이미 나가버린 집중력과 관심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관광에 뜻이 없어진 나와는 별개로 이르쿠츠크는 참 걷기에 좋은 곳이다. 잘 포장된 도로가 있고, 심심할 때쯤이면 백화점이 있는 번화가도, 한적한 골목도, 역사를 가지고 있는 건물도 나타나 관찰하는 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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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찮게 교회 건물을 구경하다 안으로 들어갔을 때는 예배를 드리는 중이었다. 러시아의 카톨릭은 러시아정교회를 종파로 하고 있는 곳이다. 나중에 듣기로는 그곳의 교리나, 성호를 긋는 방향, 예배의 형식 같은 것이 우리가 알고있는 카톨릭과는 다르다고 했다. 카톨릭에 대해 알지 못하는 나는 뭔가가 다르기는 하지만 어떤 점이 다른지 확실히 알지는 못했지만, 우연히 들어간 교회에서 사제가 기도 혹은 성경구절을 읽자 그에 화답하듯 성가대가 맑은 목소리로 메아리처럼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좋았다. 마치 그 광경을 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경건해지는 마음이었다. 계속 구경하고 싶었지만 그들의 예배를 모르는 관광객이 그 경건함을 해치는 것 같아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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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지나 걷다보니 거리에 이르쿠츠크 도보관광루트를 표시해 둔 지도가 있었다. 이 길을 따라가면 이 지역의 역사적인 건물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이 표시판 러시아에서 매우 보기 힘든 영어표기가 있다. 지도의 그린라인을 따라 크게 이르쿠츠크를 한바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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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걸어 지쳤지만 상관없다. 이제 밤에 열차를 타면 4박5일 동안 걸을 일이 별로 없을테니까. 더 걸어야 겠다는 생각에 숙소까지 강을 따라 걸었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찾아서는 두번째 기차를 타러 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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