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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going Feb 24. 2022

불면증, 도움이 된 방법

누군가에게도 효과가 있기를

 불면증이 시작된 것은 사춘기 때.


 잠이 드는 데 3시간 이상 걸렸고 거의 매일 가위에 눌렸으며 하루 종일 생생할 정도로 꿈을 심하게 꿨다. 서른이 넘어 우울증 진단을 받았는데 되짚어보니 우울증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항상 3시가 넘어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당연히 아침에 못 일어났다. 6시 반쯤 일어나 7시에 학교에 가면 하루 종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는데 고등학교 때는 6월에서 10월까지를 제외하고는 등교 후 그대로 쓰러져 5교시 후 모든 책걸상을 앞뒤로 밀고 시행하는 대청소 시간에 겨우 일어나 혼자 점심을 먹었다. 겨울이 시작될 때는 청소 시간에도 못 일어나서 애들이 내 책상을 남겨두고 청소를 했다. 항상 반에 꼭 한 명씩 있는 '자는 애'가 바로 나였다.


 집에서는 무지막지하게 게으른 년으로 아침부터 집안 분위기를 망치는 골칫덩어리였는데 아무튼 여러 가지로 힘들었다.


 기적처럼! 학력고사가 수능으로 바뀌면서 가진 건 오로지 문해력뿐이던 내가 대학생이 되었다.


 1, 2학년 때는 평일에는 그냥 아예 잠을 안 자는 걸로 받아들이고 주말에 17시간씩 잤다. 그래도 반쯤 깨어있고 꿈을 계속 꾸며 가위눌리는 건 멈춰지지 않았다. 항상 수면에 대한 부채감이 있었다. 잠을 자고 싶다. 푹 자고 싶다. 쉬고 싶다. 계속 반복되다 보니 아침에 눈을 뜨면 눈물부터 났다. 왜 깨어나야 하는 건가, 왜 나는 살아있는 건가, 오늘을 또 어떻게 견뎌야 하나 절망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잘 때? 이 즈음부터 술을 많이 마셨다. 술을 끝까지 마시지 않으면 오히려 술이 깰 때까지 잠을 잘 수 없어서 더 괴롭기 때문에 쓰러질 때까지 마셨다. 이십 대 때니까 몸이 버텼었는데 이십 대 후반에 가서는 이도 쉽지 않아 져서 잠이 안 온다는 괴로움에 코가 막혀 숨을 쉴 수 없을 때까지 울다가 잠이 들고 깨서 또 우는 날들이 반복됐다.


 이때까지도 이것이 병이라는 생각을 못 했다. 그냥 내 성격이 나빠서 그런 건 줄 알았다.


 우울증 진단을 받은 후 상황을 깨닫고 불면증 완치를 목표로 투쟁을 시작했다.


내가 권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이건 어디까지나 나에게 적합했던 방법이기 때문에 모두에게 효과가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몰라 용기를 내서 정리했다.




1. 수면제를 먹는다.


 우울증 치료가 시작되자 정신과에서 수면제를 처방해 줬다.

 수면제는 잠이 드는 것을 도와주는 약과 중간에 깬 것을 모르게 해주는 약으로 나뉘는데 나는 돌쟁이 엄마라 중간에 못 깨면 안 되니 잠이 드는 것을 도와주는 약을 처방해 주겠다고 의사가 말했다. 우울증 약을 찾아가는 과정이 상당히 오래 걸렸고 그동안 어쩔 수 없이 계속 몽롱한 상태로 지내야 했었는데 아이들 육아 때문에 밤에는 약한 수면유도제를 먹고 낮에는 각성제를 먹는 생활을 4~5년 정도 했다.


 수면 유도제를 먹으면 내가 먹는 약 기준으로 딱 30~40분 후에 사르륵 잠이 오는데 그때를 놓치면 그날은 잠을 못잤다. 큰 아이는 원체 잠이 없게 태어나서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타입이고 작은 아이는 컨디션이 아주 좋은 경우를 빼고는 잠드는 것이 힘들고 계속 깨고 꿈도 많이 꾸는 타입이다. 아이들이 잠을 자는 시간을 예측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솔직히 깨지 않고 4시간 이상 잘 수 있게 된 건 아주 최근의 일이다.


 나는 졸00이 잘 맞았었다. 가장 부작용이 덜했던 약이지만 하루 종일 심한 두통을 견뎌야 했다. 시어머니가 즐겨(?) 드시는 수면제 부작용은 밤에 일어나 뭔가 먹는 거다. 아주 멀쩡하게 라면을 끓이고 밥을 데우고 이야기도 하시는데 전혀 기억을 못 하신다. 그런데 그냥 그 약을 계속 드신다. 별로 안 불편하단다. 소화도 잘 되고.


 몸을 움직여라, 운동을 해라 정도의 조언은 웃어넘길 수 있었다. 잠이 안 오면 일어나서 일을 해라, 누워서 핸드폰 보지 말아라, 어려운 책을 읽거나 지루한 다큐멘터리를 봐라 같은 말들도 웃어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덜 피곤해서 그렇다, 팔자가 좋아서 그렇다는 이야기들은(생각 보다 많은 사람들이 직접 또는 돌려서 이렇게 말한다) 상처를 주고 사람을 피하게 만들었다.


  불면증으로 인한 가장 큰 고통이 바로 저 '죄책감'과 '무력감'이었다. 내 잘못이다. 하루를 못 자고 이틀을 못 자고 삼일 정도 되면 고통이 시작된다. 내가 충분히 열심히 살지 않았다. 오늘 하루 나는 내 에너지를 다 쓰지 않았다. 의심이 시작되면 내 존재가 무너진다.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결론이 난다. 일주일이 넘어가면 무얼 해도 불안하다. 피곤한데 피곤하다고 말을 할 수 없다. 잠이 안 오니까 피곤한 게 아니다. 공포감이 커져서 더 잠이 안 온다. 해가 뜨면 비참해진다.


 약 먹지 마라 습관 된다. 나약하게.

 그런 말 듣지 말고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기를 권한다. 약을 먹고 잠이 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맞는 약을 찾아야 한다. 내게 가장 부작용이 덜하거나 견딜만 한 부작용을 가진 약을 찾아내야 한다. 일단 하루 자고 나면 충만감이 온다. 안심이 되고 든든해진다. 이틀을 자고 나면 아침에 행복해서 눈물이 난다. 삼 일째는 슬슬 약발이 떨어지는 것 같고 처음처럼 푹 잔 느낌이 아니어서 조금 불안해진다. 복용량을 늘리면 완전 푹- 잘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된다. 하지만 내 경험상 약을 늘리면 잠이 아니라 부작용이 깊어진다. 감기약 두 배로 먹는다고 2배속으로 낫는 게 아니니까.


 일단 한 3일 자고 나면 4일째는 약 없이 살짝 잘 수 있다. 살짝이지만 잘 수 있다. 그때부터는 두 번째 방법




2. 잠자리를 찾는다.


 나의 경우 집이 문제였다. 결혼 전에는 공부 못해, 게을러, 성격 나빠, 계속 사고 쳐, 능력 없어. 매일 모두를 화나게 하는데 나는 그게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벌어진 일인지 원인도 결과도 알 수 없다는 딜레마가 있었다. 결혼 후에는 집이 더 괴로웠다. 밤에 침대에 누우면 설거지와 내일 식사 준비, 청소, 빨래, 육아 마침내 돈 걱정. 오늘도 끝내지 못했고 내일도 끝내지 못할 일들로 천정이 무너질 것 같았다. 쇼파, 놀이매트, 아이들 옆.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잠을 청했는데 어느 날 하지 불안증으로 바닥에 누워 침대에 다리를 올리고 있다가 마비가 와서 잠이 들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맨바닥. 이불이나 베개 없이. 방과 방 사이에서. 거기였다. 만세! 추우면 외투를 입고 맨바닥에 누워 잤다. 금방 잠이 들었다. 우리 엄마는 여행을 가면 꿀잠을 주무신다. 집이 아닌 곳. 나는 이제 왜 그런지 안다. 집이 쉬는 곳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일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시시포스의 현현이다. 어제도 침대에 다리를 올리고 바닥에 누워 잠에 시동을 걸고 새벽에 침대로 올라가 아침까지 잤다. 맨바닥에서 몇 시간씩 자다가 신경이 눌려서 고생을 몇 번 하고는 잠을 잤다-는 느낌이 오면 푹신한 곳으로 옮긴다. 예전에 어떤 드라마에서 한겨울에도 마루에서 자는 사람, 욕조에서 자는 사람이 나왔는데 남 보기에는 좀 불편해도 적극적으로 잠잘 수 있는 장소를 찾아낸 것이 멋지다 생각한다(드라마지만). 하나도 안 이상하다. 잠은 아주 사적인 영역이다. 남들은 무슨. 오로지 나만 생각해야 한다. 나는 이 상태로 대만족 하며 살고 있다. 어쨌든 잤으니까 남 앞에서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거다.




3. 마사지를 받는다.


 정형외과에 물리치료를 받으러 가거나 한의원에 가면 가끔 큰 찜질팩을 베개 아래쪽에 놓아주는데 스르륵 잠이 올 때가 있었다. 집에서 똑같이 해봤는데 안돼서 실망했다. 그런데 피부과에서 여드름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거기만 가면 잠이 들어서는 내 코 고는 소리에 놀라 깬다는 것을 깨달았다. 5분? 10분? 정말 잘 잤다. 그것 때문에 무리해서 피부과 쿠폰을 끊을 정도로 꿀잠이었다. 관리사의 손가락이 얼굴에 닿으면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했다. 와, 정말 일어나기 싫었다. 관련 정보를 많이 뒤져봤다. 결론이 났다. 마사지. 나는 모든 치유는 마사지로 귀결된다고 주장한다. 마사지는 몸과 마음의 긴장을 물리적으로 풀어준다. 드라마에 부잣집 사모님 캐릭터가 등장하면 마사지받는 장면이 빠지지 않는 이유다. 나는 돈 많이 벌어서 정기적으로 마사지받는 사람이 되는 게 인생 목표다. 손가락으로 온몸의 결을 하나하나 펴주는 것은 힐링 그 자체다. 우울증에도 최고의 효과를 보여준다. 타인의 손이 내 몸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면 내가 살아있는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고 그동안 없는 취급 한 것에 미안해지고 안쓰러워지면서 잘해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몸에 긴장이 풀리면 잠이 진짜 잘 온다. 하지만 옆 사람이나 가족에게 부탁하면 안 된다. 실력을 떠나서 상대방이 힘들다 손 아프다 생색을 내도, 내지 않아도 마음이 불편해진다. 나는 마사지 볼, 폼롤러, 요가링, 땅콩볼 모두 동원해서 잘 해결하고 있다.


 마사지의 핵심은 압력 조절이다. 아파도 참으세요~ 하는 건 마사지가 아니라 재활치료다. 이완되는 게 마사지다.




4. 따뜻하게 한다.


 셀프 이완 법이다. 서양 애들이 그렇게 차를 마셔대는 건 그들 나름 화가 많아서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내 생각이다. 따뜻한 물로 천천히 꼼꼼하게 손을 씻는 것도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응어리가 풀린다. 나는 커피 말고 차를 마시는 걸 더 권한다. 아로마 때문이다. 유자차 생강차 레몬차를 기본으로 각종 허브차를 돌려가면서 마시는데(지금은 무말랭이 차에 빠져있다) 평소에 맡을 수 없던 새로운 향기를 맡으면 숙면자들의 세계로 순간 이동하는 기분이 든다. 이게 바로 리프레시. 잠 잘 자는 프레시로 돌아가랐! 조용히 혼자 어쩔 땐 숨어서 몰래 따뜻한 잔을 두 손으로 쥐고 호록 호록 향과 온기를 온몸으로 흡수한다. 커피는 향이 익숙해서 효과가 덜한데 가끔씩 홀빈을 조금 사다가 정성껏 갈아서 내려마시면 그것도 특별한 시간을 준다. 짧으면 1분, 길면 4분의 여정이지만 적어도 목덜미랑 손가락의 긴장은 조금 풀린다.


 본격적으로는 탕 목욕이 있다. 샤워는 물이 닿는 부분과 닿지 않는 부분이 있어 충만감이 적다. 가정집 욕조에서는 물이 너무 빨리 식는다. 일단 집인 것도 문제다. 이거 치우는 일이 남아있으니까. 내가 얼마 어치의 물을 쓴 건지 불안하니까. 큰 대중탕에 들어가 눈을 감으면 마사지만큼은 아니지만 근육의 긴장이 풀린다. 그리고 내장도 풀린다. 딱딱하던 뱃속이 편안해지고 위와 식도의 통증도 가라앉는다. 온몸이 같은 온도로 감싸 지면 왠지 모르지만 안전하다는 기분이 들면서 어깨가 편하게 내려간다. 나는 거의 매일 저녁식사를 차려놓고 목욕탕에 가는데 오늘도 하루가 끝났다(전혀 안 끝났지만). 이제 긴장을 풀어도 된다. 그런 주문을 걸어준다. 집에 돌아와서 새 옷으로 갈아입고 모든 것을 최대한 내일로 미룬다. 그렇다 나는 저녁 8시부터 5시간에 걸쳐 잘 준비를 한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든 것이 완벽하게 진행되는 날이 있는데 그런 날은 잠들기 전 불안함이 매우 적다. 또 못 자면 어떡하나- 걱정이 돼도 주어진 하루를 잘 끝낸 날이 있다는 것이 만족감을 준다. 오늘 못 자도 지난번처럼 잘 잘 수 있는 그날이 또 올 거라는 확신이 든다. 나는 머리와 몸통이 연결되는 부분 그러니까 뒤통수와 목, 어깨가 굳어있지 않은지 자주 확인한다. 자기 전에 그 부분 만이라도 신경 써서 풀어주고 온찜질을 하면 잠을 자는데 큰 도움이 된다.



 오늘도 일관되게 

 두서없이 엉뚱한 소리들을 늘어놓았지만


 불면증이 어떤 것인지 '아이고 나도 요즘 잠이 안 와~'라고 말하는 숙면자들은 모른다. 어떤 불면증은 치료가 된다. 불면증이 어떤 병의 증상인 경우 병을 치료하면 낫는다. 브라보! 나는 안 낫는다. 그냥 안고 산다. 10년도 넘게 정말 죽기 살기로 노력한 결과(뭘 했냐 물어보면 딱히 할 말은 없다는 게 좀 우습지만) 이제는 하루 4시간을 깨지 않고 자는 날이 많다(나는 정말 4시간이 간절한 목표였는데 이루어졌다). 물론 졸림이 부작용인 취침 약을 먹고 있긴 하다. 하하하. 하지만 당신도 잘 수 있다. 못 자는 날보다 자는 날이 더 많아질 수 있다.


 어디선가 수면 마취제가 3일은 푹 잔 것 같은 개운함을 준다는 소문을 듣고 건강검진 가서 엄청 두근두근했는데 의식을 잃었었다는 느낌만 들고 몸이 가볍지 않아서 아주 섭섭했다. 이제는 헛소리하는 사람들 이야기 때문에 수면마취가 무섭기까지 하다. 나 쓰레기면 어떡해. 진정팩을 얹고 누워있는 피부관리실 마사지 침대가 최고의 꿀이다. 진짜 꿀이다.




우리 머릿속이 칠판이라고 생각하세요 
매일 새로운 정보를 적고 문제를 풀어요 
잠을 자는 건 그 칠판을 지우는 행위예요
잠을 제대로 못 자면 칠판이 덜 지워져요

깨끗하게 지워지지 않은 칠판에 오늘의 정보를 적고 문제 풀이를 해요
글자가 겹쳐져서 이게 오늘 쓴 건지 어제 쓴 건지 구분이 힘들어지고
반복되면 결국 내용을 알아볼 수 없게 돼요

그렇게 멈춰버리는 거죠

새로운 것도 이전에 하던 것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져요




이건 내 의사 선생님이 해 주신 설명이다. 

매일 깨끗하게 지워진 칠판에 새 글을 쓰는 것을 상상해봤다.


천재가 될 수도 있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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