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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going Oct 20. 2023

슬픔을 잊고 있었네

죽음이 싫은 이유

메모리얼팤에서 가장 비싼 유러피안 스타일 묏자리를 보러 갔다.


비석을 읽어봤다(글자가 있으면 읽어야 하는 병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가지고 있다). 

그 중 인상 깊었던 몇 문장.


'니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려와 -아빠-'

20대 여자의 무덤이었다. 해사하게 웃고있는 사진 아래로 아빠와 언니들의 추도문이 새겨져 있었다. 아프다 죽었나 보다. ‘아려와’ 부분에서 내 가슴도 아렸다. 아빠와 언니들의 애처로움이 단 한 단어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누나도 당신도 지키지 못해 미안해 내가 얼른 갈게’

깜짝 놀랐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봤더니 누나와 아내가 합장되어 있는데 사망 시점 차이는 17년. 최근 돌아가신 아내 분은 60대. 

이 아저씨의 죄책감은 어디서 왔을까. 감을 잡을 수 없어 심란했다. 최근 50년간의 각종 사건 사고들을 떠올려 보았는데 나의 비루한 상상력은 국가보안법에 발이 묶여 더 이상 확장되지 못했다. 


'바쁜데 뭐 하러 왔니 고맙다.' 라고 써 놓은 비석도 있었고 'I’m OK'(이 문장은 정말 한 세 번쯤 돌아봤다. 놀라서)도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나를 슬프게 했던 것은 자식의 비석에 비바람이 들지 않도록 덮개를 만들어 놓거나 밤에 무섭지 말라고 묘지 양 옆에 작은 태양광 등을 설치해 놓은 엄마 아빠들의 너무나 너무나 무용한 행동들이었다. 


아니 묻혀 있는 건 뼛가루 잖아 근데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거야! 생각하려고 애썼지만 이미 늦었다. 눈물이 줄줄 흘렀다. 장난감 사이에 손으로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고 쓴 카드가 놓여있는 비석 앞에서는 정말 엉엉 울었다. 


봉안당(편안하게 모시는 곳)이라더니 밀봉당이다. 두고두고 잊지 않으려고 슬픔을 박제해 놓았다. 잔인한 사람들 같으니라구!


투명한 안치단은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이었다. 유골함에 새겨진 출생-사망 날짜, 사진, 손편지, 핸드폰, 손목시계, 안경 같은 소지품은 물론 믹스커피, 박카스, 술, 담배, 스킨이나 향수, 사원증 같은 것들이 기본으로 들어있었고 죽은 이가 좋아하던 취미나 음식들이 미니어쳐로 장식되어 있는 경우도 많았다. 클레이로 만든 것 같은 미니어쳐들의 완성도가 지나치게 일정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 봤더니 와. 납골당 꾸미기 카테고리가 따로 있었다. 


지나치게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일까? 뭔가 경쟁적인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하고… 죽었다기 보다는 그냥 외계인이 쏜 빔에 맞아서 항아리로 변해버린 사람들이 정육면체 공간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는 기묘함을 느꼈다. 


나같은 유리멘탈들을 타겟으로 하는 봉안'담'이라는 상품도 성황리에 판매 중이다. 이건 규격화된 무채색 블럭으로 쌓아올린 돌담 안쪽에 항아리를 넣는 형식인데 명패도 규격화 되어 있어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미니멀리즘이 적용되었달까? 상실을 객관화 시켜 줄 수 있겠다는 인상을 받았다. 주로 야외에 위치하고 있어 오래 머물기도 불편한 점이 오히려 장점이 되는 것 같다. 


솔직히 슬펐다. 


내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남겨진 모습은 마음이 많이 아팠다. 


어릴때, 어른들은 어쩜 저렇게 한결같이 무심하고 차가운가 궁금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뒤로 갈 수록 더 큰 상실이 온다. 감수성을 지워내지 않으면 슬픔이 쌓여 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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