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 결정권
혹시나 해서 장기기증을 신청했었다.
20년쯤 되었던가? 김수환 추기경 돌아가셨을 때 명동 성당 앞에 갔다가 분위기에 휩쓸려 신청서를 작성했다.
한참 뒤에 주민등록증에 붙이는 스티커가 우편으로 도착했다. 생각보다 많이 허술해 보이는 스티커를 꼭꼭 눌러 붙이며 뭔가 큰 일을 한 것 같은 뿌듯함을 느꼈다. 자려고 누웠는데 문득 주민등록증이 내 몸뚱이랑 항상 붙어있는 건 아닌데 저 스티커로 될까? 걱정되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 먹으면서 가족들에게 이야기했더니 너무도 간단하게 '우리는 싸인 안 할 거야.'라고 답해서 허탈했다. 몸에 '장기기증, 시신기증 해주세요.' 거대한 문신을 새겨 놓아도 남은 가족이 허락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법이 그렇다.
"우리가 미쳤냐? 죽은 것도 괴로워 죽겠는데 잘라가라고 하게? 절대로 안 할 거야. 스티커 백장을 붙여봐라 우리가 싸인하나."
거듭 강조하는 가족들을 보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참으로 난감했다.
그러고 보니 주민등록증 재발급받은 것 같은데?!
온 집을 다 뒤져봐도 주민등록증이 없다.
이런, 언제 마지막으로 봤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