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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going Oct 20. 2023

소외감

왜 너는! 왜 나만?

나는 아토피로 태어나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위궤양 치료를 받기 시작했는데 이후로 과민성 대장염과 편두통이 찾아왔고 이명이 시작되더니… 


신경성-이라고 붙은 질병은 거의 다 만나본 것 같다. 


어릴 때는 뭐 '가렵다' 말고는 별 불편함을 못 느꼈는데 자라면서 밀가루 음식. 그러니까 떡볶이, 라면, 만두 등의 분식을 소화시키지 못하는(위경련과 함께 계속 트림을 하고 귀가 안 들리고 비틀거렸다) 위장병과 흉터와 진물 때문에 반팔 반바지를 입을 수 없는 아토피로 살짝 우그러지고 고단한 사춘기를 보냈다.


그중에서도 과민성 대장염은 단연 으뜸이었다. 

풋풋한 여고생 시절 짝사랑 그 아이가 나타나면 아니, 곧 도착한다는 이야기만 들어도 꽈르릉꽈르릉 하여 화장실로 직행. 결국 첫사랑 그 아이가 나를 찾아와 '애들 다 있는 앞에서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내는 이유가 뭐냐.' '내가 뭘 어쨌길래 이렇게 까지 하냐'며 따지기에 이르렀고 나는 대답하는 대신 또 아랫배를 움켜쥐고 화장실로 뛰어야 했다는 구슬픈 그 이야기.


처절하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중증질환자들의 일상에 비하면 나 정도는 파인땡큐급이라는 걸 알고 있다. 입맛 대로 야식을 먹고 베개에 머리가 닿자마자 잠드는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 보다, 이분들에 대한 죄송함이 나를 더 주눅 들게 한다. 그냥 조용히 있자. 분위기 망치지 말자. 그렇게 된다. 


가끔 비슷한 얼굴을 만나면 조용히 알아본다. 찡그림을 가리기 위해 애써 웃는 얼굴. 가만히 팔을 살짝 쓸어준다. 드러눕고 싶지? 나도 그래. 비밀 신호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라는 책에서 통증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할 수 있다고 허리통증을 안고 사는 저자 데이비드 실즈가 말했다. 


쉼표가 없는 허리병. 앉아 있어도 서 있어도 누워 있어도 통증이 온단다. 아주 작은 움직임에도, 핸들을 돌리거나 커피잔만 들어도 헉 소리가 날 만큼 아프단다. 친구들과 만나 맥주라도 한 잔 하면서 웃고 떠들고 오면 그 이후로 며칠간은 더 심한 통증을 각오해야 한단다. 


그런 그가 십 년 만에 만난 친구들과 4시간 동안 농구를 했다고 한다. 내 인생의 마지막 농구라고 생각하고 미친 듯 원 없이 뛰었단다. 이후로 2달간 침대에 누워 운신을 못 했다지. 


그렇게 살면 된다고 했다. 어차피 아픈데 하고 싶은 거 하고 아프면 덜 억울하다는 거다. 


저자는 좀 무디어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지난 40년간 '걸어 다니는 면도날'로 살았으니 앞으로의 40년은 조금 모자라게 살아도 되지 않겠냐고 한다.


“둔감력은 무신경이 아닌 복원력에 가깝습니다.” 

깊숙이 확 와닿았다. 


나는 음식을 볼 때마다 내가 지금 이것을 소화할 수 있는 상태인지, 먹는다면 얼마큼 먹어야 할지 고민했다. 매일 자기 전에 온몸 구석구석의 근육을 꼼꼼하게 풀었다. 편두통을 피하기 위해 지나치게 조명이 밝은 곳이나 비닐포장 된 물건이 매대에 쌓여 있는 가게, 방금 인테리어공사를 마친 건물에는 가지 않았다. 앉거나 누울 때마다 눌리면 신경통이 생기는 몇 개의 포인트에 아무것도 닿지 않도록 조심했다.

먹고, 자고, 싸고, 씻고, 움직이는 기본적인 생활 자체만으로도 늘 벅차다며 허덕였다. 한심하게.


그러네, 내가 무슨 지구를 지키는 것도 아니고. 



뭐 한 거야?

왜 나를 가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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