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맞는 일주일 설계하기
24시간. 월화수목금토일. 세상은 정해진 시간을 반복하며 돌아간다. 주 5일 출근 직장인도, 주말 없는 CEO도, 연예인도, 아이돌도, 심지어 나 같은 백수도 어김없이 24/7을 지키며 살아간다. 의사 선생님은 그 시간 시스템에 맞춰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게 나의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거라고 말하셨다.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식사를 하고, 숙면을 취하고, 몸을 움직이고, 글을 쓰다 보면 불안정했던 내 일상에 안정감이 찾아올 거라고 하셨다(하지만 원래 백수는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는 거 아닌가요! 아니요!).
약을 다시 정상적으로 복용하면서 나는 하루 24시간을 계획하는데 어느 하루의 오후를 보냈다. 나에게는 초등학생 때 방학마다 만들던 동그란 생활계획표는 필요 없었다. 오히려 하루에 할 일들을 나열하고 대략적인 시간만 필요했다. 왜냐하면 정확한 시간에 무엇을 지켜야 하는 건 나같이 계획형 완벽주의자에게는 스트레스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게 오전/오후/저녁으로 나누어 설계를 했다.
오전에는 일어나서 차를 내린다. 그리고 창가에 아빠다리를 하고 앉아 허리를 곧게 세우고 일기를 쓴다. 그리고 느긋하게 가족과 통화하거나 뉴스를 보면서 아침을 시작한다. 그리고 직장인 시절 결제해 놓은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한다. 유산소 30분, 근력운동 40분을 하고 돌아온다. 그리고 정오가 되면 점심을 먹는다.
오후에는 글을 쓰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대여섯 시간을 완벽하게 집중할 순 없겠지만, 온전히 글만 쓸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저녁시간이 되면 시장을 보거나 냉장고를 털어 저녁을 해 먹고 이후에는 산책이나 독서, 서점 가기 등 자유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자정 전에는 잠에 들기로 계획했다.
사실 이렇게 평화롭고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하루는 일주일에 딱 3일만 살 수 있다. 나머지 4일 중 3일은 동네 카페로 아르바이트를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주 3일 일하는 카페 아르바이트가 하늘의 별따기였는지, 애초에 그런 공고를 찾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서른다섯이라는 나이 때문이지 면접 기회도 얻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귀하게 주어진) 면접 때 한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긴 슬랙스 바지에 셔츠를 입고 단정한 차림으로 갔다. 내 노력을 좋게 보았는지 다음날 같이 일하자고 점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렇게 카페에서 제일 나이 많은 아저씨 알바생이 되었다.
글쓰기 3일, 알바 3일, 그리고 나머지 하루는 순도 100% 자유의 날. 정말 내 마음이 원하는 걸 들어주는 날이다. 본가에 다녀올 수도 있고, 애인을 만나거나 아니면 하루 종일 집에서 넷플릭스를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원하면 식사도 자유롭게 치팅할 수 있게 해 준다(놀랍게도 지방간 2단계로 체중 감량 중이다). 나는 나름 착실한 사랑꾼이라 애인을 만나는데 시간을 쓸게 눈에 훤했지만(넷플릭스 왜 보냐, 데이트하면 되는데!) 어찌 되었든 명칭은 자유의 날이다. 새로운 인풋을 넣고, 에너지를 채우고, 사랑을 느끼는 주말 같은 시간이다(속마음은 매일이 자유의 날이었으면 좋겠다).
현대의 백수는 이렇게나 쉴 틈 없이 바쁘다
이런 월화수목금토일을 사는 게 아직은 어색하다. 뭔가 내가 살아왔던 삶과 많이 다른 게 이질감이 든다고 해야 하나. 이전에 첫 퇴사를 했을 때에도 평일 대낮에 길거리를 걷는 게 어색했던 것이 떠오른다. 대낮에만 느낄 수 있는 햇빛의 각도와 명료함 그리고 한적한 거리를 보면 내가 뭔가 잘 못된 길을 걷고 있는 것만 같다. 물론 글 쓰는 비중이 일상에서 늘어나는 것은 만세를 외치면서 환영했다. 하지만 주 3일 카페에서 알바를 하는 거나, 평일 하루를 자유의 날(a.k.a. 데이트) 하는 게 쉽게 몸에 익혀지지가 않는다. 아무래도 직장을 다니면서 주 5일, 40시간 일했던 게 몸 깊숙한 곳까지 배어있고, 그렇게 살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고 그런가 보다(게으른 것에 대한 천성적 알레르기를 갖고 있기도 하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말씀하셨다. 남들과 똑같이 살고 싶으면 똑같은 선택을 하는 거고, 다르게 살고 싶으면 다른 선택을 하는 거지.
엄마. 저는 언제나 평범하면서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은걸요? 정말이지 내 마음은 내가 봐도 아이러니하다.
그럼에도 새롭게 설계된 일상이 꽤 마음에 든다. 과연 현실이 언제까지 이런 일주일을 보낼 수 있게 허락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신건강의 안녕과 일상의 안온함을 위해 일주일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다. 이제야 진정으로 나에게 맞는 일주일을 찾아 조금씩 재건축하는 느낌이다.
Ps. 희망사항으로 이런 시간에 나에게 오래도록 주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