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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우 May 04. 2017

다크 나이트

가장 인간적인 슈퍼히어로 배트맨에 관하여

 슈퍼히어로 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캐릭터를 꼽는다면 대부분 배트맨을 선택할 것이다. 인간이고, 수트가 없을 때는 우리와 동등한 조건이다. 물론 그의 뛰어난 무술 실력은 노력으로 얻은 것이다. 또한 햄릿형 히어로라고도 불린다. 끊임없는 인간적 갈등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수많은 배트맨 영화 중에서 단연코 최고의 작품은 바로 이 <다크 나이트>라고 생각한다. 시나리오의 내용도 그렇고 갈등의 내용도 다른 작품과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는 다크 나이트라는 작품을 통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있다. 인류사의 위대한 작품과 어느 정도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는 것도 관찰이 될 수 있다. 공통점은 부친 살해와 여성에 대한 행위, 그리고 연적에 대한 경쟁심에 노출되는 위대한 작품 세가지를 꼽아보자.


 소포클레스의 외디푸스 대왕
 셰익스피어의 햄릿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물론 유사한 방식이 관찰된다는 것으로 훌륭한 작품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이러한 갈등을 배트맨이 계속적으로 어떻게 다루어나가는지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계속적으로 갈등하며 자기 존재에 대한 열정을 찾을 수 없는 존재로 묘사되어 있다. 배트맨은 유일하게 브루스 웨인이 사회를 돕는 방식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법에 통합되지 않은 <자경단>이라는 것이 문제가 된다. 그래서 배트맨은 궁극적으로 사회적 승화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이 전제가 된다. 만약 배트맨의 지위가 격상될 수 있다면, 그는 더 이상 갈등하지 않아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선과 악이라는 명확한 대비 점을 만들어낸다. 하비 덴트는 악을 무찌르는 정의의 화이트 나이트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배트맨에게 그런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는 마찬가지로 악을 처단하고자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국가에서 지원받은 것이 아니다. 브루스 웨인의 어마어마한 경제적 추구는 궁극적으로 고담시의 경제에 악영향으로 자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을 돕는다는 점에서 그가 배트맨으로 변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의 경제적 추구가 가난에 내 몰린 사람을 어떻게 구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브루스 웨인


 이 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있다. 화이트 나이트와 다크 나이트는 법이라는 척도에서 서로 대립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고담시의 범죄를 뿌리 뽑기 위해서는 배트맨의 협력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의 정신 장치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은 발생할 수 있다. 정신분석을 얼핏 배우기 시작할 때, 에고그램의 방식으로 가르쳐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드가 말을 듣지 않는 어린아이의 이미지로 그려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드는 순수한 에너지 덩어리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드는 자아뿐 아니라 초자아에도 그 에너지를 공급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드 충동은 수시로 올라오게 되지만 초자아는 그 충동을 눌러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 점을 명확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텐데 초자아가 강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건이 달라붙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드'가 강해야 초자아도 강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드가 초자아에게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것에 대해서 '야합'이라는 말을 쓸 수 있다. 서로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 정신 장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손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행동을 과도하게 참을 수 있는 사람들은 이드 역시 엄청나게 강하다. 그들은 초자아만 강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나치게 참아 낼 수 있는 조건을 지니게 된다. 그 정도로 초자아의 압박이 심하기 때문이다.


 이드와 초자아 문제는 자아에게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초자아가 심하게 자아를 압박하고 있지만 이때, 이드 충동의 일부가 자아를 압박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때 자아는 심각한 불안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유도 알지 못한다. 자기가 왜 불안한지 알 수가 없다. 이드 충동은 조용히 밀고 올라오기 때문이다. 이 것이 프로이트가 이야기한 신경증 불안의 전형이다. 반대로 병리적 초자아는 내면에 도덕 불안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완전히 심리 내적인 도덕 불안이 자리를 잡고 자아를 불안에 떨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자아도 단독의 불안 영역을 가지고 있다. 바로 '현실'불안이다. 현재 자신이 처해진 상태가 불안하다는 것이다.


조커

 

 혹은 다른 정신 장치들로 인해서 초자아 문제를 비껴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변태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는데, 변태의 경우에는 정해져 있는 법을 살짝 피해 가는 그 스릴을 즐긴다. 그러나 피할 수 없을 때, 법을 가장 두려워할 것이다. 고도의 지적 능력을 가진 범죄자들이 이러한 변태의 요소를 통해서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고담시의 범죄의 특성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고담시 범죄자의 특징은 고학력이라는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어지간하면 다 박사학위 가지고 있다. 이 것이 궁극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합법적으로 검거해도 풀려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법의 한계점이 등장한다. 배트맨이라는 형식이 없다면 변태 범죄에 대해서 법은 무력할 것이다. 여기서 배트맨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정의>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그는 범죄자와 똑같은 수준에서 범죄자를 잡는다. 이 말의 의미는 호랑이 굴에 들어가서 호랑이 잡겠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정의 이야기가 나왔으니 우리는 마이클 샌델 교수가 강의했던 <정의란 무엇인가?>를 기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책에서 정의를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벤담과 존 밀스, 공리주의 등이 나오면서 정의의 문제를 논하는데 결국은 무엇이 더 <올바른가?>를 따진다. 그리스어 Dike의 의미가 바로 이 것이다. <올바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의 형성에는 Dike가 아니라 Bia(폭력) 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 폭력의 부분이 범죄와 연결되는데, 법에서 정해진 폭력이 범죄보다 약하다면 불균형 현상이 초래될 것이다. 배트맨의 역할은 여기서 빛이 나는데, 그 균형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맞춰준다. 배트맨으로 인한 범죄율 감소는 경찰의 노력과는 별개의 수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조커와 대립되어 있는 배트맨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둘 중에 누가 더 올바를까? 정체성으로 따진다면 조커가 훨씬 올바르다. 그는 편집증적으로 사회질서를 다시 세우려고 한다. 그것을 의미하는 말이 바로 <순수한 악>이라는 말이다. 배트맨은 경찰의 법을 공유하고 있다. 이름처럼 '박쥐'다. 여기 붙었다 저기 붙을 수 있는 존재가 배트맨이다. 순수하게 자신의 광기를 드러내고자 하는 조커가 훨씬 올바르다. 물질적인 가치보다는 정신적인 가치를 훨씬 위에 두고 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망상도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연기자들의 이야기를 잠시 해도 괜찮지 않을까 한다. 히스 레저가 자살을 선택해야 했던 것은 조커의 망상을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망작으로 불명예를 남긴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조커 역할을 한 자레드 레토는 조커의 정체성을 위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쳤다. 그러나 그는 조커의 섹시함만을 발견하게 해주었다. 조커의 광기를 발견하는데 실패했다. 히스 레저의 조커가 위대하게 남은 이유가 여기 있지 않은가? 그는 광기를 완벽하게 재현한 것이다.


하비 덴트

  하비 덴트는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려다가 투페이스가 된다. 그의 광기는 법질서의 혼란을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그의 연인은 조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다. 어쩌면 그가 인간의 양면성을 나타내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광기에 물든 인간이 자기에게 주어진 법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것도 사랑하는 여자의 문제라고 한다면 제정신으로 견디기보다는 광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녀를 잃는 것보다 내가 광기에 빠져드는 것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희곡 <바보들의 배>를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의의 여신 저스티스의 이미지를 생각해보자. 그녀에게는 눈가리개가 씌워져 있다. 그러나 원래는 눈가리개가 없었다. 그러나 배위에서 광대가 정의의 여신에게 안대를 씌운다. 이 장면은 어쩌면 하비 덴트를 도발하는 조커의 이미지와도 같지 않은가? 하비 덴트의 눈을 멀게 해 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판단력이 상실되어 버린 후, 조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우리는 여기서 순수한 형태의 선과 악에 대한 한 가지 생각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비유를 생각해보자. 경찰과 조폭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한다. 여기서 이 '종이 한 장'이 그냥 종이가 아니다. 조폭에게는 누군가가 증서를 주지 않는다. 그러나 경찰에게는 그러한 증서가 주어지는 것이다. 이 것은 조직에 대한 계약의 차원이 들어가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종이 한 장의 무게는 그 존재가 합법적인지 비합법적인지 결정하게 만들어 준다. 위에서 Bia의 이야기를 했다. 법에도 힘이 있어야 처벌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보자. 배트맨에게 처벌권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의 의미는 안심할 수 있는 법의 영역 안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배트맨은 합법적인 승인이 없기 때문에 그는 '선'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스읍..후아...

 그렇다고 해서 배트맨이 법 바깥에서 활동해야 하는 이유가 없는 것도 아니다. 법의 영역에서는 그 힘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는 것으로 대표될 수 있지 않은가? 미란다 원칙의 고지는 범죄자라도 권리 차원에서 보호가 이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을 어긴 범죄자라고 할지라도 이제는 법의 영역 안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러나 배트맨은 미란다 원칙을 고지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가 '법'을 대표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성경구절을 하나 생각해 보아도 좋을 것 같다. "내가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음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는 내용이 있다. 이 것을 슬라보예 지젝은 아주 멋진 방식으로 변주했는데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이 골짜기 최고의 후레자식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말에서 흥미로운 내용을 조금 더 생각해 볼 수 있다. 한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밀짚모자 해적단의 선장 루피가 해적왕이 되고 싶다는 이유도 이와 같다. 바다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 왕이라는 것이다. 그 자유를 막기 위해서 더 강한 적은 늘 등장해야 하고 권력을 통한 방해 작업이 계속되어야 한다. 해적이라는 설정 자체가 이미 법에서 이탈해 있는 존재를 설정하지 않는가? 배트맨 역시 그럴 것이다. 고담 시를 위해서 활동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럴 때, 배트맨 슈트가 상징하는 것은 그가 법에서 이탈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만약 합법적인 영역 안에서 슈트를 입는다면, 그것은 구속복의 이미지를 대신할 것이다. 구속복을 입고 싸울 수는 없다. 대부분 슈퍼히어로들의 슈트는 결정적으로 이미지를 고정하는 구속복의 의미를 지니게 되지 않는가? 그들이 등장할 때, 우리는 그 이미지에 따르는 역할을 기대할 것이다. 만약 배트맨 슈트가 정의를 상징하게 된다면 대중은 기대할 것이다. 경찰을 신뢰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하비 덴트의 죽음은 조커의 잘못이 아니라 다크 나이트, 즉, 배트맨의 잘못으로 결정지어진다. 우리는 의아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그는 무엇을 위해 스스로 하비 덴트의 죽음을 짊어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죄를 짓지 않았지만 결국 처벌받아야 하는 존재가 있어야 한다면 대중은 그 이미지에 열광하고 분노할 것이다. 하비 덴트가 가지고 있는 고담시에서의 이미지를 생각해 볼 때, 배트맨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 그 죽음의 이미지를 떠안은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배트맨이 정의의 아이콘이 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짊어진 죽음이 정체성을 확고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물론 배트맨의 불살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예외 상태의 예비적 설정에 대중이 홀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도와줘요! 배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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