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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안의 스투키 Sep 16. 2018

평양의 시간은 서울과 함께 흐른다

9박 10일의 평양취재의 마무리


 “딱”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손가락을 튕기며 생방송의 마무리를 알린다.

 이제야 긴장을 풀어내며 서로의 상기된 얼굴을 마주본다.

 

 “고생했습니다.”

 “감독님 고생하셨습니다.”

 “선배 자연스럽고 좋았어요.”

 

입사 이후 생각해보지도 못한 평양 라이브, 그 현장에 함께 했다는 것이 정말 뿌듯하다.


 8월 14일, 평양에서의 ‘9시 뉴스 LIVE연결’ 완벽한 성공에 서로서로 어깨를 두드린다.

 평양 LIVE가 온에어 되기까지 KBS 남북교류협력단은 무려 ‘2달동안’ 고생을 했다.

 성공의 3할은 운이었지만 7할은 정말 함께 방북한 우리 방북단의 노력의 결과다.

 (특히 카메라 밖에서 고생한 남북교류협력단 선배들과 중계감독님들이 이번 LIVE 연결의 일등공신이다.)

 

 방송을 마친 후 양각도 호텔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 돌아가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함께 방북한 방송사 기자들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다.

 엄청난 항의를 쏟아낸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공동취재단을 꾸린 것도 아니고, 방북하기 전부터 준비했던 ‘9시 뉴스 평양LIVE’를 우리가 하면 안되는 이유가 없지 않는가?


 다음날 연결 예정이었던 광복절 특집 9시 뉴스 참여가 무산이 되었다.

 타사의 강한 항의로 북측에서도 향후 일정의 원할한 진행을 위해 방송을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방북한 평양에서 서로의 취재경쟁은 때론 필요하지만 일정을 그르칠 정도로 무리해서는 안된다.

 줄을 타듯 언론사들은 아슬아슬한 긴장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방북 전부터 준비했던 LIVE방송을 ‘미리알려주지 않아서’, ‘취재의 룰을 어겼다.’ 등의 정말 말도 안되는 이유로 항의하고 취재일정을 보이콧 하는 등. 타사들의 행태는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단체 항의에 북측도 장사는 없다.

 

 결국은 이후 생방송 참여를 하지 못하고 남은 일정들을 이어갔다.


 

만수대 의사당에서 북측 민화협 김영대 의장 취재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만수대 의사당 취재 풀단이 됐다.

 

 우리나라의 국회의사당에 해당하는 만수대 의사당은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회담장소로 이용되었던 곳인데, 일반적인 취재에 오픈되는 공간이 아니다.

 그 곳에 방북단 중 카메라기자 2명과 취재기자 5명만이 함께 북측 민화협 의장 접견 동행취재를 간다.

 

 풀단 카메라기자 2명 중 한명이 되었다.


 의사당 입구에서부터 카메라와 트라이포드 등을 들고 한참을 걸어가는데, 어찌나 으리으리 하던지 대리석으로 둘러쳐진 복도가 수백미터 이어진다.


 접견장까지 무거운 장비를 혼자 들고 가자니 그 거리가 남북간의 거리 만큼이나 멀게 느껴진다.


 접견장에서 녹취와 함께 스케치를 한참 하고 있는데


 “그만 찍으시라요.”

 “잠시만, 잠시만”

 “밖에서 차나 마시며 기다리시라요.”


 결국 5분여의 취재만 허락되고 쫓겨났다.


접견실 옆방에서 녹취를 맞추고 있는 취재기자 선배들과 잠시 쉬는 SBS 선배와 나  



 멀리 왔지만 짧은 취재 후 쫓겨나온 접견실 옆방에서 끝나기를 기다리며 한숨 돌린다.



우리나라로 치면 노량진 수산시장인 대동강 수산시장


  만수대 의사당에서 취재가 끝나고 다른 취재진이 있는 대동강 수산시장으로 간다.

 대동강변에 새롭게 지어진 대동강 수산시장은 북한의 가장 최신식의 건물이다.

 마치 수족관 같은 느낌의 수산시장인데, 우리나라의 노량진 수산시장과는 달리 물고기들을 양식장인 것 처럼 풀어놓고 판매를 한다.

 

 ‘동물 복지는 대동강 수산시장이 노량진 보다 낫구나”


 라는 어설픈 농담이 생각이 났다.


평양에서 물고기 요리를 파는 어느곳에서나 볼 수 있는 철갑상어 회

 

 수산시장에서는 회를 먹어야 제맛.

 철갑상어 회가 나온다.

 북한에서 양식에 성공했다는 철갑상어는 평양 사람들이 즐겨 먹는 회라고 한다.

 

 맛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하지만 평양냉면처럼 회도 노량진이 더 낫다.


 

김일성 경기장을 가득 채운 평양시민들
혼자서 아등바등, 조선중앙텔레비죤의 여성 중계카메라감독
방북의 목적, 유소년 축구대회를 취재중인 취재진


 7만명의 평양시민들이 꽉꽉 들어찬 김일성 종합경기장에서 유소년 축구 경기가 열렸다.

 평양의 시민들이 북한 선수들의 경기 뿐 아니라 우리나라 선수들의 경기에서도 환호를 보내준다.

 

 취재진이 관람객 인터뷰를 요청하니 안내원들이 난색을 보인다.

 하지만 포기할 한국 취재진이 아니다. 수차례 요청을 하자 안내원들이 하프타임에 몇명을 데리고와 인터뷰를 허락해준다.

 

 하지만 급하게 섭외해 불안해서 일까? 안내원들은 촬영기자들 옆에서 인터뷰 내내 인터뷰하는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귀기울인다.


 “여기요 이어폰!”

 

 귀기울이는 모습이 참 안쓰러워 한쪽에 끼우고 있던 이어폰 한쪽을 건내준다.

 들어봐야 별 이야기도 없구만 참 안내원들도 고생한다.


 “이렇게 북과 남이 함께 한다고 하면 통일도 머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남은 경기를 취재 하는데 혼자 카메라와 다리를 메고 아등바등 움직인다.

 경기장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가, 날은 덥고, 경기는 계속되고.

 

 

 이렇게 힘든 경기의 결과 유소년 축구 우승 트로피는 북한의 4.25 축구단에 돌아갔다.





 북측 안내원들은

 

 “윤선생 어떻습니까?”

 “남측은 이런 것들이 있습니까?”

 “남측에 돌아가면 좋다고 많이 알려주시라요.”


 라고 수시로 묻는다.

 안좋을 수 없는게 그들이 우리 취재진에게 보여주는 것들은 평양에서도 가장 최첨단의, 그리고 선택받은 사람들의 모습이다.

 

밤의 대동강을 밝히는 유람선, 그리고 평양학생소년궁전
개선문 앞 일반인들의 취재는 금지
김일성 종합경기장과 문수 물놀이장


 

 안내원들은 그런 첨단의 것들을 제외한 일반적인 거리나 식당 등의 일반인들과 접촉할 수 있는 취재는 끝내 허락하지 않는다.


 또 평양시내에서 북한의 건국일인 99절을 준비하는 시민들의 모습도 이어졌는데, 밖에서도 차안에서도 99절을 준비하는 평양 시민들의 모습을 촬영하는 등의 취재행위는 철저히 금지 된다.



그렇다고 취재를 안할 수는 없다. 촬영기자라면 요령껏..

 

  북측 안내원들은 인터뷰를 지정해 주며, 촬영기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촬영물의 확인을 요구한다.

 

 “윤선생 촬영한 것 다시 좀 보겠습니다.”

 “왜요?”

 “아니 개선문이 제대로 나왔는지 확인하겠습니다. 윤선생 이게 뭡니까 지우시라요.”

 “이게 어때서요.”

 “개선문이 한번에 딱 하고 나와야지 이게 뭡니까? 지우고 다시 찍으시라요.”


 “윤선생은 왜 자꾸 사람들을 찍나!”

 “아니 병원에 왔으면 환자들도 찍어야죠.”

 “시끄럽고 사람들은 말고 건물만 찍으라우.”


모든 취재장소에서 안내원들은 까다롭게 군다.

특히 김일성, 김정일 초상이 걸려있는 취재장소에서는 더 심각하다.

 정해진 시간이 너무 짧아 급하게 촬영하다 보면 초상이 잘려 찍히거나 정가운데 위치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러면 안내원들으뉴그동안 찍은 화면을 다 보여달라고 하고 일일이 검사 후 자신들의 마음에 안드는 원본은 지운다.

 그리고 힘주어 한마디.


 “정중히 찍으시라요!”


9박 10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9박 10일의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2시간 남짓의 시간동안 참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같은 공간, 다른 시간.’


 화려한 대동강변의 모습과 야경, 그리고 엄청난 무더위와 평양냉면집에 줄 선 시민들의 모습은 우리나라와 빼닮았다.

 하지만 철저히 취재의 대상을 통제하고, 북한 최고 지도자들에 대한 그들의 몸가짐을 보면 다른 시간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출발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개성을 지난다.

 남북 경협과 개선된 남북교류의 상징이었던 개성공단.

 그 폐쇄된 개성공단 곳곳에 삐죽 올라온 잡초를 지나 다시 서울로 향한다.


 출경 짐검사를 위해 버스에서 내리자 등 뒤로 멈춰진 개성공단의 시계탑이 보인다.

 

 언제 움직였을지 모를 시침과 분침.


 ‘평양의 시간은 서울과 함께 흐른다.’ 는 말처럼


 저 멈춘 시계탑의 시간도 언젠가 우리의 시간과 함께 흐르기를 바라본다.


 다시 군사분계선을 넘으며, 9박 10일의 평양 출장이 끝났다.



   

KBS 방북 취재단과 북측 안내원들 다음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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