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횡단열차: 이르쿠츠크-모스크바
총 길이 9,334km. 지구 둘레의 4분의 1. 이동 중 시간대가 일곱 번이 바뀌는 기차. 아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와 유럽의 모스크바를 잇는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수식하는 여러가지 말이다.
아마도 모든 사람들의 버킷리스트를 살펴볼 기회가 있다면 여행 카테고리 안에 꽤 큰 비중으로 히말라야나 아마존과 같은 단어들 사이에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존재만으로 도전정신을 불태우게 하는 것 중 하나. 그래서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은 말도 통하지 않는 러시아에 오고, 손짓발짓으로 표를 사고, 역시 그 안에서 어떻게든 의사소통을 해가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9,334km의 여정을 이어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 긴 여정의 기차여행에 모두들 어떤 것을 바라는 걸까.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를 달려봤다는 성취감? 인생에서의 가장 긴 기차여행에 대한 기대? 끊임없이 침대 밑이 덜컹대며 흔들리는 길의 체험?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나보지 않았던 사람들을 만날 기회? 그 안에서의 깨달음?
이르쿠츠크를 출발해 모스크바에 도착하는 사박오일의 기차가 출발했다. 두번째로 타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였다.
처음만큼의 기대나 설렘은 없었다. 아마도 제 시간이 되면 기차는 움직일 것이고 정확히 열차 스케줄표대로 멈추고 설 것이다. 플랫폼에 늘어선 좌판은 사람과 구성품만 약간 바뀔 뿐이지 그대로일 것이며, 샤워를 하거나 머리를 감기에 좁아 겨우 고양이세수만 하고 돌아올 화장실은 매일매일 쌓인 쓰레기로 넘쳐나 악취를 풍겨내고 있을 것이다. 여전히 내 몸 밑바닥의 침대는 덜컹이며 흔들리고 일정한 소음을 뿜어낼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동안 기차는 예정대로 출발했다.
사박오일의 기차에서는 여전히 할 일이 없었다. 풍경은 이름을 갖지 못한채 무의미하게 흘러갔고, 낮에도 밤에도 쪽잠을 자느라 몸은 늘 피곤했다. 사람들은 체감상, 첫번째 열차보다 아주 약간 더 영어를 할 수 있는 듯 싶었지만 간단하게 이름과 취미와 가는 곳을 묻고나면 더이상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이 곳에서 나에 대한 정보는 서로 주고받는지 그들의 대화속엔 '까레이'가 섞여있었지만 그들은 곧 친절하게 러시아어로만 내게 말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자주 내리고 타면서 바뀌었다. 거대한 짐을 들쳐메고 '안녕'하고 인사하며 열차를 떠나면 곧 또 그만한 짐을 양쪽손에 들고 빈 자리에 들어오곤 했다. 새로 들어온 그들은 낯선 얼굴을 한 여자애에게 새롭게 '안녕'하고 인사하고 이름을 묻고 어디서 왔는지 어디에 가는지 물었다.
그들은 내가 처음 들어보는 역에서 올라타고, 나는 생전 들를 것 같지 않은 역에 내렸다. 플랫폼엔 그들을 마중온 사람들이 기다렸다 기쁜 얼굴로 얼굴을 쓰다듬었다 짐을 나눠들고는 역을 떠났다. 그들에게 이 열차는 공간과 공간을 연결해주는 길이겠지.
그러던 중, 같은 칸에 탄 승객이 한 명 사라졌다.
조금 길었던 정차가 끝나고 열차가 출발했는데 한참이 지나도록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가끔 눈이 마주치면 무섭게 노려보며 혼자 중얼거리며 이층침대를 부산스럽게 오르락내리락 해 되도록이면 말을 걸지 않으려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그가 부산스럽게 사라지고 나면 내 앞 침대의 아주머니가 나를 보며 눈을 찡긋하며 머리 옆으로 손가락을 빙빙돌리곤 했었다. 이상하게 저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할때쯤 차장이 들어와 같은 칸에 탄 사람들에게 뭔가를 물어보고는 침대 위에 올려둔 그의 짐을 끌어내렸다. 그리고 가방을 열고 하나하나 주변사람들에게 확인을 받으며 서류에 적었다. 아마 러시아어를 할 줄 모르는 외국인의 확인은 필요없는지 그 분위기에서 나는 철저히 배제되어 있었고, 덕분에 난 이층 침대 윗칸에서 밑을 내려다보며 그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의 짐은 간촐한 편이었다. 다른 사람들 가방속에 빠지지않고 들어있는 간식거리 하나도 그의 가방엔 없었다. 신분증과 돈이 얼마 들어있는 지갑과, 흑백사진이 들어있는 앨범, 옷가지 몇벌, 노트북, 뭔가의 증명서인지 수료증인지 알 수 없는 서류같은 것들 한뭉큼이 나왔다.
아마도 그는 멀리 돈을 벌러 나갔다 고향에 돌아가는 걸지도, 이제는 퇴역한 군인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돌아갈 곳을 잃어버려 더이상 기차에 있을 이유를 찾지 못해 사라졌는지 모른다. 아니면 그저 밖에 잠시 바람을 쐬러 나갔을 뿐인데 시간계산을 잘못해 열차가 출발할 때까지 플랫폼으로 돌아오지 못했던 걸지도. 그의 짐을 둘러싸고 그의 단면을 살피는 주변 누구도 내게 상황설명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고 난 러시아어를 할 줄 모르니 여전히 그의 이력과 이동목적같은 것들은 알 수 없었다. 그저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왜 기차에서 사라졌는지 상상할 뿐.
기차 안에서 사라진 그에게, 하루에도 몇번씩 바뀌는 사람들에게 시베리아횡단열차는 어떤 의미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들에게 물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모두에게 같은 의미는 아닐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