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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8장 | 독서기록 #8

8장 발췌와 단상

by 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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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발췌와 단상




# 발췌


하지만 묘지에서 관이 인조잔디 매트로 가려진 좁은 구멍 속으로 들어갈 때,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을 양손에 묻더니 누군가가 그녀의 어깨를 건드릴 대까지 그대로 있었다. <p.163>


그녀가 직접 산 장난감과 장신구, 학교 친구들이 보낸 편지와 비밀 사진, 먼 친척들에게서 받은 선물 등이 한 무더기를 이루었고, 아버지에게서 받은 물건이나 아버지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물건들이 다른 한 무더기를 이루었다. (중략) 분노도 기쁨도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는 그 무더기 속의 물건들을 하나씩 꼼꼼하게 들어내서 폐기했다. 편지와 옷, 인형의 속, 바늘겨레와 사진. 그녀는 이런 물건들을 벽난로에서 태웠다. 진흙이나 도자기로 만들어진 인형들의 머리, 손, 팔, 발은 벽난로 안에서 고운 가루가 될 때까지 부숴버렸다. 이렇게 태우고 부순 뒤 남은 재와 가루는 한 곳으로 모아서 자기 방에 붙어 있는 화장실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려버렸다.

(중략)

그녀는 자신을 변화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p.165>


“당신은 정말로 나를 증오하는군. 그렇지 않소, 이디스?” <p.176>




# 단상



이디스는 아버지와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아버지가 죽고 난 뒤 이디스는 꼭 마치 자유를 찾은 사람처럼 행동한다. 무표정한 얼굴을 양손에 묻었다는 장면에서 어쩐지 나는 그 손바닥 뒤 이디스가 웃고 있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조금 섬뜩하기까지 한 이디스의 감정선이 두렵고 때론 화가 나고, 때론 애처롭고, 또 궁금해진다.

이디스는 왜 갑자기 그레이스를 스토너에게서 멀리 두려고 할까? 추측건대, 이디스는 스토너를 미워할 구실이 필요한 것 같다. 증오의 대상인 아버지가 죽고, 이젠 자신의 자유를 찾음과 동시에 그 증오 대상의 공백을 스토너로 채우려는 찰나. 그의 옆에서 그녀와는 다른 섬세하고 인격적인 양육을 받으며 자라고 있는 그레이스 있다. 아마 그레이스는 그녀가 평생 받지 못했던 훌륭한 사랑을 아무 조건 없이 충분히 받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이디스가 조금 더 성숙한 인간이었다면, 제 딸아이는 자신과 다르게 자라고 있다는 것에 안도해야 할 텐데, 이디스는 너무나 미성숙한 어린아이와 같다. 엄마를 대신해 어릴 때부터 훌륭하게 양육을 도맡아 온 스토너를 마치 연구가 너무 바빠 아이에게 신경 못쓰는 아버지처럼 공공연히 말하고, 아이가 자신처럼 자유하지 못한 여성으로 자라도록 종용한다. 사랑과 염려를 명분으로 삼았기에 그 행동이 더 치사하다. 스토너가 연구를 못하도록 은밀하게 방을 빼앗고, 그레이스가 아버지와 친하게 지내지 못하게 하는 이디스의 심리가 참 궁금하면서도, 그녀의 행동이 참 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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