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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의 시대(Axial age) 4

인간을 잠시 앞질렀던 지적인 동물들의 이야기

by 스튜던트 비

사자는 소에게 자신이 세워 온 탈출 계획을 조심스레 설명했다. 하지만 사자의 기대와는 달리, 소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그 자리에 서서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이미 투우에서 은퇴한 소에게는 가족이 있었고, 새로운 기억들이 그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자유와 지식을 꿈꾸던 예전의 소가 아니었다.

그런 소를 바라보며 사자가 말했다.


“무, 우리의 이상을 잊은 건 아니겠지. 나는 그날의 오판을 평생 후회하며 살아왔어. 이번에 돌아가면, 인간에게 지지 않는 새로운 세상을 함께 세울 거야.”


사자의 설득은 밤새 계속되었고, 결국 마지못해 무는 가족들을 데리고 사자를 따라나서기로 했다. 사자는 힘겹게 소들이 갇혀 있던 우리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소들이 빨리 우리 밖으로 나가도록 재촉했지만, 소들의 발걸음은 생각보다 느렸다. 사자가 다시 소들을 다그치려는 순간, 멀리서 인간들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농장 주인이, 소들의 이상한 움직임을 눈치채고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사자가 사람들을 막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억지로 공격 자세를 취하자, 소가 말했다.


“사자, 여기서 아프리카로 돌아가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당신도 알잖아요. 사람들의 마을을 지나고, 바다를 건너야 하겠죠. 만약 우리가 잡히면, 소들은 다시 우리로 들여보내겠지만 당신은 무사하지 못할 거예요. 사자가 나타났다는 걸 인간들이 아는 이상 그냥 두진 않을 테니까요.”


소의 설득에도 사자가 아랑곳하지 않자, 소는 사자의 앞을 가로막으며 다시 한 번 단호하게 말했다.


“사자, 아쉽지만 우리의 시간은 이미 지나갔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모든 기억을 지우고, 예전에 꿈꾸던 세상을 전부 포기하자는 뜻은 아닙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 후손들에게 우리의 이상을 똑똑히 전할 수 있다면, 언젠가 우리가 그렸던 그 횃불은 다시 타오를 거예요.”


잠시 정적이 흘렀고, 사자는 인간을 공격하려던 자세를 풀었다. 한번 마음을 정하면 뜻을 굽히지 않는 소가 이미 결심을 내렸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때, 무의 손자로 보이는 작은 송아지 한 마리가 조심스레 소와 사자에게 다가왔다. 사자는 송아지와 눈이 마주쳤다. 예쁘고 순수한 눈이었다. 인간들의 발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고, 시간이 진짜로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은 사자는 송아지에게 다가가 말했다.


“우리가 한때 지피려 했던 그 이상이 계속 살아갈 수 있게…네가 기억해 줘.”


사자는 송아지의 앞발 위에 자신의 앞발을 조용히 포갰다..


“내가 너를 축복해 줄게.”


사자는 그렇게 자신의 마지막 말을 남긴 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chapter56수정_2---복사본.jpg 알파카 作, 20세기, 「축복」, 크기 220 × 250 cm

사자가 송아지에게 축복을 건네는 장면을 그린 작품으로, 서로 종(種)이 다른 동물 사이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축복을 묘사하고 있다. 동물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상징적인 작품이다.



사자가 건넨 축복은 그가 살면서 처음으로 한 축복이었을 뿐 아니라, 동물의 역사에서 한 종이 다른 종에게 준 최초의 축복이기도 했다. 그 축복이 정말 힘을 가졌던 것일까. 송아지의 후손들은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고, ‘지식을 숭상하는’ 동물들의 전통과 이상도 그들과 함께 남미와 호주, 그리고 아시아까지 번져 나갔다.


한편, 동물들의 공부는 사자가 사라진 이후에도 오랫동안 이어졌다. 인간들 앞에서 대놓고 책을 읽는 모습은 사라졌지만, 인간의 눈이 닿지 않는 숲속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배움이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끝없는 도전과 시험이 닥칠 때마다, 동물들은 축의 시대에 높은 이상을 품었던 전설적인 조상인 사자와 소를 떠올리며 공부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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