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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안의 스투키 Sep 01. 2018

평양은 안녕합니까?

평양에서의 9박 10일의 시작

 올해는 유난히도 통일대교에 취재를 많이 갔다.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았고, 또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논의를 위해 실무진들이 통일대교를 통해 판문점으로 갔었기 때문에 촬영기자들은 그 통일대교 앞에서 늘 긴장상태로 있었다.

 줄지어 설치된 바리케이트 앞에 무장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그 통일대교를 버스를 타고 통과하게 될지 누가 생각이나 했겠나.

 

 “평양에서 할 수 있는 모든걸 준비해 가자.”


 “모든거..요?”


 평양에서 9박 10일의 취재가 결정된 이후 회의를 하면서 나에게 맡겨진 업무롤은 평양에서의 영상취재와 LIVE연결.


 “LIVE 연결이 가능할까요?”

 “남북교류협력단에서 추진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너는 할 수 있게끔 준비만 철저하게 해줘.”


 북한은 조선중앙텔레비죤에서 방송을 할 때에도 철저하게 녹화로 방송을 한다.

 심지어 남북 정상이 만나는 그 역사적인 상황에서도 우리나라 언론들은 실시간으로 소식을 전했지만, 북한은 하루 지나서 녹화로 방송을 했다.

 

 그런 북한. 그 심장인 평양에서의 LIVE 라니.


 거의 혼자서 할 수 있는 모든장비를 패킹하고 나니 이전에 남극출장을 갔을 때 정도의 짐이 되어버렸다.

 그때는 그래도 두명이었는데..


 

 평양으로 출발하는 날.

 회사의 사잇길에 커다란 버스가 우리를 태우기 위해 대기하고 있고, KBS방북단이 하나둘 씩 모이기 시작했다.

 12명.

 KBS 만 방북하는 것은 아니지만, 회사차원에서 역대 최대 인원의 방북이다.

 

버스의 화물칸을 가득 채운 방송장비들과 개인짐들. 평양을 향해 자유로를 달린다.

  


 통일대교에 지그재그로 설치되어있는 바리케이트를 넘어 출경심사를 위해 CIQ에 내려 간단한 방북 교육과 짐 검사를 받는다.

 (#출경: 우리나라와 북한은 서로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입국, 출국 이라는 말 대신 입경과 출경 이라는 말로 대신한다. #CIQ: 세관, 출입국관리, 검역의 약칭, 출입국시 반드시 거쳐야 하는 3대 수속이다.)


 

출경심사에 앞서 간단한 방북교육과 통일부에서 승인한 ‘북한’ 방문 증명서


 특히 검사과정에서 주의깊게 보는 것은 컴퓨터이다.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와 북한은 정전협정의 당사국 이기 때문에 컴퓨터 등 오가는 인원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에 예민하다.

 

 비교적 간단한 출경심사를 마치고 다시 버스에 오른다.

 출발한지 5분도 지나지 않아 가로로 길게 늘어서 있던 철책이 열리고 6대의 버스들이 연이어 그 선을 넘기 시작한다.

 선을 넘고 10여분을 달리자 ‘개성’ 표지판이 보이고 창밖의 풍경이 변하기 시작한다.

 멀리 인공기가 펄럭이고, 표정이 굳어있는 북한 군인들이 보이고, 북한의 입경 사무소가 보인다.

 

 이제부터는 북한의 땅이다.


 


 북한의 입경심사는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X100 까다롭다.

 예전 매트릭스 영화 카피 처럼 ‘상상 그 이상’ 이었다.

 짐을 모두 꺼내 검사하는 것은 물론 이동식 저장매체, 노트북 등은 암호까지 확인한 이후 한참을 검사하고 돌려준다. 특히 취재진이 많았던 이번 방북에서는 취재진들의 노트북 및 USB 등을 거의 세시간에 가까운 시간동안 ‘모두’ 검사했다.

 

 이 과정에서 특히 짐이 많은 촬영기자들은 더 힘들었다.

 

 “윤선생은 왜이리 짐이 많습니까?”

 “막내라서 그렇습니다.”

 “북이나 남이나 막내들은 다 똑같구만.”


 이런 설익은 농담을 주고 받으며 짐검사 이후에도 노트북 등을 찾기 위한 긴긴 기다림이 계속되었다.


 “자 마지막 노트북을 수령했습니다.”


 기자단을 태운 버스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해질녘이 되어서야 6대의 버스가 다시금 평양으로 향하는 개성-평양간 고속도로에 올랐다.


개성-평양간 고속도로. 평양에 도착하는 동안 단 한대의 차량도 보지 못했다.


 도로는 한적했고, 창밖의 풍광은 멋졌다.

 포장이 되었는지도 모를 울퉁불퉁한 도로를 달리는 동안 창밖으로 송악산과 예성강이 눈 앞에 펼쳐졌고, 사람키를 넘는 옥수수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산을 넘어가는 햇빛에 비친 옥수수는 참 풍성해 보였다.

 

 창밖의 풍광을 카메라에 담을 수는 없었다.

 북측 안내원들이 허락하지 않았다.


 “기자선생들 이동중에는 촬영하시면 안됩니다.”


평양가는 버스에서 바라보는 밖의 풍경은 서울과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공간이 아닌듯한 묘한 느낌이 있었다.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공간인걸까?

 너무도 아름답지만 이질적인 공간을 창문 사이로 바라보면서 묘한. 글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카메라에 담을 수는 없었지만 평양까지 가는 몇시간동안 눈 한번 제대로 깜박이지 않고 고스란히 눈에 담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앞에 평양이 보여요!”

 

 버스에 함께 탄 누군가가 작은 탄식을 내뱉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에 탄 모든 사람들이 감탄을 뱉었다.


 “우와..”


 

평양 대동강변의 야경은 우리나라의 야경 만큼이나 멋있었다.


 대동강변을 따라 숙소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밖을 바라보니 그 광경이 휘황찬란하다.

 최첨단으로 보이는 고층 건물들이 즐비하고 그 건물을 비추는 불빛은 강렬했다.

 전력난을 걱정하는 북한이라고 들었지만 평양만큼은 그렇지 않은 듯 했다.

 

 “이렇게 화려한 야경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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