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현지 May 26. 2024

언젠가 죽는다고 생각하면 설렜다

첫책 <주머니 인간> 출간, 작가의 말

작년 7월 오십여 군데 투고 끝에 달아실출판사와 계약을 하고 올해 5월 책이 출간됐습니다. 5편에서 시작한 원고가 2월 말 30편의 최종원고가 완성됐고 드디어 책으로  나왔습니다.


<주머니 인간>은 최승호 작가님의 <눈사람 자살 사건>, 전윤호 작가님의 <애완용 고독>과 함께 달아실 출판사의 “철학이 있는 우화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달아실출판사 ’철학이 있는 우화‘ 시리즈

책의 큰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머나먼 옛날, 인간들은 죽음을 얻기 위해 죽음의 의미를 담은 이야기 짓고 그 이야기로 공양탑을 만들어 바쳤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 ‘죽도록’ 해내 고 ‘죽어라’ 부리는 것을 미덕으로 삼으며 죽음을 쉽게 소비하는 인간들에 신은 화가 났죠. 결국 신은 이야기 공양탑을 폭파시켰고 이야기들은 세상 곳곳에 파편물처럼 떨어졌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발굴하여 담은 것이 바로 <주머니 인간>입니다.


“죽음의 신이시여, 삶을 내려주소서. 우리를 죽게 하소서. 죽음으로서 살게 하소서.”


책엔 죽음을 갈구했던 인간들이, 후손들을이 죽음의 의미를 잊지 않지 않도록 지은 이야기들이 수록돼 있죠. 초단편 이야기로 구성된 우화집이고 두껍지 않아 읽기에 어렵지 않지만, 죽음을 주제로 하기에 좀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작가의 말을 싣습니다.


언젠가 죽는다고 생각하면 설렜다. 청소년기 때부터 지금껏 그랬다. 호주머니에 죽음이라는 조약돌을 지니고 산다고 상상하곤 했다. 별다를 일 없는 일상을 살다 주머니에 손을 쓱 넣으면 거기에 ‘나는 죽는다는 사실’이 있다. 그렇게 죽을 운명의 나를 만날 때면 천하무적이 되는 느낌을 받았다. 알기론 죽음은 슬프고 무섭고 그래서 나쁜 것인데, 왜 나는 죽음을 떠올리면 다행이다 싶으면서 희망 찬 기분을 느끼는 것일까. 이해할 수 없는 나를 이해하기 위해 죽음을 생각했다.


언젠가 죽는다.

언제든 죽을 수 있다.

반드시 죽고야 만다.


죽는 게 확실한데 죽음에 대해 아는 게 없다. 이승엔 죽어본 사람이 없으니 내게 죽음을 알려줄 이도 없다. 그러니까 죽음에 대해 내가 알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죽음을 모르니 이 세상에 나라는 존재가 왜 갑자기 나타났는지, 도대체 왜 자라고 늙으면서 삶이란 것을 살아내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알고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죽음과 삶에 대한 알 수 없음, 의미 없음을 깨달으면 그 사람은 무적이 된다. 날 괴롭게, 슬프게 또 가끔은 기쁘게 했던 이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피할 것도 잡을 것도 없는 세상이라니!


호주머니의 조약돌을 매만지며 이야기를 짓고 그림을 그렸다. 작업을 하는 내내 그 어느 때보다 ‘이게 산다는 거구나’ 느꼈다. 설명하기 힘든 이 막연한 느낌이 책에 담겼기를 바란다.


2024년 5월

이현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