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문화권의 영향을 받았던 동물들
북아프리카에서 사자를 중심으로 한 동물 본부가 번성하던 무렵, 동쪽 저 멀리 고비 사막에서도 또 하나의 공동체가 태동하고 있었다. 큰뿔 사슴이 살던 시베리아와 맞닿은 이 땅의 문명은, 그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아 한 가지 확고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언젠가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포유류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이었다.
한편, 이들의 영역 남쪽에 있는 지금의 중국 땅에서는 ‘제국’이라는 거대한 질서가 등장하고 있었다. 진시황이 처음으로 동쪽의 대지를 통일해 나라를 세우고, 스스로를 제국의 주인인 ‘황제’라고 자처하기 시작한 것이다. 1) 동물들은 자신들보다 먼저 대업을 이룬 인간들에게 깊은 경계심을 품었고, 더 늦기 전에 자신들 역시 왕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논의 끝에 그들은, 인간들조차 두려워하던 힘과 위엄의 화신, 호랑이를 왕으로 추대하였다. 2)
하지만 대륙의 왕이 된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호랑이는 모든 동물이 행복한 왕국을 만들겠다며 각자의 소원이 무엇인지 물었지만, 동물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자신이 바라는 것만을 내세웠다. 호랑이는 모두의 목소리를 들어주려 애썼지만 요구는 점점 더 커져만 갔고, 결국 그 누구도 완전히 만족시키지 못했다. 게다가 그는 언제든 권좌가 흔들릴 수 있다는 불안에 시달렸다. 동물들이 그를 왕으로 세우긴 했지만, 그 왕위는 급히 마련된 자리였고, 남쪽에서 온 외지의 혈통이었던 그는 끝내 자신의 편이 되어줄 진정한 동물들을 찾지 못했다.
그런 불안 속에서, 호랑이가 동물 세계를 다스리기 위해 본보기로 삼은 존재는 다름 아닌 인간의 황제, 진시황이었다. 호랑이의 눈에 비친 진시황의 통치는 효율 그 자체였다. 진시황은 통일된 화폐와 도량형으로 제국을 하나로 묶었으며, 그의 권위 아래 모인 인간들은 강대한 군대를 조직하고, 힘을 합쳐 만리장성과 같은 건축물을 만들었다. 황제의 권력 아래서 질서 정연하게 성장하는 거대한 나라를 바라보며, 호랑이는 진시황의 통치 배워 동물 세계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호랑이의 포효 아래, 동물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그가 발톱을 보이면 감히 반론을 제기하는 자는 없었다. 이내 동물 문명에 질서가 자리 잡자, 호랑이의 마음속에 예전의 불안과 흔들림은 사라졌다.
그런던 어느 날, 인간 세계에서 놀랍고 흥미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새들의 말에 따르면, 진시황이 마침내 ‘불멸의 세계’를 완성할 방법을 알아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었다. 진시황은 불멸의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실제로 거대한 구조물을 짓고, 그곳에서 함께 살 동물들을 모집하고 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호랑이의 귀가 쫑긋 섰다. 만약 인간들이 불멸의 비밀 알아냈다면, 동물들 또한 그 방법을 알아내야만 진화의 흐름에서 뒤처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호랑이는 곧 진시황을 직접 만나기로 결심했다. 그는 진시황이 ‘땅의 제왕’을 상징하는 호랑이를 데리고 사냥을 다녔다는 이야기를 이미 들어 알고 있었고, 황제가 자신에게 호의적일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또한 진시황이 같이 살기 위해 모집하고 있다는 천산갑, 산양, 낙타 등 진귀한 동물들을 데리고 가 그에게 소개한다면, 분명 그가 자신에게 불멸에 관한 비밀을 들려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1) 진시황은 기원전 221년,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인 ‘진(秦)나라’를 세웠다. 서양에서 부르는 ‘차이나(China)’라는 이름은 바로 진나라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2) 이곳의 동물들은 인간이 아니라 용, 호랑이, 현무, 주작, 네 존재가 세상을 구원하리라는 큰뿔사슴의 예언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현무와 주작, 그리고 용은 모두 상상의 존재였으므로, 왕의 자리는 자연스레 호랑이에게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