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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에 직업을 바꿔도 되나요?

너무 늦은 건 아닐까요?

by 재민

글을 쓰기 전에 제목을 먼저 써버리고 말았다. 처음 드는 생각은 “늦었다”였다. 내가 제목을 지었지만 제목 초반에 적힌 “서른다섯”이 마음에 콱하고 걸린다.


얼마 전에 유재석이 진행하는 핑계고에 MZ가 아닌 사람은 MZ에 집착하고,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요즘 나이는 0.7을 곱해야 해!”라고 말한다고 하더라. 한참을 유재석과 출연진들이 웃는데,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조용히 계산기를 켜 나의 요즘 나이를 계산했다. 35 x 0.7 = 24.5 세. 어머나! 이렇게 젊을 수가 있는 건가. 스우파 시즌1의 댄서 리정이 말하던 “언니들 스물네 살 때 뭐 하셨어요?”가 딱 지금 내 나이구나. 이 정도면 직업 정도는 한번 바꿔도 괜찮은 거 아닌가 생각이 든다.



현재 나는 건축설계 일을 하다 와르르 무너져버린 서른 다 섯 살 청년이다. 요즘 나이로 24.5세의 무직 백수다. 이번에 무너지면서 건축 설계에 대한 열정도 버틸 힘도 바닥났다. 역시 사람은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하면 골병이 드는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래도 정신 건강과 신체 건강을 위해 건축 설계직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렇다 보니 직업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내가 건축설계를 그만두겠다고 다짐한 순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일은 글쓰기였다.


나는 2022년에 브런치스토리에 작가가 되었고 짧은 소설부터 감성 에세이까지 꾸준히 뜨문뜨문 글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내가 직업을 작가로 바꿀 정도의 글 쓰는 스킬이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이 있을까? 누군가 나에게 전업작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는지 물으면 사실 말문이 막힌다. 내가 글쓰기나 출판 업계에서 어느 정도의 경쟁력을 갖췄는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대형 출판사에 투고를 해본 적도 없거니와, 의뢰를 받고 — 돈을 받고 가 더 정확하겠다 — 글을 기고해 본 적도 없다. 불확실성이 가득함에도 나는 글 쓰는 걸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지 없을지 테스트해보고 싶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냥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 도전이 선행되지 않으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이번에 퇴사하면서 갖게 된 것은 아니었다.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걸 직업으로 생각한 것은 3년 전부터였다.


참을성이 없는 나는 2022년도와 2024년도 총 두 권의 책을 독립적으로 출간했다. 하나는 나의 첫 번째 퇴사 여정을 그린 <퇴사 사유서>와 두 번째는 엄마께 사랑을 담은 식사 대접을 해드리는 요리 에세이 <사랑한다 요리할 수 있어>였다.


<퇴사 사유서>는 퇴사라는 키워드 때문인지 몰라도 초반에 독립서점에 많이 입고되었고, 그 후에도 꾸준히 팔렸다. 현재는 집에 재고가 없어서 가끔 재입고를 원하시는 책방지기분들께 죄송한 이메일을 보낼 정도다. 나는 이 책을 효자라고 부른다.


반면 <사랑한다 요리할 수 있어>는 제목부터 너무 난해한 탓인지, 아니면 딱히 사람들이 요리에 관심이 없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내가 마케팅을 일절 하지 않아서 그런지 텀블벅 펀딩도 실패하고 책 재고도 아직 남아있다. 당연히 이 책은 불효자가 되었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기한”을 정해두고 작가라는 직업을 도전하라고 말씀하셨다. 이 도전에 시간을 충분히 주고 탐구하고 실행해 보고, 이 길이 아니다 싶으면 다른 길이나 방법을 모색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알려주셨다.


그러나 기한이 있다는 건 데드라인이 끝나면 깔끔하게 이 길은 접고 또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관심이 가거나 내 능력이 닿는 다른 일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 작가가 될 수 없다면 나는 오랫동안 방황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다시 건축 설계로 돌아가 똑같은 무너짐을 반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작가로서 기반이 단단하게 자리 잡지 않았고, 유명하지도 않으며, 독립출판을 해야 책을 낼 수 있고, 그마저도 현실이 허락하는 기한동안 도전할 수 있는, 맨땅에 헤딩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른다섯에 직업을 바꿔도 되나요?”라고 한다면 누구든 “바보야! 먹고사는 게 문제지. 얼른 취업해!”라고 할 것이다. 다시 건축계열의 직장을 얻고 경력을 쌓고, 연봉을 쌓고, 기회가 되면 대기업에 가라고 할 것이다(실제로 그런 조언도 있었으니!).



그럼에도 내가 이런 무모한 일에 도전할 수 있는 이유는, 부모님의 빵빵한 재력이나 혹은 그게 아니면 좋은 스승이 있어서도 아니다. 단순한 나의 밑도 끝도 없는 용기 때문이다.


“현시대를 살아가면서 대다수의 사람이 보장된 성공을 원하고 안전한 길을 가고자 할 때 나는 무모한 도전을 하는 낭만을….”


이런 생각이 아니라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내가 용기를 내는 일이 결국 나와 내 삶을 사랑하는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끔찍하게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이룰 수 있게 노력하는 것이다.



솔직히 아직은 마음이 흔들리고 혼란스럽다. 어떤 작가가 되어야 할지, 그게 가능할지, 불확실성 앞에 나는 나약하다. 그럼에도 서른다섯에 바꾸는 나의 직업, 글 쓰는 작가라는 직업을 통해 내가 더욱더 나를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역시 돈보다, 명품보다,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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