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軸)의 시대 8

동양 문화권의 영향을 받았던 동물들

by 스튜던트 비


그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뒤엉켜 있던 그때, 호랑이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진시황의 모습은 사라졌고, 주변을 둘러보니 그가 데리고 온 동물들은 모두 기절해 있었다. 눈앞에는 오직 수은의 강만이 출렁이고 있었다.


호랑이는 그들을 모두 들쳐 업고, 수은의 기운으로 가득 찬 어둠의 공간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그곳은 끝이 보이지 않는 미로 같은 지하 도시였다. 호랑이는 벽을 긁고, 손톱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길을 찾았다. 그리고 끝없는 어둠 속을 수십 일을 헤맨 끝에, 마침내 낙타, 산양, 그리고 천산갑과 함께 그 무덤과 같은 구조물에서 벗어나 지상의 빛을 다시 보게 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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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쳐버린 몸으로 왕국으로 돌아온 호랑이는 모든 동물들을 불러 모아놓고 조용히 선언했다.


“내가 쌓아 올리려 했던 제국은… 어쩌면 우리 동물 세계에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자연에 맞는, 진짜 방식이 무엇인지 찾기 전까지는 제국의 건설을 멈추겠다. 그리고 나도 그 답을 찾기 위해 떠나겠다.”


그 말과 함께 호랑이는 왕좌에서 물러났고, 그의 제국은 긴 휴지기에 들어갔다.

호랑이의 제국은 오래 가지 못했지만, 그가 남긴 울림은 동물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았다. 많은 동물들이 처음으로 ‘동물에게 맞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고, 호랑이에 의해 자유를 얻은 낙타와 천산갑, 산양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사상과 이상들이 싹트기 시작했다. 2)


한편, 자리를 비운 호랑이는 긴 세월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고, 동방의 동물 왕의 자리는 공석으로 남게 되었다. 다만 동방의 동물들은 언젠가 새로운 질서를 깨달은 호랑이가 다시 세상으로 돌아와 자신들을 이끌어줄 날이 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1) 진시황릉 내부에는 궁궐을 본뜬 구조물과 수은으로 재현된 바다, 강이 있으며, 그 주위에는 병사와 말의 토용들이 있다.

단, 낙타와 산양, 그리고 천산갑의 모형은 발견되지 않는데, 이는 호랑이가 본래 그들을 진시황에게 바치려 했으나, 끝내 마음을 바꿔 그들과 함께 무덤을 빠져나왔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2) 그들은 호랑이가 남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진시황 시절 분서갱유의 혼란 속에서 사람들이 몰래 산속에 숨겨 두었던 책들을 찾아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동물들은 “자연의 흐름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도가(道家)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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