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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안의 스투키 Sep 09. 2018

평양과 서울이 얼마나 차이가 난다고 온도차이가 납니까?

8월의 평양은 뜨거웠다.

 "콜록 콜록"

 

 아침부터 목이 까끌까끌 하다.

 방북단이 묵게된 양각도국제호텔의 냉방시설은 정말 충격적이다.

 숙소에 처음 들어가자마자 느끼는 꿉꿉함이란.

 그 꿉꿉함을 없애보려 에어컨을 밤새 틀었지만, 오히려 눅진눅진한 차가운 바람이 목을 더 아프게 만든것 같다.

 43층이나 되는 양각도국제호텔은 고려호텔과 더불어 평양을 방문하는 많은 관광객들이 묵는 숙소다.

 그런 숙소임에도 냉방 시스템은 제습이 전혀 안돼 대동강변의 후텁지근함이 객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창문 좀 열어볼까요?"


창문을 열자 대동강변과 함께 평양의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함께 방을 쓰게된 촬영감독 선배가 창문을 열자 대동강의 후끈한 바람이 방으로 들어오면서 평양의 아침이 눈에 들어온다.

 고층의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대동강변을 따라 빼곡하고, 곳곳에 공사하는 모습과 아직도 완공되지 못한 류경호텔이 시내 한가운데 삐죽 솟아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1시방향부터 오른쪽으로 아직도 건설 중인 류경호텔, 평양시내 건설현장, 강건너에 있는 김책공대 정문과 대동강변 아파트들


 첫날 취재 일정부터 계획과 어긋나기 시작했다.

 북측이 제시하는 취재 장소에 대해 ‘함께 협의 되지 않은 일정이 포함되어 있다’며, 함께 방북한 통일부에서 출발시간 연기를 요청했다.


 북측이 제시한 취재장소는 ‘만경대 고향집’

 

 만경대 고향집은 김일성의 생가였는데 통일부에서 김일성 생가라는 이유로 일정을 보이콧 한것이다.

 최소한의 시간만 만경대를 들렸다가 다음일정으로 바로 출발하기로 새로 협의를 하고 2시간 정도 지연된채 취재일정을 위해 출발했다.


만경대 고향집은 잘 관리된 초가집이었다. 만경대를 설명하는 안내원.


 만경대 고향집은 우리나라 민속촌에 있을 법한 잘 만들어진 초가집이었다.

 방북단은 10여분 남짓 설명을 들었는데 김일성이 빨치산 활동을 위해 나서기 전까지 살았던 집이라는 설명이었다.


 #왜 이곳 방문을 통일부가 '김일성 생가'라는 이유로 보이콧 했는지 지금까지도 이해하기 힘들다. 취재진들이 김일성 생가라는 이유만으로 뭔가 새로운 감흥을 받을 것을 걱정했다면, 취재진의 수준을 너무 낮게 보았다. 아니면 과잉 반응이거나.

 

 만경대 고향집에서 설명하는 안내원의 눈에는 뭔가 불꽃 같은 것이 일렁였는데, 우리 방북단의 눈에는 ‘더운날 고생하는 사람’만이 보였다.


만경대를 벗어나 도착한 개선문



 서울에서도 무척이나 더웠는데, 평양은 더 더운것 같았다. 이동을 위해 준비된 노후된 버스안 에어컨은 무더위를 식힐만큼 시원하지 않았다.

 그나마 나오는 에어컨 바람을 정수리에 바짝 쐬어도 옷을 흠뻑 적실 정도로 흐르는 등줄기의 땀을 식히기엔 역부족 이었다.

 

 “올해 남측 서울도 엄청나게 더운데, 평양은 윗쪽이라 다를 줄 알았는데 똑같네요.”

 

 “평양과 서울이 얼마나 차이가 난다고 온도차이가 납니까?”


 맞다.

 평양과 서울은 차로 이동해도 2시간 남짓이면 올 수 있는 거리인데 날씨가 얼마나 다르겠나.


 오늘 북측 안내원들은 우리에게 정말 많은 것을 보여줄 작정인 것 같았다.

 햇살은 뜨겁다 못해 따갑고, 지열이 몽실몽실 올라오는 것이 눈에 보일만큼 솥가마 같은 날씨.

 그런 날씨에 지치지도 않는지, 북측 안내원들은 우리를 다음 일정인 개선문에 데려갔다.

 

개선문 거리 주변에는 더위를 피해 양산을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양산을 들어주는 남녀의 모습도 이색적 이었다.


 개선문은 정말 크고 견고하게 지어진 하나의 체제 선전물 이었다.

 개선문을 설명하는 안내원의 목소리가 주변의 자동차 소리들을 헤치고 또랑또랑 하게 들렸다.

 

 “개선문 좌측에 보시면 1925. 우측에 보시면 1945 라고 써있습니다.

 이는 위대한 영도자 김일성 수령님께서 빨치산을 조직하기 위해 평양을 떠난 해인 1925년, 그리고 조선 해방의 과업을 이루고 평양으로 다시 돌아온. 즉 개선하신 해인 1945년을 기념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해방은 민족 지도자들 및 일반 국민들의 항일 운동이 가장 중요했으나, 외부적인 요인으로 일본의 세계2차 대전 패망이 큰 부분을 차지 했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역사적 사실은 없고, 북한 주민들에게 대한민국의 해방은 모두 김일성과 그가 조직한 빨치산의 성과였다.

 그런 ‘김일성 우상화’를 이렇게 피부로 경험하면서, 북한과는 가깝지만 먼 거리임을 느꼈다.  


평양의 무더위에 온몸이 땀에 다 젖었다.

    

 평양의 무더위에 촬영기자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안내원들은 이동을 재촉하고, 옷은 물을 끼얹은 것 처럼 땀과 함께 몸에 달라붙었다. 찝찝함과 불쾌감이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이제 점심 시원하게 드시러 가시지요?”

 “너무 늦은거 아닙니까?”

 

 “늦은건 기자선생들 때문입니다. 그래도 평양 왔으니 평양냉면 드시고 힘내서 다음일정 가시지요.”


 늦었다고 뭐라고 하는건지, 덥다고 걱정을 해주는 건지..


평양 하면 평양냉면. 그 중에서도 북한사람들에게는 옥류관이 1등이다.



 북한음식 하면 평양냉면이 1순위라고 안내원들이 설명해준다.

 평양에 많은 냉면집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옥류관이 으뜸 이라고 하니 엄청 기대를 하고 점심을 먹으러 출발했다.

 

 도착하니 한눈에 봐도 엄청난 규모의 옥류관, 그 앞에 오후 두시가 가까웠음에도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기자선생들 밥먹을땐 밥 먹자우. 사람들 찍지 마시고.”


 가뜩이나 힘들었는데 잘 되었다. 촬영을 접고 옥류관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2층의 커다란 문을 열자 커다란 대연회장이 펼쳐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북단 앞으로 냉면이 등장했다.

 말로만 듣던 평양 옥류관 냉면.


옥류관 대연회장과 냉면 먹는법을 친절히 알려주는 안내원

 

“이렇게 면발에 식초를 뿌리고, 면발에 닿지 않게 겨자를 육수에 풀고, 앞에 있는 양념을 취향에 맞게 섞어서 드시면 됩니다.”

 

 봉사원이 친절하게 먹는 법을 설명하는데 이상하다.

 우리는 슴슴한 그 맛이 평양냉면이라고 들었는데 양념장이 왠말인가.

 그러나 평양에 왔으니 평양법에 따르기로 하고 일단은 아무것도 섞지 않은 육수를 들이켜 본다.


 “엥?”


 기대가 너무 컷던 걸까?

 육수에서 닭고기의 육향이 훅 들어온다. 서울에서 먹는 평양냉면의 묵직한 소고기 육향이 아닌 약간 비릿한 향이다.

 봉사원의 설명대로 식초와 겨자를 넣고 면발을 입에 넣었다.


 “엥?”

 

 면발은 탱글하다 못해 탄력이 넘치는 식감이다. 메밀면의 고소함 보다는 전분을 많이 섞어 쫀득한 맛이 강하다.

 게다가 식초와 겨자가 섞인 육수는 혀를 탁 치는 자극적인 맛이 되어버렸다.

 

“옥류관 냉면의 맛이 좋습니까?”

 

“음.. 맛있기는 한데 서울에서 먹는 평양냉면의 맛이 더 제입맛에 맞는거 같은데요?”

 

“평양냉면은 이게 원조입니다.”

 

 평양이 원조라는 안내원의 말에는 옥류관 냉면에는 없는 묵직함이 있었다.

 솔직한 마음은 ‘맛이 없었다.’ 였지만

 옆에서 ‘묵직하게’ 맛이 좋냐고 물어보는 안내원들에게 차마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여기 을밀대, 평양면옥이 더 맛나요!!”

 

해단식은 을밀대에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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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차 카메라기자 입니다. 커피를 많이 마시고, 주로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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