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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우 Nov 13. 2020

조현병에 대해 질문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정신병은 어떻게 가르쳐지는가?

질문



영화를 보고 조현병 증상에 대해 분석하는 과제를 하고 있는데,


교수님께 들은 바로는 조현병 환자들의 특징 중에 사물을 지각할 때,


패턴을 찾으려 하고 그 패턴을 통해 지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 나온 장면인데,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그저 기하학적인 무늬의 넥타이인데도


주인공은 그 속에서 레몬의 단면과 빛이 이루는 모양의 패턴을 생각해내는 것 같은 경우 말입니다.


질문하고 싶은 것은 그것이 실제로 연구가 이루어져서 밝혀진 내용인가요?


정보를 찾기가 쉽지 않아서 여쭤봅니다.


이것이 연구를 통해 밝혀진 조현병 환자의 특징이라면,


어떤 논문이나 어떤 책에서 나오는지 출처를 밝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답변



안녕하세요. 교수님이 그걸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요. 사물을 지각할 때 패턴을 찾으려 하는 것은 일반 사람들에서도 등장합니다. 익숙한 방식을 찾는 것이거든요. 그런 식의 패턴은 일상생활에서도 관찰이 되고 또 조현병이 아닌 신경증에서도 등장합니다. 반복 강제라고 부릅니다.


뷰티풀 마인드에서 그걸 보고 빛이 난다는 식으로 표현되는데. 그때 일어나는 정신작용으로 인해서 '지각 체험'이 발생합니다. 즉. 자신이 지각한 것을 그대로 체험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국내 연구자 자료로는 찾기 어려울 겁니다. 프로이트의 나르시시즘 서론에서 말해진 것인데 역자가 지각 체험을 자기기만이라는 식으로 번역했고 오해가 심합니다. 게다가 나르시시즘이라고 하면 나르키소스 신화를 모티브로 한 자기애 정도로 검토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만, 프로이트가 이야기한 나르시시즘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루는 국내 논문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저도 논문 사이트 검색해봤지만 단 한편도 없었습니다.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으니까(2020년인 현재도 못 찾았습니다). 그래도 자주 쓰는 말이니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효과는 있습니다.


편집증 환자 슈레버에서도 지각 체험 문제들이 좀 등장하긴 합니다만 대학교 학부생이나 석사 수준으로 다루기는 어려울 겁니다. 편집증 문제는 정신의학에서도 오래전부터 정복하지 못한 문제로 등장했습니다. 오죽하면 프로이트는 융에게 '조발성 치매'를 극복할 수 있다면 정신의학이 모든 병을 정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까지 했겠습니까? 


정신분석에서 이야기하는 분열은 A 셰셰이에 박사의 [르네의 일기]라는 책에서 지각 체험 문제가 조금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메커니즘이 정신병에서 등장하는 것이라서 단순하게 현상만 가지고는 알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정신의학적 차원의 조현병 진단은 강박증의 오진으로도 등장합니다. 강박증에서도 패턴 문제는 꽤 자주 등장하거든요. 그래서 혼란이 야기될 수 있습니다.


정신의학적으로 검토하고 싶으시다면 로널드 랭의 [분열된 자기]라는 책에서 찾아보실 수 있을 겁니다. 랭의 경우는 현상학으로 접근하면서 설명합니다. 그렇게 어렵진 않으니 한번 읽어보셔도 괜찮을 겁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까지 편집증으로 설명했는데... 진단 문제가 좀 있네요. 위에서 이야기한 슈레버는 정신분석가들은 편집증으로 진단합니다만 정신과 의사들은 조현병으로 진단합니다. 야스퍼스의 [정신병리학 총론]에서도 소개된 내용입니다. 교수님께 점수를 받으려면 그 사이에서 절충해서 조사하시는 게 맞지 싶습니다.


생각 더하기


정신의학에서 병을 검토할 때, 행동 패턴을 지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행동 패턴이란 일종의 증상 시나리오로 등장하는 것으로 필요에 의한 작용으로 보고 접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모든 신경증에는 저마다의 시나리오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식으로 의미 작용을 하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신의학에서 정신병에 대해 너무 단순하게 접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프로이트도 정신과 의사들이 편집증자들의 망상에 대해서 "일상생활이 가능해지면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을 했었는데, 그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게다가 같은 조현병 환자라도 정신과 의사들의 진단과 제 진단은 일치하는 경우가 그렇게 많이 없습니다. 지각 체험이라는 개념도 아직 정신의학에서는 등장하지 않아서 증상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정신과에서는 다소 약물에 의존적인 경향이 드러나는 것으로도 여겨집니다. 그럴 때는 치료와는 좀 거리가 멀어집니다. 현상의 진정만을 노리는 치료 이데올로기를 드러낼 수밖에 없기도 하죠. 정신과 약물이 우리 일상에 자리잡기 위해서 프로파간다를 활용한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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