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문화권의 영향을 받았던 동물들
하지만 사자가 탈출하기까지는 십 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모든 전투에서 승리하고, 더 이상 싸울 힘조차 남지 않았을 때 비로소 인간들은 그를 풀어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렇게 그리던 자유를 되찾았을 때, 사자의 몸은 이미 망가져 있었다. 사자의 눈빛은 여전히 살아 있었으나, 이빨은 부서지고 다리는 심하게 절었으며, 기력은 다해서 더 이상 제대로 뛸 수조차 없었다.
약속을 잊지 않은 사자는 자유의 몸이 되자마자 새들을 불러 헤어진 동료들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월은 이미 너무 많이 흘러 있었다. 염소는 동방으로 팔려갔고, 닭은 오래전에 인간의 식탁 위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1) 남은 동료는 전설의 소, 무(Moo). 그는 서쪽 먼 땅, 로마의 속주 히스파니아2)에 투우로 끌려가 유배된 듯한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처형이 있기 전날 밤, 하늘의 별들을 보며 지동설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닭을 그린 작품이다.
사자는 소를 찾아 나서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는 북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는 고된 여정을 마친 끝에 새들이 알려준 농장에 도착했다.
밤이 되자, 사자는 우리 근처까지 조용히 다가갔다. 그리고 달빛이 비추는 외양간을 향해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소의 이름을 불렀다.
“무.”
그 순간, 축축한 흙을 밟으며 펜스 쪽으로 그림자 하나가 다가왔다. 그리고 두 눈이 마주쳤다.
“사자, 당신이군요… 정말 약속을 지키러 오셨군요…”.
소는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눈물을 글썽였다. 사자는 펜스에 앞발을 얹은 채, 낮은 목소리로 무에게 속삭였다.
“돌아가자. 우리가 세우던 그 세상으로.”
사자는 소에게 자신이 세워 온 탈출 계획을 조심스레 설명했다. 하지만 사자의 기대와는 달리, 소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그 자리에 서서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이미 투우에서 은퇴한 소에게는 가족이 있었고, 새로운 기억들이 그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자유와 지식을 꿈꾸던 예전의 소가 아니었다.
그런 소를 바라보며 사자가 말했다.
“무, 우리의 이상을 잊은 건 아니겠지. 나는 그날의 오판을 평생 후회하며 살아왔어. 이번에 돌아가면, 인간에게 지지 않는 새로운 세상을 함께 세울 거야.”
1) 닭은 최후의 순간까지 ‘천동설’을 믿는 인간들에게 “닭의 목을 비틀어도 지구는 돌고, 지구가 도는 한 새벽은 반드시 온다.” 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2) 히스파니아(Hispania)는 오늘날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자리한
이베리아 반도를 가리키는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