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췌와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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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췌
이제 막 중년에 접어든 핀치는 체중관리를 위해 열심히 애쓰는 사람들 특유의 꼿꼿하면서도 말랑말랑한 태도를 갖고 있었다. 얼굴에는 살이 쪘지만 아직 주름은 없었다. 그래도 턱은 처지기 시작했고, 목덜미에는 살이 겹쳐질 만큼 살이 붙었다. 머리숱도 크게 줄어들어서 그는 벗어진 곳이 금방 드러나지 않게 머리카락을 정돈했다. <p.210>
“내가 워커 군을 자네보다 높게 평가하게 된 이유는 알겠네. 저 친구는 내 수업도 여러 번 들었고…… 어쨌든, 나는 협상할 용의가 있네. 자나치게 엄격한 평가라고 생각하지만, 조건부 합격에 동의할 용의가 있어. 그러면 워커 군이 두어 학기 동안 다시 공부한 뒤에……”<p.228>
“불합격입니다.” 스토너가 말했다. “확실한 불합격이에요.” <p.227>
“저 학생은 능력이 없어. 의문의 여지가 없네. (중략) 게다가 게으르고 부정직하기까지 하지.”
<p.227>
“우리 셋이 함께 있을 때 그 친구가 뭐라고 했냐면…… 대학이 소외된 자, 불구가 된 자들이 세상에서 도망칠 수 있는 피난처라는 얘기를 했어. 하지만 그건 워커 같은 친구들의 이야기가 아니었지. 데이브라면 워커를…… 세상으로 보았을 걸세. 그러니까 그 친구를 허락할 수가 없어. 만약 우리가 허락한다면, 우리도 세상과 똑같이 비현실적이고 그리고…… 우리에게 희망은 그 친구를 허락하지 않는 것뿐일세.” <p.235>
# 단상
스토너가 겪는 고난이 마치 쨍한 햇빛이 내리쬐는 무더운 여름의 한가운데 같다. 중년에 접어든 고든 핀치의 외모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나는 스토너의 현재 외모가 무척 궁금해졌다. 긴 얼굴에 건조한 머리카락, 언제나 똑같은 모습으로 소매가 겉도는 양복을 입고 다니던 젊은 스토너는 중년이 된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로맥스는 예상대로 스토너를 무척 질투하고 있었던 듯하다. 교육자로서 재능이 한창 물이 올라, 인기 있는 교수로 교직생활을 하던 스토너를 로맥스는 다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홀리스 로맥스는 자기 수업을 여러 번 들은 제자이자, 자신과 비슷한 종류의 아픔을 갖고 있는 사람인 찰스 워커에게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투영하고 있는 것 같다. 그에게 있어 찰스 워커 즉, 스토너 보다도 자신을 택한 그 청년은 반드시 훌륭한 학생이어야만 한다.
스토너는 찰스 워커를 불합격시키는 것을 통해 무엇을 지키고 싶어 하는 걸까? 데이비드 매스터스 이야기를 통해 짐작건대, 스토너는 자신의 피난처가 돼준 문학의 성지인 대학을 끝까지 성스러운 공간으로 지켜내고 싶은 것 같다. 스토너처럼 가난한 부모에게서 자란 사람이 현실에서 뚜렷한 희망을 보기 어려웠을 시대에 대학은 그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모두 열려 있었고, 그들에게 새로운 인생을 열어주었다. 그런 의미가 담긴 장소이니 만큼, 찰스 워커처럼 게으르고 부정직한 자가 그 성스러운 공간을 오염시키게 둘 수 없었던 것이다.
고든 핀치를 그동안 의심쩍게만 보아왔던 게 미안할 정도로, 그가 홀리스 로맥스에게 엄포를 놓는 장면은 멋있었다. 스토너와 꽤 다른 노선의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세월의 축적 앞에서 두 사람의 우정은 진한 수프처럼 깊어진 것 같다.
그리고 이디스를 어떻게든 이해하고자 했던 내 마음과 무관하게, 이디스는 이미 악의 본성으로 굳어진 듯하다. 학교에서 고난을 겪는 그를 알고도, 위로는커녕 조롱을 보낸다. 스토너 인생의 고난은 어디까지 깊어질까.. 그래도 큰 양복을 입고 다니던 어리숙한 스토너가 이제는 외유내강형의 내실이 단단한 남성이 되어, 이 고난을 자신의 방식으로 잘 헤쳐나가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