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햇살은 언제나 창문을 두드린다
사소한 계획들을 하나씩 실천하며 나름대로 뿌듯한 하루하루를 쌓아가던 중 작은 무력감이 찾아왔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는 듯했지만, 상상과 현실의 차이가 날카롭게 다가왔다. 광고에서 본 “월에 천만 원 벌기”나, 인플루언서가 자랑하는 “몇 개월 만에 고수익 내기”는 현실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방식대로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부자가 된다고 당당히 말했지만, 그 “되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고되고 오래 걸리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01.
더 이상 나를 채찍질하는 상사도 없고, 당장 갚아야 할 빚도 없으니 하루가 조금씩 편해진다. 침대는 나를 안락함으로 유혹하고, 나는 그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낸다. 아무도 나를 재촉하지 않는 삶은 나 자신과의 싸움을 강요한다. 나는 내 안의 게으름과,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기대감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그렇게 침대에 눕고 또 눕다 보니 어느덧 하루가, 일주일이, 그리고 한 달이 흘러갔다.
침대에 머물며 들었던 생각은 언제나 비슷했다.
“굳이 지금 일어나야 하나?”
답은 항상 “조금만 더”였다.
하지만 조금만 더의 결과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를 만들어냈다. 나를 달래듯 안아주는 그곳에서 나는 스스로를 잠식하고 있었다. 게으름 속에서 느꼈던 편안함은, 나중에는 종종 무력감으로 되돌아오곤 했다.
02.
로마 제국의 16대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그의 저서 《명상록》에서 이렇게 말한다.
“끝없이 살 수 있는 것처럼 살지 마라. 죽음이 너를 덮으리라. 네가 살아있고 능력이 있다면, 옳은 길을 가라.”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이 순간은 영원하지 않다.
이 문장은 무겁게 다가오지만, 동시에 나를 깨우는 경종처럼 느껴졌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종착지이기에, 지금 이 순간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아니, 나는 마치 시간이 무한히 주어진 것처럼 살아간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고, 내일이 오면 또다시 미루며 끝없는 안일함 속에 머물기를 반복한다.
매일 아침이 그랬다. 알람이 울리면 이불 속의 따스함에 몸을 맡긴 채 생각했다. ‘조금만 더….’ 그 ‘조금만 더’가 쌓이고 쌓여 결국 하루를 허비하는 게 될지라도 말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조바심이 났다. 해야 할 일을 미루는 동안 내게 주어진 시간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이불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마르쿠스의 말처럼, 이 순간이 유한하다는 것을 자각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깨달았다. 그의 문장은 단지 죽음의 공포를 상기시키는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금의 나를 멈추게 하는 모든 핑계와 나태함에 대한 도전이었다. "옳은 길을 가라"는 그 단순한 문장이 의미하는 바는, 당장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묻는 물음표와도 같았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옳은 길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대단하거나 거창한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이불 속에서 한 발을 내딛는 일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고, 쌓였던 공기를 환기시키며, 하루의 시작을 마주하는 일. 그 사소한 행동 하나가 내가 선택한 옳은 길이었다.
우리는 가끔 옳은 길이란 거대한 성취나, 누구에게나 인정받을 만한 목표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삶은 그런 대단한 일들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삶은 우리가 매 순간 내리는 작은 선택들로 이루어진다. 그 선택이 반복되고 쌓여 우리의 하루, 우리의 일주일, 우리의 삶을 만들어 간다.
마르쿠스의 문장을 마음에 품은 날 아침, 나는 다시 이불 속에 파묻히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내가 살아있다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라는 것을. 침대에서 일어나 커튼을 걷고, 창밖의 하늘을 마주할 때마다 그 진실은 내게 조금 더 명확해졌다.
삶은 영원하지 않다. 하지만 그 유한함이야말로 우리가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오늘 하루, 나는 조금 더 살아있음을 느끼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옳은 길이었다.
03.
그래서 작은 성공을 시각화하기로 했다. 나의 의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도구들을 하나씩 도입했다. 가장 먼저 구매한 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체크리스트였다. 후기에는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가 좋아해요, 우리 아이의 계획을 위해 구매했어요 라는 후기가 가득한 제품이었지만 뭐 어때. 어른도 스스로를 칭찬할 수 있지 않은가. 좋아하는 캐릭터 스티커를 붙여 애정을 더한 뒤 일어나서 이불 정리하기, 물 마시기, 영양제 챙기기 같은 사소한 루틴을 전부 적고 완료했을 때마다 체크를 했다. 그 작은 체크가 주는 만족감이 생각보다 컸다. 스스로를 칭찬하는 일은 부끄럽지만, 그만큼 뿌듯하다.
또한, 일기를 쓰는 방식을 바꾸기로 한다. 단순히 하루의 일과를 기록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날의 기분과 시간별 소감 등으로 내 하루를 구체적으로 기재했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조금씩 가다듬는 과정이었다.
매일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도 나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오늘 하루를 더 나아지게 만드는 힘은 대단한 성취가 아니라, 작은 반복 속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그 작은 변화가 쌓여 어느새 나는 더 나은 내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제는 침대에서 일어나는 그 짧은 순간이 나를 위한 가장 큰 다짐이 되어 간다. 어제와 조금 다르게,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지길 바라며. 이 작은 순간들이 쌓여 나만의 이야기가 되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