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asygoing Oct 20. 2023

묏자리를 보러 갔다

시장 조사

공동묘지 아니고 추모공원. 영어로 메모리얼파크. 

납골당 아니고 봉안당. 그렇게 바뀌어 있었다. 세련되게


일단 근방에서 가장 비싸다고 소문난 고품격 메모리얼 팤에 가 보았다.


리플릿을 가지러 갔더니 사무실에 앉아 있던 아저씨가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재빠르게 뛰어나왔다. 

백화점 고객서비스의 그것과는 결이 다른 정중함으로 차를 권하는데 거부할 수가 없었다. 지도를 보며 가격을 물어봤더니 천천히 꼼꼼하게 설명해 주고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집안에 위중하신 분이 계신가 봐요?" 

'아뇨. 제 묏자리 알아보러 왔는데요?'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리고 얼른 내 주변에 위중하신 분이 계신지 스캔해 봤는데 다들 건강하셔서 잠시 흐뭇.

"위중하신 분은 없으시고, 선산에 계신 분이…"

"아.. 몇 분?" 

응? 왠 몇 분? 

"저희는 이런 것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저씨가 서류를 내밀었다.


오! 유골함 24개를 한 곳에! 

내 눈이 동그래지는 것을 포착한 아저씨는 슬픔의 얼굴을 풀지 않은 채로 요즘엔 다들 미리 준비해 두고 편안하게 생활하시는 추세라 좋은 자리가 거의 남지 않았다는 마감 임박 멘트로 굳히기에 들어갔다. 

머릿속으로 유골함이 될 24명을 선발하는 동안 아저씨는 조용히 내가 들고 있던 리플릿 위에 명함을 끼우며 상담을 마무리시켰다.


"일이 발생한다면 언제 어떻게 연락드리면 될까요?" 

"화장장 예약 되시면 그때 전화 주시면 됩니다. 어느 화장장 몇 시인지만 알려주시면 저희가 다 준비해 놓고 여기 관리동 앞에 나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마음의 결정이 되시면 여기 이 번호로 저한테 바로 연락 주세요. 제가 기억하고 있다가 바로 도와드리겠습니다."


슬픈 얼굴의 아저씨는 사무실 문 밖까지 나와서 폴더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24명 선발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패자부활전을 비롯한 치열한 접전이 예상된다.

아원츄픽미업


팤-과 공동묘지. 외관의 차이가 가격의 차이였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근방에서) 가장 저렴한 곳은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 무덤과 비석이 촘촘하게 박혀있고 저기 정말 차가 올라갈 수 있을까 싶은 경사도의 비좁은 콘크리트 도로가 마구 흘러내린 토사처럼 그어져 있었다. 


관리비 납부 기간이라고 플래카드가 걸려있길래 직원분에게 물었다. 관리비 미납 칸은 유골함을 빼고 '관리실 문의 바람'이라고 쓴 A4용지로 안치단을 가려놓는다. 2-3년의 유예기간이 지나면 한 곳에 모아 묻는단다. 납골당 안치 5년 후부터 2년마다 관리비 납부가 시작되는데 그때 연락이 안 되는 경우가 30%가 넘는다고 했다. 납골당이 대중화된 지 얼마 안 되어서 정확한 통계는 못 내겠지만 어찌 되었건 납골당에 회전율이 구해진다는 건 의외의 사실이었다. 


알아보니 나라에서 세금으로 운영하는 시립 납골당도 있는데 거긴 기본 10년 계약에 추가 계약 횟수를 2, 3회로 제한하고 있었다. 임대주택이랑 알고리즘이 같은데? LH에서 운영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


나는 불교 신자가 아니라 자세히는 모르지만 납골당형식으로 운영되는 절이 있다고 한다. 유골함은 그곳에 보관하고 원하는 절에 위패를 따로 모셔 둘 수 있는데 날짜를 정해 비용을 지불하면 스님 주재 제사도 진행해준다고 한다. 가격은 기본적으로 알아서-이지만 암묵적인 액수가 따로 있다고 한다. 



성묘고 뭐고

이제 죽음은 슬픔이 끝나면 끝나게 되었다.

이전 14화 알아보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