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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협적인 소설 입문반 첫 수업

나는 작가가 될 수 있을까?

by 재민

36만 원이나 하는 소설 쓰기 입문반 클래스를 결제해 버렸다. 서른다섯에 직업을 글 쓰는 작가로 바꾸고 제일 먼저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다. 백수에게 36만 원은 큰 지출이었지만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는 믿음으로 눈 딱 감고 통 크게 쐈다.


그동안 냈던 독립출판물도 그렇고 온라인에 올리는 글이 대부분 내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에세이 위주의 글이 많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에세이의 단점은 내 경험이 소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그러니 지금도 퇴사 후 여정을 쓰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내 일상에 재미있는 사건들이 매일 터지지는 않는 게 현실이었으니 소재가 고갈되기 쉬운 구조다. 그래서 1년 전부터 내가 쓰는 글 스타일로 소설에 도전했다. 1년 전부터 썼던 소설은 모두 브런치북으로 온라인에 올라가 있다(<실패의 꼴>과 <우리의 노래를 들으면>이 있다). 문학생으로 치면 다 습작인지라 유치하고 앞뒤가 안 맞는 소설이고, 캐릭터 구성이나 스토리의 전개방식등 부족한 점이 많은 걸 스스로 느낀다. 제일 중요한 건 내가 쓴 소설은 사람들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클래스를 끊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차마 비전공자에 글 쓰는 것에 대해 배운 것이 특별히 없는 나를 심화반에 넣을 수 없어 마침 수강생을 모집하는 소설 기초 입문반으로 신청을 했다. 정원은 14명이었는데 운 좋게 선착순으로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클래스는 토요일 11시에 신촌역 근처의 학원 건물에서 열렸다. 조금 일찍 도착해 학원에서 운영하는 카페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사들고 설레는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갔다. 너무 일찍 도착한 탓인지 교실에는 두세 명 정도의 학생들만 앉아 있었고, 등단한 소설 작가인 선생님은 계시지 않았다. 교실에는 어색한 공기만 맴돌고 있었다. 나는 제일 앞 줄, 센터 자리에 앉았다. 나는 노트북을 꺼내어 오늘 선생님이 하실 모든 이야기를 적어낼 준비를 했다. 그 사이 11시가 가까워지니 수강생들이 밀려들어왔고 마침 선생님도 들어오셔서 화이트보드 앞에 서셨다. 그리고 이제 11시. 수업이 시작됐다.


선생님은 등단한 작가답게 말을 아주 부드럽고 수려하게 하셨다. 중간중간 유머를 툭툭 던지고 수강생들과 이미 아는 사람인 것처럼 편하게 이야기하시니 교실을 가득 메웠던 어색한 공기가 조금 수그러들었다. 아이스브레이킹을 하고 선생님은 자신의 클래스에서는 책상이 화이트보드를 향하는 게 아니라 수강생 서로를 향해야 한다고 하시며 반 원형 모양으로 배치로 바꾸자고 하셨다. 그제야 다른 수강생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다들 나같이 소설에 대해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 없는 사람들이겠지? 아직은 긴장한 얼굴들을 보니 왠지 나는 마음이 놓였다.


곧바로 이어진 자기소개 시간. 선생님은 한 명씩 편안하게 자기소개를 하고, 앞으로 소설을 쓰기 위한 글감이 준비되어 있는지 혹은 여기서 소재를 찾고 싶은지 나누자고 하셨다. 14명의 수강생들은 돌아가면서 자신을 소개하고 앞으로 어떤 글을 이 클래스에서 과제로 쓸지 이야기했다. 한 명, 두 명 소개가 이어지면서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마터면 선생님께 여기 소설 기초 입문반 아닌가요? 질문을 던질 뻔했다. 왜냐하면….


다른 수강생들은 문예창작과를 나온 배경을 지닌 사람이거나 글 쓰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기자 혹은 드라마 작가도 있었고, 이미 다른 소설 클래스에서 소설을 몇 편 써본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N포털에서 진행하는 웹소설 공모전에 본상까지 받았었다고 했다. 나는 이미 광활한 우주에서 먼지처럼 작은 백수인데, 그 마저도 소멸될 것 같이 더 작아졌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어 나를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재민이라고 합니다. 저는 독립출판 형태로 글을 쓰고 있고 에세이를 위주로 쓰다가 소설에 관심이 생겨서 소설을 배워보려고 수강신청을 했습니다. 저는 합평 메이트나 좋은 동료를 얻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그리고 이 수업에서 과제로 쓸 소설 글감은 몇 개월 전에 구상해 놓은 게 하나 있는데 그걸 바탕으로 단편 소설을 한번 완성해 보고 싶습니다.”


나는 말하면서 내 두 귀가 빨개지는 것을 느꼈다. 선생님은 내가 어색하지 않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주셨고 마지막으로 소설을 써본 적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저는 근래에는 온라인에 글을 올리는데, 시리즈 물로 초초초단편 소설만 써봤어요.”


그런 학생이 처음은 아니었는지 선생님은 웃으며 다음 수강생으로 넘어갔다. 뒤로 갈수록 더 많은 경력의 수강생들이 나왔고, 이미 시놉시스가 완성되어 있거나 소설의 일부분이 또렷하게 그려진 수강생도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소설 기초 입문반 수업 계획과 과제 설명을 들었다. 앞으로 합평은 어떤 규칙을 가지고 진행이 되고 중간 과제와 최종 과제 등 앞으로 11월 초까지 이어질 스케줄을 공지해 주셨다. 그리고 당장 다음 주부터 앞순서의 몇 명은 중간과제 제출과 합평을 할 거라는 말이 나왔다. 휘몰아치는 2시간이 끝나고 선생님은 모두 수고하셨다며 수업을 마친다고 하셨다.


수강생들은 조용히 가방을 챙기고 한 두 명씩 교실을 나갔다. 다들 혼자 유유히 떠나고 싶었겠지만 우리는 모두 (계단을 선택한 몇 명 빼고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8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다들 나처럼 서로의 경력을 듣고 위축되었을까? 아니면 과제가 부담스럽게 느껴질까? 여러 궁금증이 피어올랐지만 차마 그 정적을 깰 용기가 나지 않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무 어색한 나머지 인사도 없이 모두 건물 밖으로 나와 갈 길을 갔고, 나 또한 카페 알바를 위해 우리 동네로 돌아가는 2호선 지하철에 올랐다.


애초에 소설 쓰기 클래스를 듣기로 마음먹은 건 합평, 즉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을 경험하고 그럴 수 있는 좋은 동료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 취지에는 부합하는 클래스이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소설 초보인 나에게는 부담스러울 수 있는 클래스가 맞는 것 같다. 나를 제일 걱정하게 하는 건 전문적으로 훈련받지 않는 내가 그들 사이에서 잘 해낼 수 있을까이다. 큰일이다. 이제 와서 36만 원을 환불받을 수 없을 것 같은데!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나는 마음을 굳게 먹기로 했다. 내 소설이 보잘것없거나, 유치하거나, 철학이 얕거나, 못나서 창피해져도 “나는 뭐든 배우고 갈 것이다”라는 다짐을 했다. 그러면서 묘하게 내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참가자가 된 기분이 물씬 들었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서 내 분량을 챙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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