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말고 집

그냥 '집'이 주는 바닐라향

by easygoing

전세금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전화를 받을 때마다 훌렁 차를 몰고 나가 서울에서 2시간 거리 안쪽의 집들을 다 뒤지고는 몸과 마음의 허기를 안고 귀가하기를 수십 차례. 보고 온 집들의 장단점을 가지런히 늘어놓고 나와 내 가족에게 어떤 집이 맞을까 이리저리 맞춰보며 상상의 나래를 펴고 또 펴다가 결국 30년짜리 주택담보대출로 내 집 마련을 저질렀다. 남편과 나는 한동안 밤에 잠을 잘 못 잤는데, 이 빚은 너무도 거대하므로 깔려 죽지 않기 위해 월 납입금에만 집중하기로 합의(?) 했다.


고등학생 때 미대와 건축학과 진학을 꿈꿨던 나는(내 전공은 화학이 되었다) 인테리어 전문가가 되고 싶어(나는 카피라이터가 되었다) 어찌어찌하여 현장 구경을 간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당장, 아토피 환자는 인테리어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우쳤다.


푸념을 자꾸 늘어놓는 이유는 이 책 때문이다.


주거해부도감/마스다 스스무


2012년에 1쇄, 2018년 14쇄. 단정하면서 아기자기한 표지 디자인, 별색 내지와 도톰하고 폭신한 종이까지. 무섭게 내 스타일이다. [쾌락의 청소]의 궁극적 목표 그 자체랄까. 내용은 더 대단하다. 내가 집에 대해 궁금해했던 내용들이 거의 다 들어있다(주로 들었던 대답은 '넌 왜 그런 걸 궁금해하냐?'였다). 숫자가 상세하다는 뜻이다.


다이닝룸을 예로 들면, 식탁의 크기에 따라 필요로 되는 공간의 면적. 동선에 따른 최소한의 간격. 식탁에 맞는 의자의 높이. 앉았을 때 허벅지와 식탁 사이 공간의 높이... 이런 내용을 일러스트와 함께 일본인 특유의 상냥하고 예의 바른 어조로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다(심지어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 책을 통해 은혜를 갚고 싶습니다.'이다).


빌릴 때는 이런 책인 줄 모르고 그저 '집', '도감' 두 단어에 홀딱 집어왔는데, 소장을 위해 구입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미국의 시체 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