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 나의 첫 사이드 프로젝트
<나의 첫 사이드 프로젝트>에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기 전에 먼저 페르소나를 파악해야 한다고 한다. 인간은 단 한 가지의 정체성으로 정의될 수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 페르소나로 자신을 나누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어떤 모습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좋을지 나의 페르소나가 될 수 있는 관심사나 좋아하는 것들을 나열해보았다.
음악, 요리, 공간, 디자인
이 중 내가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게 있다면 바로 음악이었다.
내가 어릴 적, 부모님은 클래식 음악을 많이 틀어주셨다. 6살 때부터는 티비에 나오는 음악 방송을 녹화해 돌려 보면서 자랐다. 초등학교 때는 카세트테이프에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녹음해서 들었고 초등학교 졸업선물로 받은 삼각형 아이리버 MP3 플레이어는 태국으로 이민을 가서도 항상 들고 다녔다. 음악은 항상 그리고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매일 들었고 열심히 들었다. 장르도 구분하지 않았다. 케이팝을 제일 좋아했지만, 클래식이나 영화음악, 팝, 뮤지컬 음악 모두 골고루 접했다.
태국에서 국제학교에 다닐 땐 할 수 있는 학교 음악 활동은 모조리 다 하고 다녔다. 합창단도 했고 뮤지컬, 밴드, 작곡, 리코더 독주에 각종 교내 콘서트 등등 정말 열심이었다. 학교 선생님 중에서도 음악 선생님과 가장 친했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 친구들도 나를 음악 좋아하는 친구로 여겼고 음악을 정말 꿈으로 여길 만큼 좋아했었다.
아쉽게도 음악인의 꿈은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만 해도 음악이 내 길인 줄 알았는데 막상 대학 진학을 앞두고 음대 자격조건들을 따져보니 쉽지만은 않았다. 그 당시 작곡과에 가고 싶었던 나에게 선생님은 충분히 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했지만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았고 스스로 확신도 부족했던 나는 결국 음악은 취미로 남겨야겠다고 결정했다. 또 취미로 남겨야 내가 계속 좋아할 수 있겠다는 자기 합리화도 했다. 나는 노래나 연주를 잘하는 건 아니었으니 더욱더 자신감도 없었다. 그래도 작곡은 정말 열심히 했고 잘했는데…. 작곡가들을 동경해 왔는데….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미래가 어린 나이에도 두려웠나 보다. ‘나보다 음악을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라는 부정적인 생각과 모자란 용기 때문에 시도도 해보지 않고 꿈을 포기해버렸다.
서른한 살이 되어서 음악을 다시 해보고 싶다고 결심하니 막막했다. 기타도 놓고 작곡도 놓은 지 10년이 넘어 음악이 너무 어색했다. 회사 1년 차 때는 그래도 취미로 기타연주와 작곡도 해보려 했었는데 몇 번 시도만 하다 포기해버렸다.
그래도 음악에 대한 관심이나 사랑은 끊임없이 이어오고 있었다. 지속해서 새로운 음악을 듣고 주변 사람들과 음악 관련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그중에서 케이팝을 가장 좋아했다. 생각해보니 이건 지금도 하는 것이고 꾸준히 해오지 않았는가! 아티스트와 작곡가의 비하인드라든지, 어떤 곡에서 내가 좋아하는 부분이나 사운드를 분석해서 표현하는 것이라든지, 축적된 케이팝 지식과 히스토리 관련된 이야기라든지. 케이팝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는 눈이 번쩍 떠지는 나를 찾아버렸다. 그래서 나의 첫번째 사이드 프로젝트는 케이팝으로 뭔가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연주나 작곡은 못 하고,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는지 탐구하고 있던 도중, 집 어딘가에 처박혀있는 와콤 타블렛이 떠올랐다. 펜 마우스라고도 하는 이 물건은 6년 전 학부 때 쓰려고 사놓은 건데 이제야 쓰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번쩍 들었다. 나의 계획은 바로 타블렛을 활용해서 인스타툰을 그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좋아하는 케이팝과 관련된 내용을 다루겠다는 아이디어였다. 곧바로 주말에 내 얼굴과 비슷한 안경을 낀 캐릭터를 만들었다. 그리고 기획에 들어갔다. 어떤 콘텐츠로 내가 스토리를 풀어갈지 여러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중에 가장 재미있고 끌리는 주제를 골랐는데, 그게 바로 ‘더 흥해야 하는 케이팝 아티스트 10팀’이었다. 딱 10개의 에피소드로 10팀을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하기로 결정했다.
제일 먼저 10팀을 선정했다. 평소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 요즘 알게 된 아티스트, 가끔가다 떠오르는 아티스트 등등 리스트업을 했다. 박재정, 뮤지, 천단비, 사이로 등등 내가 즐겨듣던 아티스트를 나열했고 아티스트마다 내가 좋아하는 곡을 선정해서 소개하는 내용을 만들었다. 그 외에 비하인드 스토리도 리서치해서 내용을 꽉꽉 채웠다. 하면서 알게 된 건 인스타그램에서는 최대 10장의 이미지밖에 올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 번 더 내용을 편집해서 10컷 툰으로 정리하는 작업도 거쳐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내용에 맞게 그림을 그렸고 주말마다 시간을 정해서 콘텐츠를 제작해나갔다. 이렇게 하기를 매주 반복하자 ‘더 흥해야 하는 케이팝 아티스트 10팀’의 인스타툰 프로젝트가 완성되었다.
그러나 누가 알았을까 이걸 다 만들고 올리기까지 6개월이 걸렸다는걸. 더디긴 했지만 나의 첫 사이드 프로젝트는 2021년 3월부터 제작되어 9월 말이 돼서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처음으로 본업 외에 다른 프로젝트를 스스로 만들어 본 경험이었다. 귀찮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완주한 내 모습에 뿌듯함을 느꼈다. 어쩌면 내가 살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는데 첫걸음을 내디딘 것 같았다. 이게 나의 첫 회사 밖 프로젝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