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 지적자본론
나는 스스로를 건축가라고 종종 표현했다. 하지만 나는 라이센스가 있는 ‘건축사’는 아니고 그냥 건축 업계에서 일 하는 사람이다. 그럼 나를 건축가라고 할 수 있을까? 건축가라고 말하는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가끔은 꼰꼰 건축에서 일하다 보면 내가 건축을 하는 건지 정체가 모호해질 때가 있다.
건축을 한다고 하면 아름답고 좋은 기능의 공간을 계획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느낀 건축은 서비스다. 경험이 비록 얕지만, 건축사 사무소에서는 미적인 가치를 최고의 가치로 두지 않는다. 사무소에서는 어떻게 하면 최고의 서비스를 고객에 줄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리고 그 끝엔 돈이 있다. 최고의 서비스는 더 많은 돈을 불러온다.
물론 서비스에는 디자인적인 부분도 있겠다. 건물의 외피 디자인이나 공간의 배치 같은 계획적인 부분이 그런 부분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디자인 툴이 일반인도 다루기 쉬워져서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공간을 디자인할 수 있다.
아파트 같은 프로젝트에는 발주처 설계팀에 건축사가 있는 경우도 있다. 발주처에서 스케치 계획을 넘겨주는 경우도 있는데 우리는 그 스케치 계획을 가지고 도면을 그려주고 그 계획이 지어질 수 있도록 해결한다. 이렇게 건물을 짓기 위해 남들이 하기 힘든 일을 대신 해주는 서비스가 내가 느낀 건축가의 일이다.
건축은 사업이 될 수도 있다. 발주처에서는 건물을 지을 때 공간이 어떻게 하면 더 잘 팔릴지 분양성에 대해 고민한다. 물론 건축가도 같이 고민한다. 어떤 공간을 만들어야 비싼 값에 분양이 될지, 보고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특장점을 이야기한다. 너무 대놓고 ‘돈을 이렇게 하면 많이 벌 수 있어요’라고 하는 것 같지만 그렇게 해야 발주처의 일을 하나 더 수주할 수 있다. 사실상 사업이긴 한데 주체적인 사업은 아니다. 몇몇은 그만큼 책임도 많이 안 지니까 좋다고도 한다. 책임이 없는 만큼 결정할 권한도 없다.
건축가는 돈의 노예이기도 하다. 다시 돈 문제인데, 돈을 위해서 궂은일을 해야 한다. 인허가를 받을 때는 공무원에게 굽신거리며 굽히고 들어갈 때도 있고, 심의 위원들에게 잘 보이려고 로비도 한다. 결과는 다 발주처의 만족을 끌어내 돈을 벌기 위함이다. 그래서 그런지 매출이 항상 적은 글로벌 본부에는 예스맨들이 많았다. 발주처에서 원하는 거를 자신이 할 수 없거나 잘못됐다고 생각해도 그저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게 결국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래도 책임은 지지 않으니 결정권자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다. 그래야 일이 진행 되고 빨리 끝날 수 있다.
나도 어느 정도 물들어서 일이 끝나지 않고 늘어질 때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따지지도 않는다. 의견이 없어진다. 이렇게 매니징의 대상이 되는 건 무척이나 쉬운 일이었다. 그저 시키는 사람이 원하는 만큼 해주면 되기 때문이다. 욕심을 내어 내 고집을 부린다고 해도 일이 진행되는 건 아니었다. 핀잔을 듣거나 다시 해와야 하는 상황이 많았다. 책임이 없는 만큼 결정할 권한도 없다.
내 어릴 적 꿈의 건축가는 아티스트였다. 루이스 칸, 프랭크 게리, 르코르뷔지에 같은 유명 건축 위인들은 아티스트로 불린다. 나는 그런 유명세까진 몰라도 아티스트가 되고 싶었다. 물론 건축으로 그렇게 되려면 엄청난 능력과 재능이 필요하겠지만. 그런데 건축가가 아닌 주변 사람 중 삶을 마음대로 그리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스스로 아티스트 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아티스트처럼 사는 사람. 꼭 건축가나 직업 이름이 디자이너인 사람만 아티스트가 아니었다.
막상 아티스트라고 믿어왔던 건축가는 아티스트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아주 소수만 그런 위치에 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럼 나는 무엇일까? 사업가일까?, 서비스 제공자일까? 기계일까? 물론 무엇이 되어도 세상에 나쁜 것은 없다. 그런데 꼰꼰 건축에 있으면 내가 되고 싶은 아티스트가 될 수 있을까? 그 결정 권한도 나에게는 없는 것 같았다.
내가 꼰꼰 건축에서 편하게 신입사원 1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일의 책임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권한이 없었다. 시키는 일을 해야 했다. 그게 무척이나 편했고 안정적이었지만, 이제 내 안에 꿈틀거리는 욕망을 외면할 수 없었다.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 아니면 그사이 모호한 무엇이라도.