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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우 May 07. 2017

김종욱 찾기

김종욱이란 허울이 의미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영화가 가치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언제나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줄 수 있을까? 우리는 이 영화를 가볍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메시지는 그렇게 가볍지 않다는 것은 생각해볼 만한 일이 될 것이다. 남녀 간의 연애 문제를 다루는 영화는 잠시 잠깐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는 효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사랑>에 관한 지식을 전달해준다는 것이다. 사랑에 관한 지식이란 무의식을 구성하는 한 축 아니었는가?    


 기준은 강박적일 정도로 올곧은 사람이다. 마치 통나무 같은 그의 정신은 융통성이라고는 모르는 것 같다. 모든 일을 정석대로 처리하려고 하다가 직장에서 퇴사당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그런데 그는 기가 막힌 사업 아이템을 찾아낸다. 바로 첫사랑 찾아주기다. 메마른 현대의 감성을 살려주고자 하는 것이다.     


 강박 남성은 어떤 식으로 히스테리화 되는가? 강박 구조를 지닌 남자들은 무뚝둑 하고 애정표현이 서툴 것이다. 그러나 이 남자들이 누군가를 신뢰하고 사랑에 빠지고자 할 때, 그들은 변할 수 있다. 목소리나 얼굴 표정의 변화는 익숙하게 관찰되지 않는가? 이 변화는 상당히 긍정적인 것이다. 만약 상대가 강박에 시달린다면 남성의 이러한 변화는 상대의 건강을 바라는 소망이 될 것이다. 즉, 기존에 생각하고 있던 히스테리와 주인 담론이 어떤 식으로 매듭을 지어지는지에 대한 <가설>로 제시될 수 있는 내용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위에서 강박 남성이라고 말을 썼지만, 강박증과 강박 성격은 분명히 다르고 구분이 지어져야 한다. 강박증과 강박 성격에서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억압'의 문제이다. 강박 성격은 그 자체로 사회에 도움이 된다. 고통스러운 것도 아니다. 이 것은 어떤 의미에서 <장인정신>과 연결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강박증은 고통스럽고 비효율적이다. 심지어 감정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이 감정의 문제가 꽤 중요한데, 이 문제가 억압으로 가는 길을 인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분점을 잡아두는 것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강박을 이해하는데 한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첫사랑을 어떻게 부를 수 있을까? 인생 최초의 떨림을 간직하고 있는 이물질에 대한 끌림 아닐까? 다른 의미에서 첫 만족을 얻을 수 있었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첫사랑의 문제는 꽤 중요해서 인생의 이후 만족들에도 어느 정도 관여한다. 흔히 첫 경험을 폭력적인 방식으로 경험하게 된 여성은 이후에도 만족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연구가 있다. 우리는 첫 경험의 소중함을 평생 가지고 가게 되는 것이다.      


 그는 잃어버린 감성을 찾아줄 수 있는 사업 아이템으로 기획했지만 과정은 이상했다. 가장 큰 문제는 첫사랑을 찾아달라는 사람마다 분노하기 때문이다. 첫사랑을 죽여버리고 싶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이 아마 첫사랑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분노를 표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프로이트는 <당신이 지금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 과거에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다.>라는 말로 애증 병존의 공식을 말했다. 그리고 첫사랑의 이미지가 평생의 만족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삶 속에 스며든 첫사랑의 흔적에 괴로움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세월이 지나도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를 품고 있다는 말은 역설적으로 그들이 첫사랑을 용서하지 않는 방식으로 간직하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증오가 오히려 반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헤어지는 사람들이 어떤 노력을 통해서 상대의 가치를 저하시키려고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보통  <최악>이라는 말로 표현이 될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받아들여질 수 없는 사람이라는 전제를 깔아 놓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말은 교묘하게  숨겨진 메시지를 통해서 상대의 불행을 욕망한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말 자체가 사랑했다는 증거로 기능할 수가 있다. 

 영화는 지우가 아버지에게 이끌려서 지우가 찾아오는 순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녀는 멋진 남자 친구의 프러포즈도 거절한다. 남자 친구가 사랑을 고백해 오는데 그것을 거절할 명확한 이유도 없는 상태이다. 그러나 그녀가 거절해야만 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과거 인도 여행에서 만났던 김종욱이라는 첫사랑을 찾는다면 연애라도 하겠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 첫사랑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도에 갔다 온 ‘김종욱’이라는 사람을 찾아달라는 것이다. 단서는 ‘인도에 갔다 온’이라는 것 밖에 없다.      


 기준은 자신이 맡은 일을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이전에 일하던 여행사에 직접 찾아가서 인도에 다녀온 김종욱이라는 인물을 천명 이상 찾아본다. 그것이 그에게는 일이었고 그에 응당한 보수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일에 책임을 져야 했던 것이다.      


 지우는 굳이 찾지 않아도 좋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기준은 끝까지 밀고 간다. 여기서 우리는 발자크라는 프랑스 사상가의 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행동하는 자는 운명을 믿고, 생각하는 자는 신의 섭리를 믿는다.     


 이 말은 조금 색다른 방식으로 독해될 수 있는데. 자신의 성과들의 결과를 통해서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간다는 차원에서 가능성의 싸움을 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행동이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가 아무런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것을 <동작>이라고 쓴다면, <행동>이란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신의 섭리라는 말이 있다고 해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격신을 생각하지는 말자. 여기서의 신의 의미는 그 자체로 하나의 <질서>를 의미한다. 스피노자가 신존재 증명을 했다고 하지만 인격신의 존재 증명이 아니었다. 이것은 스피노자가 파문될 수밖에 없는 이유 아니었는가? 이러한 신의 설정은 그녀가 어떤 동기를 가지고 있으며 충동의 성격들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미리 알아차리고자 한다는 말이다. 즉, 삶에 어떤 질서가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행동과 말의 간극도 조명할 수 있다. 행동은 어떤 결과물을 일으키는 움직임이다. 말은 어떤 의미에서 자신의 소망과 충동의 방향성을 나타내고 있다. 언행일치는 이 지점에서 중요한데, 정신 기능이 그렇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흔히 말만 하는 사람들이 발견될 수 있는데, 그들은 어쩌면 너무 많은 생각으로 에너지 소모가 극심해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일 것이다. 


 여기서 기준은 어디에 해당할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가는 차원에서 행동을 한다. 곧, 그는 능동적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그는 생각하기보다는 우선 행동을 통해서 결과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곧, 히스테리자와 주인 담론에서 답에 접근해 가지만 그 순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히스테리자의 요구에 일일이 응답해주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도저히 단서를 찾을 수 없었던 기준은 간신히 지리산에 살고 있는 김종욱의 소문을 듣게 된다. 기준은 지우에게 혼자 갈 수 없으니 같이 가서 확인하자고 요구한다. 지우는 금쪽같은 휴가를 기준과 같이 지리산에 가는 것으로 보내게 된다. 같이 여행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반대할 이유는 없으나 문제가 발생한다. 이 것이 기준의 실수로 인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그가 이런 실수를 하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우에 대한 마음이 드러난 것일까? 실수를 두고 우리말로 <복심>이라고 쓰는 이유가 무엇인가?     

 고생해서 찾은 사람은 김종욱이 아니라 김종묵이었다. 그들은 종묵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는데, 그날 밤 지우는 기준과 입맞춤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김종욱’은 실존인물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의 덮개 개념에 근접하게 된다. 하나의 허울이기에 그 안에 다른 내용이 내포되어 있다는 말이다.     


 두 사람이 키스를 하는 장면에 한 가지 문장을 덧대 볼 수 있는데. 비트겐 슈타인은 키스를 두고 하나의 의식이면서 부패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과거로부터 키스란 영혼의 교감이라고 설명되던 것 아닌가? 그것은 그만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지리산에 다녀온 이후로 지우의 아버지는 단서로 지우의 다이어리를 주는데 그 안에는 김종욱의 주민등록증이 있었다. 동시에 기준은 좌절하게 된다. 그는 그것만 있었다면 고생해서 찾지 않아도 괜찮았을 것이라고 지우를 순간 원망하기도 한다. 그 둘은 너무 먼길을 돌아온 것이다. 기준은 김종욱을 찾았고 그가 곧 출국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지우에게 알려준다.     


 문제는 이 시점에서 기준이 절망에 빠지는 것이다. 과연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절망한 것일까? 그는 짝사랑이나 찾아준다고 스스로를 비하하기도 한다. 누구나 첫사랑이 지나가고 나면 분명 이런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실연당한 반응이 그에게서 관찰되는 것이다. 


 사랑을 잃는다는 것은 자기애에 상처를 남긴다고 한다. 어떤 경우에는 이런 상처가 남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희생이라는 형태를 가질 때는 이 상처를 감당하겠다는 태도가 나타날 수 있다. 이 것은 과거 할리우드 영화의 공식으로 등장했던 것 아닌가?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 질문했을 때, 누가 응답해줄 것인지 기대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랑이란 어떻게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설명해주지 않는다면 인간의 사랑은 경험되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식으로 대상을 선택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무의식이 사랑에 대한 지식을 지니고 있다고 이야기하지 않는가?     


 첫사랑의 이미지는 기준에게 매우 강렬했다. 그는 그 이미지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이때 시인인 그의 매형이 적은 한 구절의 문장이 그를 다시 움직이게 만든다.      

 

첫 번째 사랑만이 첫사랑은 아니다.      


 우리는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첫 번째 사랑만이 첫사랑이 아니라는 것은 진실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것은 어떤 식으로 자신에게 정신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고려해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첫사랑의 의의를 생각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사랑이랑 언제나 정신적 변화를 도모하게 되는데 충동의 방향 역시도 포함할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정신적 변화가 어떤 식으로 일어나게 되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현대에는 첫사랑의 가치가 다소 떨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자신에게 일으키는 정신적 변화보다 대상의 가치를 보다 높이 평가하는 태도에서부터 비롯될 것이다.  


 지우는 공항에서 그동안 찾던 김종욱을 만나지만 그렇게 감흥을 얻지 못한다. 동시에 기준이 공항에 도착한다. 여기서 우리는 김종욱의 진실에 직면하게 된다. 기준은 절박했을 것이다. 지우가 그렇게 예쁜 모습으로 자신에게 와서 사랑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게, 그렇게 만들어놓았는데 허무하게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김종욱이 하나의 허울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지우는 사랑했던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었다. 지우가 고민하는 진짜 문제는 자신의 마음에 자리를 잡고 있는 – 자신의 질문에 답을 해주려고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지우의 김종욱은 하나의 질문이라는 것이 드러나지 않는가? 그녀의 질문에 아무도 답을 해주려 하지 않았지만 기준만큼은 답을 해주기 위해서 애쓰는 모습들이 보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지우의 김종욱은 잃어버린 기억이라는 차원으로 진입한다. 그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그녀의 앞에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이 유일하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선택되지 않을까?


 지우는 늘 마지막 매듭을 짓지 않았다. 매듭을 지으면 슬프기 때문이다. 그녀는 심지어 강박행동처럼 과자도 늘 하나씩 남겼다. 책도 마지막까지 보지 않았다. 그녀의 행동은 시체와 같은 강박증자의 습성을 꼭 닮아있는데 매듭을 지어 주어야 그녀에게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길 것이다.     


 김종욱이 마침내 매듭지어졌을 때, 그 자리에는 한기준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 것은 그녀의 마음에 그를 위한 자리가 마련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그는 그녀의 질문에 답을 했고 그 결과로 그녀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사실은 굉장히 중요한데, 그의 노력이 스며들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바타유는 연애에서 단죄할 부분은 가능성이 아니라 무력함이라고 이야기했다. 그 무력함을 꺾어준 기준이 그녀의 마음을 얻는 것은 마땅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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