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무엇.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by easygoing

코로나 3단계가 임박했다는 뉴스를 듣고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대출 권수 무제한! 대출 기간 3주! 막퍼드려요!


사서 선생님들의 응원에 힘입어, 책가방 끝까지 꽉꽉 채워 빌려왔다.

집에서 준비해 간 리스트는 5권뿐이었지만

그야말로 보이는 대로 막 집다 보니 몇 년간 도서관 정 중앙에 놓여있던 핑크 책이 눈에 들어왔다.

아, 근데 이거 들고 읽기 힘들겠네요 했더니 도서관에서 독서대를 같이 빌려준다고 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스티븐 핑커


표지에 아기 천사가 팍스(PAX:평화)라고 써 들고 빙글빙글 날아다닌다.


독서대에 딱 놓고 확 펼쳤는데 1장을 읽고 하루를 쉬었다.

구역질이 났다.


총 10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어금니 꽉 깨물고 역자 후기까지 읽어봤지만

내 본성의 선한 천사는 끝까지 등장하지 않았다.


길어서 힘들었지만 내용 때문에 더 힘들었다.


마침내 다 읽고, 책장을 덮은 후 망연자실하다가 표지를 다시 봤더니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라는 소제목이...


그렇다.

이 책은 선사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인간의 폭력에 대한 기록과 증거들을 총망라하고 있다.

(하지만, 폭력성과 싸우는 인간 또한 등장하지 않는다!)


내가 3-4학년쯤 되었을 때, 학교에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반공 영화를 영화관에서 관람시켰는데

괴뢰군이 이승복 어린이를 포함한 일가족을 돌로 머리를 깨고 칼로 입을 찢고 그런 장면이 생생하게 나왔다.

그게 정말 큰 트라우마가 돼서 지금도 군복만 보면 숨이 잘 안 쉬어지고 구토가 난다.


이 책은 그것보다 훠얼-씬 더 과격하다.


13페이지에서 서문이 시작되고 1180페이지에서 마무리되는데

그 뒤로 '주'가 1181에서 1252페이지까지

참고문헌이 1253에서 1322페이지까지

역자후기가 1323에서 1328페이지까지

(한글 색인) 찾아보기가 1329에서 1406페이지까지

오탈자 체크의 지옥이 펼쳐진다.


김명남 번역가님과 편집자의 눈이 멀지 않았을까 싶은

읽는 것만으로도 피땀 눈물이 베어 나오는 내 평생 본 최고난도 작업이었다.



스티븐 핑커

제목으로 전 세계를 낚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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