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미국에 온 지 9년이 되어 간다. 학위만 받고 바로 귀국하려고 왔었는데 어느새 나는 두 번째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가족이나 친척이 없는 외국에 혼자서 일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아주 큰 이유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어떠한 동력을 가지고 미국에서 계속해서 살고 있는지에 대해 작년과 올해 계속해서 생각해보고 있다, 나도 모르게. 한국에 돌아갈 생각보다는 앞으로 미국에서 하고 싶은 일들을 생각하는 시간들이 훨씬 더 많다. 언젠가는 한국에 돌아가겠지?라는 생각을 하다 보면. 굳이 한 나라에 오래 살 필요가 있을까? 미니멀리스트 그리고 세계 여행자로 계속해서 나라를 옮겨가며 지내는 삶을 꿈꾸기도 한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아주 수시로 아니 거의 매일? 찾아오고. 아직도 낯선 것들, 모르는 것들 그리고 여전히 나는 현지인보다는 외국인에 더 가까운 사람이라는 생각들에도 불구하고. 백인 나라에서 아시안 외국인 여자로서 살아가는 고충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선택에 의해 미국에서 살고 있다.
힘들고 고달픈 순간들이 온몸으로 스며들면서 "아 이래서 사람들이 한국에 돌아가는 건가?" "나도 가야 하나, 가면 더 편안하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려나?" 이런 생각들이 다시 찾아온다.
몸과 마음이 아플 때, 혼자서 병원 예약하고 약국 가고 밥 챙겨 먹고 혼자 앓고, 또 다 나으면 다시 출근한다. 가족들에게 말을 하고 싶으면서도 하기 싫은 감정을 느끼며 고민한다. 나를 걱정하는 게 좀 싫다. 왜 인지는 모른다. 단순히 걱정시키고 싶지 않은 성숙한 이유만은 아닌 것 같다. 귀찮음? 그러한 큰 반응들이 부담스러운? 모르겠다. 내가 아픈 것 힘든 것을 말하는 것은 아직도 연습 중이다.
이사할 때, 혼자서 짐을 다 싸고 다 옮기고 다 정리하고 새로운 인터넷, 전기 서비스를 신청하고, 짐 정리가 끝나지 않은 새로운 집에서 음식을 시켜 먹는다.
파티에 갈 때, 혼자 가서 뻘쭘한 순간들이 종종 있지만 어쨌든 먹고 마신다. 평소보다 목소리를 두 배 이상 키워야 된다. 그래도 못 알아듣는 경우들이 왕왕 있다. 가족이나 파트너를 데려온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 더 쓸쓸함을 느끼고 파티에서 나와서 집으로 가는 차 안은 고요하다. 마음에 맞는 사람들이 있는 파티가 간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고 아닌 경우는 매우 불편하거나 우연히 친구를 만들게 되거나 둘 중 하나이다.
아침에 일어날 때, 퇴근해서 집에 올 때는 외롭다는 생각 자체를 못할 때가 많다. 준비하고 옷 갈아입고 밥 먹고 영상 보고 정리하고 눕고 그렇게 시간을 보낸다.
장 볼 때, 유통기한 내에 혼자서 먹을 수 있는 양을 머리로 계산하며 카트에 음식들을 담는다. 미국에서 파는 한국 과자와 아이스크림은 모두 큰 사이즈뿐이다. 같이 먹을 패밀리가 없지만 그래도 먹고 싶고 향수가 자극되어 카트에 담는다. 장을 많이 봄 날은 트렁크에서 무게를 분배하여 양 어깨에 걸치고 양손에 들고 씩씩하게 걸어간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요리하는 것이 더 이상 싫지 않아서 좋다.
나의 기대에서 나오는 친구들에 대한 섭섭한 마음이 가끔 머리에 자리 잡는다. 내가 외로운지 힘든 일을 겪어냈는지 뭘 챙겨주고 싶지는 않는지. 내가 누군가에게 했었던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나에게 해주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비교하고 서운함을 느낀다. 내가 너무나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나의 삶의 좋은 점 내가 이룬 성취 그것들 말고 나의 고충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듯 보인다. 나는 기대를 안 할 수 있을까 시간이 흐르면.
누군가 나에게 가족 또는 파트너가 있냐고 물을 때, no it's just me or I am single이라고 옅은 미소로 답할 때. 싱글이 아닐 때는 그 느낌이 덜하다.
몇 시간 씩 영상들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지고,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으면서도 집에 와서 오롯이 혼자 지내는 시간이 가장 편하기도 하다. 혼자서 더 잘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와 함께 잘 지내는 것도 너무 좋겠지만, 혼자 지내는 기간에는 혼자서도 평온하고 즐겁게 살고 싶다. 덜 불안하기 위해 주어진 일들을 해내면서보내는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