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문화권의 영향을 받았던 동물들
한편, 이 시기의 동물들은 책에 지나치게 몰두한 탓에 세상을 보는 눈이 다소 순진했다. 그들이 저지른 결정적인 실수는 인간과 직접 대화를 나눠보려 한 것이었다. 사람들과 만나 지식을 토론하고자 했던 그들은, 마침내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동물 세계의 왕 바바리사자를 선두로, 소와 닭, 염소 등 당대의 가장 총명한 동물들이 떼를 지어 인간의 도시로 향했던 것이다.1)
그러나 인간과의 첫 만남은 대화가 아니라 포획으로 끝났다. 거리 한복판에 갑작스레 나타난 그들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당황한 인간들은 무기를 들고 그들을 붙잡았다.
사자는 자신들이 이곳에 온 이유를 설명하려 했지만, 인간은 동물들을 지식을 토론할 상대로는 커녕 대화의 상대로도 보지 않고 우리에 가두었다. 그때 사자는 인간들이, 책에서 읽은 모습과는 달리, ‘무엇을 말하는가’보다 ‘누가 말하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인간에게 사로잡힌 고대의 동물들은 이곳저곳으로 팔려 나갔고, 사자 또한 어디론가 노예처럼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사자가 끌려나가던 날, 그는 눈물을 흘리며 우리에 갇힌 동물들을 향해 마지막으로 외쳤다.
“내가 반드시 너희를 찾을 것이다!”
그 외침을 들은 동물들은 사자의 구원을 믿는다는 표시로 앞발을 높이 들어 올렸다.
짙은 흑연 음영으로 그려낸 사자의 초상화로, 고통과 결의가 교차하는 순간을 포착한다.
어둠의 심연에서 떠오르는 사자의 시선은 기억과 생존, 그리고 저항을 암시한다.
인간에게 잡혀간 뒤, 가장 열악한 환경에 처한 동물은 사자였다. 그는 로마의 콜로세움으로 끌려가 싸움을 앞두고 며칠씩 굶어야 했고, 목숨을 건 사투가 끝날 때면 화살과 칼자국으로 인한 상처가 온몸을 뒤덮었다.
지옥 같은 날들이 끝없이 이어졌지만, 사자는 일행을 구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악착같이 살아남았다. 매일 저녁, 생사를 건 싸움으로 피투성이가 된 그는 콜로세움 우리 안으로 스며드는 붉은 석양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동안 인간과 동물이 언제나 도전과 응전의 관계2)에 있었음을 몰랐던 것은 전적으로 나의 실수다. 나는 반드시 살아서 이곳을 나갈 것이고, 내가 이곳을 나가면 다시는 그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자가 탈출하기까지는 십 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모든 전투에서 승리하고, 더 이상 싸울 힘조차 남지 않았을 때 비로소 인간들은 그를 풀어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렇게 그리던 자유를 되찾았을 때, 사자의 몸은 이미 망가져 있었다. 사자의 눈빛은 여전히 살아 있었으나, 이빨은 부서지고 다리는 심하게 절었으며, 기력은 다해서 더 이상 제대로 뛸 수조차 없었다.
1) 이들 중에는 ‘상가르(Sangar)’라는 이름의 사자왕, ‘무(Moo)’라는 이름의 법학전공자 소, 그리고고 천문학자 닭(Cocodak)이 포함된다. 이들은 천동설(지구 중심으로 우주가 돈다고 생각하는 세계관)을 믿는 인간들에게 한수 가르쳐주러 도시에 내려갔다가 모두 잡혀버리는 화를 당했다고 한다.
2) ‘도전과 응전’이라는 말은 영국의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Arnold J. Toynbee) 가 썼던 말로, 문명의 역사를 끊임없는 도전과 그에 대한 응전의 반복으로 본 표현이다.
동물 세계에서는 사자왕이 이 말을 처음 언급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