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고 또 채우고
월요일에 본가에 내려오고 엄마는 말씀하셨어요.
아들. 그냥 여유롭게 푹 쉬다가 가.
저는 그 말을 믿고 모든 알람을 꺼둔 채 지내고 있답니다.
아침에는 몇 시에 일어나는지 확인하지 않아요.
회사를 다닐 땐 6시 반, 7시, 7시 반, 7시 50분 이렇게 알람을 맞춰놓고 잘 수 있을 때까지 버티다 출근했었죠.
요즘은 눈이 떠질 때 일어나요.
10년간 먹지 않았던 아침식사도 합니다.
오늘은 토스트에 엄마가 부쳐주신 오믈렛을 얹어서 먹었어요.
저는 이걸 굿모닝 토스트라고 부르기로 했답니다.
별것 없는 맛이고 특별한 비법 없는 레시피인데 여유롭게 창밖을 보면서 먹으니까 심심하니 맛있어요.
서울에 있을 때는 화려하고 자극적인 음식만 먹었는데 느리고 소소한 음식도 맛있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오후에는 글을 씁니다.
요즘 쓰고 싶은 글이 많아 여러 편을 썼어요.
제 브런치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예전에 출판물로 나왔던 퇴사 사유서도 올리고 있어요.
오늘도 글 한편 뚝딱 쓰고 이 글도 이어서 쓰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나면 할 일이 없어요.
서울에서 들고 온 책을 펼쳐봅니다.
사실 휴직을 하고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잘 안 잡히지만 성공에 대한 갈망으로 한 장 한 장 넘겨봅니다.
책은 한 가지에 집중해야 성취를 이룰 수 있다고 하네요.
인생에 정답이 없는 걸 알면서도 믿어보고 싶은 기분입니다.
밤에는 엄마 아빠랑 산책을 나갑니다.
집 근처에 중앙대 안성캠퍼스가 있어서 산책하기 좋아요.
건축 설계를 했어서 건물 보는 게 지긋지긋하지만
그 사이에 피어난 꽃들이나 녹음을 보는 걸 좋아해요.
그렇게 여유롭게 일주일을 보내다 가려고 합니다.
어머니는 제가 금요일에 올라가겠다고 하니
더 머물다 가라고 하시네요.
아니면 다음 주에도 또 올 거지?라고 수줍게 물어보십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속을 비우고 다시 채워서 갑니다.
엄마의 집은 이런 곳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