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었다면
장례식을 해야지.
내가 끝났다는 걸 공식적으로 알려야 하니까.
대화하다가 내가 언급되었을 때, '죽었잖아' 한 500번쯤 얘기해도 '뭐? 언제?' 이러는 사람들이 최후의 그 순간까지 있을 것이다. 위로를 한다, 위로를 해달라 이런 상실의 절차들도 반복되겠지. 그처럼 번거로운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부고 행사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 같이 모여 ‘전지현 죽었다!’ 외쳐 보자.
자. 나는 죽었다.
그럼 내 시체는 어떻게 될까. 태우겠지?
그럼 어떻게? 병원에서 발급하는 사망진단서가 있어야 한다.
사망진단서를 가지고 사망신고를 하면 시체를 처리할 수 있다. 법적으로 사망한 지 24시간이 지나지 않은 시체는 화장할 수 없으니 하루는 기다려야 한다.
화장터.
가마에 넣고 정말 싸그리 태운다. 꺼내보면 흰색에 가까운 회색의 가루가 되어 있다. 다 타지 않고 남은 뼈(나는 골밀도가 높기 때문에 아마 허벅지뼈 같은 건 좀 남을 수도 있을 것 같다)가 있으면 직원분이 절구로 갈아준다(;;) 빗자루로 싹싹 쓸어 담은 재를 전달한 유골함에 담아 주는데 거짓말 안 하고 한참을 이동해서 납골당 보관함에 넣을 때 까지도 뜨끈뜨끈하다.
유골함 가격을 알아봤더니 묻으면 생분해된다는 옥수수나 종이로 만든 5만 원 미만부터 순금과 보석으로 만든 차 한 대 값까지 천차만별이었다. 집 한 채 값 하는 유골함도 분명 존재할 것 같다.
태우고 나면 문제의 납골당으로 가거나 자연장을 해야한다.
자연장. 이름이 예쁘다. 자연장은 유골을 나무나 화초 잔디에 묻는 건데 아마 뿌리 주변이어야 하는 것 같다. 묻을 때는 깊이 30cm 이상 파야하고 용기에 담아 묻을 수 있지만 용기의 재질이 생화학적으로 분해 가능해야 한다. 그냥 유골을 흙과 섞어 묻어도 된다.
묻고 나서 여기 묻었다고 신고를 해야 하기 때문에(거기 파면 유골함 나와.라는 기록이 필요하단다) 내 땅이 있는 게 아니라면 약간 복잡해진다. 신고를 안 하고 마음대로 묻으면 최대 징역 1년 혹은 1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그런데 알아보니 자연장이라고 해 봤자 법대로 하려면 무덤이 볼록하나 편편하냐 비석이 있냐 없냐의 차이 말고는 일반 매장과 다를 바 없다.
심지어 수목장도, 저게 자라기는 할까 싶은 아파트 화단 사이즈 사철나무가 비석대신 어색하고 촘촘하게 심허딘 곳이 대부분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것 같이 듬직한 나무 밑에 유골을 묻으려면 수목장은 여럿을 묻는데도 천만 원 돈이 든다(벌금이랑 뭐가 다르죠?).
결국 요즘 다들 납골당에 가는 이유는 500만 원 정도의 비용으로 20년 정도의 일정 기간 사용료(이것도 전세인가?)와 관리비(밀리면 유골함을 빼니까 반전세?)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어 생각해 보니 보증금은 돌려받는 돈이 아니니 전세도 아니네).
TV나 영화에 자주 나오는 유골 뿌리기는 산골장이라고 하는데 법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지만 ‘다른 이에게 혐오감을 주는 것’이 죄가 되므로 국립공원이랑 상수도 보호구역 같이 상식적으로 사람 뼛가루가 있으면 안 될 곳을 뺀 곳에서 남들 모르게 하면 불법은 아니다. 바다도 해안 20km 이상 들어가면 된다 하는데 그것도 아직은 법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지 않으려면 일단 ‘나 지금 시체가루 뿌리고 있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드러내지 않으면 되는데 뭐, 상복 안 입고 대성통곡만 안 하면 누군들 신경 쓰랴 싶다.
떡밥에 섞어서 물고기 밥으로 주거나 곡물과 섞어서 산짐승 주먹밥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나는 펄펄 뿌리는 것보다는 산짐승 주먹밥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아… 길냥이 사료랑 섞는 것도 가능 하겠…
개, 고양이는 죽으면 보석으로 만들어주던데 내 유골로 만든 엔젤스톤은... 너무 나갔다. 흠흠
나는 곡물이랑 잘 버무려진 산짐승 주먹밥이 가장 마음에 든다. 내가 선택한다고 그대로 이루어질 가능성은 별로 없지만. 그냥 참고하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